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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W Apr 21. 2022

교육문제를 국토교통부가?

교육문제를 바라보는 교사의 자세

(낮은 목소리로)

“이 동네는 빌라촌이라 어려운 애들이 많아서 그래.”

"아파트 단지 속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엄마들이 극성이야"

"강남이라서~, 강북이라서~"


학생들이 사고를 치거나 학부모가 말도  되는 요구 당황스러운 상황을 마주하면 동료 교사가 서로를 위로하면서 이런 말을  때가 있다. 이렇게  들리는 귓속말 뒤에 부끄러움이 있다. 교사에게 힘든 학교와 좋은 학교가 분명히 있다. 학생들의 크고 작은 사고가 잦거나 학부모의 민원이 극심한 곳이 힘든 학교에 속한다. 이런 학교에 대한 교사들의 투정은 곧잘 학교 주변 부동산 시세와 얽혀 이야기가 흘러간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학교는 수준이 높은 학교, 빌라에 있거나 주거지역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는 뒤떨어지는 학교라는 편견이 겉으로는 말하지 못하지만 당연하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랄까.


학생들의 경제력을 수치화시키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비교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 학교 선생님들과 학교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고 이런 생각이 오가다 보면 당연한 법칙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마냥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고 경험적으로는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입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요즘 재미있게 보는 <비밀의 숲 2>에서 황시목 검사(조승우 분)가 남양주경찰서 교통팀장을 만나서 박광수 변호사의 사망 원인을 묻는다. 황시목 검사는 의심할만한 정황 콕 집어 묻는데 교통팀장은 우연일 것이라고 애써 항변한다. 그때마다 황시목 검사는 “그럴 수도 있죠”라고 말한다. 그것도 세 번이나.

교통팀장에게는 그 정황들이 우연이어야만 했고, 우연이길 간절히 바라는 것뿐이다. 자기가 편리한 쪽으로 우연을 세 번이나 간신히 이어 붙일 때 시청자는 이 것이 모두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교통팀장이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빨리 인정하고 사건을 능동적으로 다시 들여다봤다면 멋진 경찰이 됐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이런 일은 발생한다.

학생이 공부 못하는 건 못살아서 그렇다. -그럴 수 있다.

학생이 사고를 많이 치는 것 부모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그럴 수 있다.

학부모가 안하무인인 것은 잘 사는 동네이기 때문이다.-그럴 수 있다.


이런 일들이 교사 잘못은 아니라고 힘겹게 이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차라리 학교에서 학습부진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학부모 상담을 실시하고, 학교의 권위를 찾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교사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아닐까.


코로나 19로 원격수업이 지속되면서 모두가 '학습격차'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심심치 않게 뉴스에서 서울대 합격생 배출 지역 1위가 강남이라는 말이 나오고 학군 이야기가 늘 교육 문제의 중심에 있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교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교사가 교육문제를 부동산으로 돌릴  교육 문제는 교사의 손을 떠나게 되어버린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교육은 부동산에게. ?




에피소드.

3~4년 전 학교스포츠클럽 농구대회에 우리 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출전했다. 우리 학교에는 가정의 경제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반대로 상대 학교는 아파트 단지 내 학교로 학생 가정이 부유한 편이었다.  상대 학교 학생들은 덩치도 크고 좋은 농구화에 자신감도 충만했으나 우리 학교 학생들은 왜소하고 농구화를 갖추지 못한 학생도 있었다. 게다가 긴장한 티가 얼굴에 가득 묻어났다. 교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눈에 보이는 이런 차이에 놀랐다.

아니나 다를까 1 쿼터부터 기세에서부터 밀렸는데 상대팀 학생이 비웃는 듯한 트래쉬 토크를 날렸다. 우리 학생들은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했고 말도 안 되는 점수 차로 졌다. 승패를 떠나 자신감을 잃은 모습에 감독교사로서 속상했다. 다음날부터 나는 체력 운동과 거친 몸싸움 공을 소유하는 능력을 위주로 연습을 시켰다. 다음 시합부터는 시합 중에 서로 파이팅을 크게 외치고 소리도 지르도록 주문했고 감독 교사인 나도 오버해서 큰 소리로 지시했다.  

예선 리그전에서 우리 학교는 당연히 떨어졌다. 하지만 거친 플레이를 하는 팀으로 인상을 남겼고 파이팅이 넘치는 근성을 보여줬다. 우리의 결과는 탈락이었지만 연말에 한 학생이 남긴 메시지는 승리보다 값졌다. 내용은 그 당시 내가 느꼈던 속상함을 학생들도 똑같이 느꼈다는 것이고 그날 이후의 연습이 어떤 의미인지 학생들이 알고 있었다고. 그리고 지금은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차이는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안타까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실력 차이가 있으니 승리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자신감을 얻었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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