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문희 Jun 19. 2023

잠수 한계 시간

230619

  이번 주말에는 <잠수 한계 시간>을 읽었다. 독일 소설가 율리 체의 작품이다.



  강력 추천을 받고 굳이 주말에 오프라인 매장 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월요일날 바로 올 텐데, 그 시간을 참기 어려웠다. 그런데 교보문고, 영풍문고 어느 매장을 뒤져봐도 실물이 없었다. 그나마 한 권 보유한 곳이 종로서적. 산책 겸 가서 책을 사고는 핸드폰이 꺼져 몇시간 걸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바로 책을 읽었냐. 쇼핑은 지난 주말 일이다. 완독까지는 맥주 두 잔과 커피 석 잔을 필요로 했다. 왜 이러고 사나.

  책의 초반부에 두드러지는 감상은 '밀회'로 인한 쫄깃함이었다. 책의 줄거리는 스페인의 섬에서 잠수 강사로 일하는 스벤이 소설가 테오와 배우 욜라 부부를 장기 고객으로 맞이했다가 욜라에게 반하며 벌어지는 일로 요약된다. 욜라도 스벤에게 반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책의 중간중간 둘의 비밀 문자와 만남 장면이 등장한다. 테오가 눈치챘을까?

  책 뒷면에 적힌 '심리 스릴러'라는 설명은 중반을 넘어서야 이해가 됐다. 책은 크게 스벤의 관점에서 상황을 서술하는 파트와 욜라가 쓴 일기가 교차 등장하는 구성이다. 스벤의 관찰과 욜라의 기술 모두에서 테오는 폭력적인 남편으로 그려진다. 부부의 상호 증오를 되짚어가는 길에 작가는 테오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며 두려워하는 율라의 서술을 배치해 뒀다.

  스벤이 보기에는 욜라 역시 테오 못잖게 폭력성을 지닌 아내다. 첫 소설의 큰 성공 이후 한 편의 작품도 쓰지 않은 테오를 욜라는 '내 돈을 쓰려 한다'며 도발하고 때로 몸싸움에 돌입한다. 바다 배경과 잠수라는 소재는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쓰인다. 테오는 욜라를 뾰족한 가시가 그득한 성게밭에 집어던지고, 욜라는 전기가오리가 위치한 바다로 테오를 밀어넣는다. 이들은 대체 왜 이러는가.

  책은 "무엇이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독자가 놓지 못하도록 묶어낸다. 책의 말미에서 테오는 공구에 맞은 듯한 상처를 입은 채 바다에 빠져 큰 부상을 입는데, 스벤은 욜라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부부가 떠난 뒤 스벤은 욜라가 테오와 묵던 숙소에서 일기장 하나를 발견한다. 욜라가 쓴 글로, 자신에게 홀리고 연민을 느낀 스벤이 테오를 증오하게 되는 경로를 담고 있다. 글 내용대로면 경찰이 스벤을 테오 폭행의 범인으로 의심할 만하다. 스벤이 다행스럽게도 욜라의 음모에서 벗어났다고 해야 할까. 소설의 끝에서 독자는 스벤 시점의 글이 모두 욜라-테오와의 사건 후 변호사를 만난 스벤이 혹시 모를 욜라의 신고에 대응하려는 목적에서 작성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어쩐지 스벤의 말이 더 진실된 것이라 생각했다. 스벤의 글이 욜라의 것보다 훨씬 더 길고, 일기라는 주관적 형식으로 쓰인 욜라의 글에 비해 스벤은 객관적으로 상황을 전하는 듯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술자의 위치와 말의 형식, 길이로 진실성의 함량을 저울질하는 것은 타당한가. 이들 중 어느 것을 골라내기 위해선 진실 개념 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율리 체의 질문은 "진실이란 무엇인가"였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질문일수록 추상적인 답을 내놓기가 쉬운데, 한 권 책을 통째로 바쳐 같은 질문을 던지면 답이 구체적으로 변한다. 율리 체는 법학 박사 학위 보유자라는데, 어쩌면 <잠수 한계 시간>은 그가 남긴 '사례 연구'가 아닌가 상상해 본다. 고민 많은 영혼의 호기심은 종종 현실 속 사례로는 충족하기 어려운 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약간은 아쉬운 대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