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앞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나에겐 스위치가 있다. 생활지도의 범위는 다양하지만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 스위치가 켜지고 모든 감정과 판단을 내려놓은 채 기능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중립적으로 사안을 바라본답시고 단어도 조심스럽게 선택하고 누구에게도 내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공감도 추궁도 없다. 가벼운 일이든 심각한 일이든 나는 교육청에서 배부한 ‘학교폭력 업무 가이드북’과 ‘학폭예방법’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마치 교사가 아닌 것처럼. 가끔은 그런 나의 태도에 피해학생 측은 서운함을 느끼기도 한다.
A가 B를 때렸다. 그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B도 저항을 하면서 A를 건드렸다. B가 학교폭력으로 신고했고 A는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학교폭력업무를 담당한 교사가 어떻게 해야 할까.
1. A를 혼낸다. (아직 가해학생으로 확정된 것도 아니고 쌍방폭행인데 왜 혼내는가)
2. B에게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피해학생이 맞고만 있으라고 가르치는가)
3. A와 B를 화해시킨다. (교사가 화해를 종용하는가)
4. 그 정도는 크면서 애들끼리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는가)
*괄호 안의 말은 실제로 들어본 이야기다.
이렇게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매뉴얼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신고를 접수하고 보고하고 사안을 조사한다. 끝. 이러다 보니 욕을 한 것, 지나가면서 어깨로 친 것, 놀린 것 같은 사소한 갈등까지도 모두 학교폭력이 된다.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겠다는데 담당교사가 “그 정도는 학교폭력 아닌 것 같은데?”하고 말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교육이 사라져 버렸다. 스위치를 켜고 끄는 태도는 나에게 매우 유용하다. 자잘 자잘하게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많아졌지만 각 사건마다 감정 소모가 덜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적다. 실제로 현재 시스템은 사안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학교가 아닌 교육청에서 하기 때문에 학폭 담당 선생님의 부담이 확실히 줄었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이야기가 있다. 나는 동료 교사들에게 막상 걱정했던 것보다 학폭 담당 업무가 힘들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처음엔 내가 업무 능력이 있는 줄 알았다. ‘나 좀 센 듯?’ 하지만 이제 보니 내가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간편하게 스위치로 켜고 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덜 힘들었을 뿐이다. 스트레스는 적지만 가장 중요한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놓치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고군분투하는 생활지도 교사들은 업무담당자로서의 정체성과 교사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설정했을 것이다. 그들은 스위치가 아닌 정체성 컨트롤러로 교사와 업무담당자의 균형을 나름의 방법으로 지킨다. 양손에 두 정체성을 쥐고 있기에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고통 없는 사회모든 고통을 제거하려는 자는 죽음 또한 없애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과 고통이 없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 좀비의 삶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철폐한다. 인간은 불멸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삶을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이다. - 한병철, <고통 없는 사회> p.93
업무는 금방 익숙해지니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첫째, 학교 안에서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고 둘째, 폭력이 발생했다면 잘못한 학생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폭력을 예방하려고 마음을 먹으니 떠오르는 방법이라고는 CCTV로 감시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예방교육인데 이미 학생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은 하고 있다. 그래도 폭력은 결국 발생하고 만다. 무력감을 느낀다.
학생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더 어렵다. 폭력성향이 강한 학생을 두고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모색해 봐도 결국에는 부모님의 역할이 핵심이다. 학교에서 무엇이든 도움을 주려고 해도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하지만 부모님이 잘해야 한다는 결론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 그럴 것 같았으면 애초에 이런 문제가 발생할 확률도 줄었을 텐데. 그러니까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또 무력감을 느낀다.
단순히 학교에서 근무하는 종사자가 아닌 ‘교사’로서 역할하고자 팔을 걷어붙일 때 교사가 상처를 입는 경우를 종종 봤다. 법과 절차는 교사에게 오버하지 말라고 한다. 스트레스를 줄여주니 고맙긴 한데 마음이 아프다. 나는 오늘도 학교에서 아픈 마음속의 스위치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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