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교칙을 바꾼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이성친구와 학교에서 팔짱을 끼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이건 교사의 말도 학부모의 말도 아니다. 바로 학생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최근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생활규정을 만들기 위해 각 학교에서 노력하고 있다. 두발이나 복장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구시대적인 내용을 걷어내고 있다. 아직도 중학교 생활규정에 ‘대자보 금지’ 또는 정치활동 금지 등의 현시대와 맞지 않는 조항이 있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활규정은 ‘학생의 인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대전제로 시작한다. 단,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학교 구성원 동의가 있다면 일부 제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학생의 전자기기 사용 또는 통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단, 수업시간에 전자, 통신기기를 사용하여 수업에 방해가 되는 경우 교사가 휴대전화를 보관한 뒤 수업이 끝나면 돌려줄 수 있다.”는 식이다. 이제는 ‘단,~’ 뒤쪽에 붙는 것이 무엇이 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새로운 생활규정의 포인트다. 이 규정을 만드는 학교의 구성원 각각의 반응이 예상과 달라 재미있었다.
교사들은 생각보다 학생을 통제하는 규정에 소극적이다. 학생을 제약하는 항목 하나가 생길 때마다 학생과 갈등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성실해서(?) 학교 규정을 무시하지 못한다. 귀밑 3cm 규정이 있다면 지나가는 학생의 귀 밑이 자꾸 신경 쓰인다. 교사로서 성실한 자세로 머리 길이에 대해 잔소리를 시작하게 되면 갈등이 된다. 이런 불필요한 규정이 없어지고 나니 학생의 귀 밑 머리카락보다 학생과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 선생님들의 경험이다. 이 놀라운 변화를 현장에 있는 선생님들은 느끼고 있다.
생활규정의 변화는 학생의 용모보다 내면을 보게 되는 계기다.
학부모들의 요구는 다소 난감할 때가 있다. “우리 아이 혼 좀 내주세요”식의 마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지도해야 할 것과 학교에서 지도해야 할 것의 경계가 아직 명확하게 자리잡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학생이 화장을 하는 것을 학교에서 지도해야 할 일인가? 이것은 학생의 매우 개인적인 일이다. 자녀가 외모에 관심이 많은 시기이고 유행에 민감한 상황이라는 것을 부모가 인지하고 직접 자녀를 설득해야 한다. 공공기관인 학교가 학생의 외모나 피부에 대해 강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가정에서 부모님이 설득하지 못하는 일을 학교에서 강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학생들의 요구는 놀랍다. 너무 개방적이어서 놀라운 것이 아니라 보수적이어서 놀랍다. 학생회에서 대의원회를 열어 초안을 작성해온 생활규정의 일부는 교사나 학부모의 초안보다 훨씬 제한이 많았다. 가장 먼저 염색에 색깔 제한을 두고 있었다. 연한 갈색은 되지만 탈색했거나 탈색 후 염색하는 밝은 색깔은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성교제에도 제한을 두고 있다. 남녀가 사귀는 것은 되지만 학교에서 스킨십은 불허한다(손잡는 것은 된지만 팔짱 이상은 안된다고…). 벌점 제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달라고 요구했다. 게다가 벌점이 많은 학생을 청소로 상쇄시켜주지 말고 강력한 징계를 하라는 요구까지 있었다.
학생은 아직 교육의 대상이기에 학생들의 초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교육 취지에 맞도록 설명은 강압이 아닌 설득이 되어야 했다.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을 들어가며 표현의 자유와 학생들이 과연 제약을 받아야 하는 대상인가에 대한 깊은 이야기까지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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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것 있다.
첫째, 어린 학생들이 자유롭게 규정을 만들어도 이 사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영향력 있는 한 두 명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이 의견을 모은다면 일방적으로 편중된 결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이성친구 손을 잡아도 되느냐에 대해서도 40% 가까운 학생들은 손잡는 것조차도 불편하게 생각했다. (본인이 이성친구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다수가 되면 의견이 한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줄어드는 것 같다.
둘째, 아이들의 생각이 어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아니었다. 기성세대에게 교육받고 자란 아이들이기 때문일까. 세대 간 가치관의 전수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 사실은 좋게 말하면 가치관의 전수이지만 나쁘게 보자면 기성세대의 답습이 될 수도 있다.
셋째, 아이들도 변화를 두려워한다. 이번 생활규정 제개정을 계기로 학생들이 직접 규정을 변화시킬 기회를 제공했다. 학생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절차를 알려주고 교사가 행정적인 일을 지원했다. 그래도 학생들은 자신이 칼자루를 쥐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어른이나 아이나 급진적인 변화는 두려운 것 같다. 한편,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경험의 부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학생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교칙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고쳐보는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변화가 겁나기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랄까. 여기서 교사의 역할을 더욱 실감한다. 이런 과정을 어릴 때부터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적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필수적인 교육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 학교의 생활규정은 학생인권 친화적으로 바뀌었으나 학생들이 새롭게 요구하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상급기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얼떨결에 자유를 확보한 것이다. 아직은 어린 학생들이니까 이렇게 위로부터의 변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에는 자신들의 요구를 입법기관에 자신 있게 요구할 수 있는 민주시민이 되길 바란다.
P.S. 담임교사로서 학급 규칙을 우리 반 아이들이 스스로 바꾸도록 회의를 진행했다. 기특하게도 학생들이 욕을 하면 청소하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꺼져, X새끼’까지는 용인되지만 ‘느검마, 니애비’로 시작하는 패드립은 안된다. 이 규칙이 적용된 날 점심시간이 되기 전 몇 명의 학생들은 이미 한 달치 청소를 하게 됐다. 조만간 다시 바뀔 규칙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