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W Feb 06. 2023

예쁘고 단단한 매듭

매번 실패했던 마무리, 이번에는 잘해보려 합니다.

  일정 기간을 한 학교에서 근무하고 나니 이제 떠날 때가 됐다. 학교를 옮기기로 마음을 먹은 이후로 이번만큼은 마무리를 예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어느 집단에서든 마무리가 시원치 않았던 것 같다. 그 집단에 애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곳의 활동이 싫었던 것도 아닌데 왜 끝이 늘 미숙했을까. 인싸체질이 아닌지라 나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마음과 아쉬움을 표현하는 게 쑥스러웠던 마음이 같이 있었다.

  대학생 때 학보사에서 2년간 일을 열심히 했다.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하루빨리 일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오버해서 빨리 나오고 싶어 했던 것이다. 남아 있던 사람들은 서운했을 것 같다. 군대를 전역할 때도 탈출하는 마음으로 나왔다. 전역일을 손가락 꼽아가며 하루라도 빨리 나오고 싶었다. 군대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에 대한 인사도 충분히 하지 않고 내가 전역한다는 사실에만 집중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군대 선후임과 연락을 이어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다. 어학연수를 갔을 때도 비슷했다. 한 세션을 마치고 다른 어학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곳에서 나는 수많은 외국인 학생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를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떠나면 될 것 같아서 정말 조용히 사라졌다. 나중에 한국인 친구가 말해주길 어학원 선생님들이 갑자기 사라진 나에게 섭섭해했다고 전해줬다. 미안한 마음과 나를 기억해 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헤어지는 것에 미숙한 걸까? 생각을 많이 했다. 어느 집단에서든 성실하게 활동했고 사람들과 관계도 원만했다. 그런데 이별할 때는 도망가듯 했다. 이 마지막 마침표가 어색하니 지금껏 나의 활동이 불완전해 보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과거의 실수를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교사로서 첫 번째 학교를 떠나기 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정리하고 실천했다.


<해야 할 일>

충분히 인사하고 아쉬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끝까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

인수인계를 꼼꼼하게 처리하고 떠난 후에도 후임자를 당분간 돕기

가까웠던 동료와 식사하기

지금까지 같이 근무한 공간을 가치 있는 곳으로 기억하기

<하지 말아야 할 일>

헤어지는 것을 쑥스러워하지 않기

업무 종료를 조급해하지 않기

다음 학교에 대한 기대감 표현을 자제하기

  교사에게 첫 학교는 중요하다. 교사로서 삶에 대한 첫인상이 각인되는 곳이고, 어떤 동료를 만나느냐에 따라 신규교사의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영향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좋은 동료와 학생들을 만났다. 작은 일을 크게 칭찬해 주시니 학교생활이 힘들 때에도 늘 보람 있었다. 강력한 지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실패감 보다 앞으로 새로운 시도를 기대하게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다음 학교에서도 열심히 할 수 있는 동력이 이 학교에서 만들어졌다.


P.S. 매듭 잘 묶은 것 맞나? 히히

이전 17화 교사가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