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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W Jan 22. 2023

교사가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학생에게 노여워하지 않기,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요즘 MZ세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의 적 ‘꼰대’라는 단어가 쉽게 등장한다. ‘꼰대’, ‘젊꼰(젊은 꼰대)’ 등 유행어라지만 결국 모두 혐오 표현이다. 꼰대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본인의 주장을 강요하는 캐릭터를 뜻한다. 최근에는 ‘역꼰대’라는 말로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의 말을 무조건 배격하는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꼭 나이가 들었다고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직업적 특성상 꼰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첫째, 주요 상대인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다. 둘째, 교사는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학생들에게 행동과 사고의 수정을 강요하기 쉽다. 셋째, 교사-학생 사이에 교사가 말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다.

‘꼰대’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전부터 누군가에게 무엇이 됐든 강요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너무도 싫었기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강요하지 않는 교사라… 한편으로는 역할을 다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회시간 전달사항을 안내하던 중 한 학생이 아예 뒤를 보고 친구랑 얘기를 하고 있기에 교사가 지적을 했다.
“***, 똑바로 앉으세요.” 학생의 자세는 수정되지 않았다. “***, 복도로 잠깐 나와.” 교사는 학생과 일대일로 복도에서 얘기했다.
“선생님이 앞에서 얘기할 땐 앞을 보는 예의야. 몸을 아예 돌리고 있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안 그랬는데요” 학생의 불만 섞인 표정과 몸짓이 드러난다.
“선생님하고 얘기하는데 짝다리를 짚으면 되겠니?” 교사도 학생의 메시지보다 태도에 신경이 쓰인다.
“아닌데요.”(여기서 보통 교사의 분노버튼이 눌린다.)


1. 교사-학생 사이에 나이 차이를 내세우지 말자.

  처음부터 ‘너와 나의 나이 차이가 몇 살인데 이 따위로!’라고 시작하는 선생님은 없다. 다만 학생에게 태도와 예의를 강조하는 방법을 쓴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어디 짝다리야!” 또는 “말투가 그게 뭐야!” 등은 자주 들린다. 말대꾸는 대역죄에 가깝다. 태도와 예의를 가르치는 것은 중요한 가치가 있다지만 자칫 학생에게 권위를 내세우는 방법이 된다. 교사-학생 간 상하관계를 설정해 놓고 ‘어린 너는 연장자인 교사의 말에 복종해라’라는 뜻이 되어버린다. 학생의 불량한 태도와 어긋난 예의가 불편하더라도 잠시 참고 그 학생의 본 뜻에 집중해 보면 질적으로 다른 대화를 할 수 있다. 교사는 학생에게 노여워하지 않는 스킬을 갖춰야 한다.

  위의 예시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태도를 지적하기보다 여러 사람 앞에서 제한된 시간 내에 안내를 해야 하는 선생님을 배려해 달라고 부탁했다면 학생과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 강요하지 말자.

  교사는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학생에게 이것저것 지적하고 태도 수정을 요구한다. 이것은 매우 논쟁적인 부분이다. 학생도 하나의 인격체이므로 강요받아서는 안된다라는 입장과 아직 미성년자로 교육의 대상이므로 이를 방관하는 것은 교사로서 직무유기라는 주장이 부딪힌다.

  나는 교육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을 볼 때 ‘학생’이라는 말로 하나의 인격체처럼 일반화될 수 없는 대상이라는 것을 느꼈다. 덩치는 산만큼 자랐는데 아직 초등학생 같은 녀석도 있고, 아직 아기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웬만한 성인보다 성숙한 생각을 하는 학생도 있다. 그래서 내가 취하는 생활지도 방식은 ‘제안하는 교육’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예의와 태도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되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학생이 받아들이지 않고 반항한다면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강요하는 것이 옳은지를 차치하더라도 실제로 강제할 방법도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교사가 생각하는 예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

  위의 예시에 적용해 보자면 “선생님이 앞에서 얘기할 때는 말하는 사람을 보고 집중해 주는 것이 예의다. 그래야 전달사항도 간결하고 짧게 끝낼 수 있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할 필요 없단다. 그렇게 해줄 수 있겠니?” 정도가 적당하다. 만약 학생이 “싫은데요”라고 거부하면 미소로 답하면 된다. 학생이 판단하여 교사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상황인데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

3. 학생에게 말할 기회를 주자.

  교사가 일방적으로 말을 많이 할 때 꼰대가 될 위험성이 가장 높다.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면 학생들이 답을 잘 안 한다고 그들에게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늘 할 말이 많다.(사실 너무 많아서 힘들다).

  나도 학생과 소통이 원활하게 하는 능력자가 아니다. 다만 내 얘기를 하고 난 뒤 형식적으로라도 학생에게 너의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불만이 있는 학생은 많은 경우에 아무 말도 안 하지만 이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잔소리를 들었다고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발언 기회를 자신이 선택해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교사는 끈기 있게 들어주어야 한다. 학생이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교사가 말할 기회를 줬으니 그 말을 끝까지 들어보는 것이 책임지는 자세다.

  위의 예시에서는 첫 번째 “안 그랬는데요”에서 학생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교사가 그 타이밍에 “선생님이 잘못 본 건가? 그럼 억울하지 않게 네가 뭐하고 있었는지 얘기해 볼래?”라고 물었다면 학생이 변명을 하든 입을 다물든 했을 것이다.


  교사가 스스로 꼰대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생활하더라도 어느새 꼰대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교사는 완벽한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한 번씩 자신의 모습을 재검토해보는 기회를 갖는다면 꼰대가 되는 속도를 늦추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자신을 믿지 말자. 언제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절대 꼰대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꼰대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니까.


P.S.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지만 가끔은 태형이있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더 드는 것은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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