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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W Aug 24. 2023

“가해 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랍니다.”

학폭절차로 피해자 측의 마음은 위로 받을 수 있을까


‘진심 어리고’ ‘심심(甚深)한’ 사과는 상투어가 됐다. 유명인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자주 쓰는 표현이며 사과 앞에 붙은 수식어와 함께 한 몸이 된 말이다. 닳고 닳은 표현이라도 그 안에 담긴 뜻이 가벼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사과를 할 때는 진심이어야 하고 깊은 마음으로 해야만 한다. 피해자가 겪은 고통은 '사과'라는 행위만으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통해 상대를 위로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모든 사람이 사과를 할 땐 진실되고 심심한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학교폭력절차에서 마주하는 사과는 그렇지 않아 고민이다.


  얼마 전 상대학생에게 서면사과를 받은 피해자 측이 민원 아닌 민원전화를 걸어왔다. 서면사과가 너무 성의가 없고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해학생이 사과문에 진심을 담으면 참 좋으련만 무성의한 변명문을 쓴 사과문이 실제로 참 많다. 그렇다면 교사는 교육을 통해 학생의 사과문에 진심을 담아낼 수 있을까. 교사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사과문이 진심 어리고 심심하게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방법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으나 글을 못쓰는 학생들이 있다. 글씨도 삐뚤삐뚤한 학생들에게 문장으로 상대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참 요원한 일이다. 그래도 진심이 통한다는 믿음을 가져보지만 기술적 문제에 좌절하기 십상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 민주시민생활교육과에 따르면 가해학생 조치 1호 서면사과는 교사가 지도할 수 있으나 강제할 수 없다. 또한 피해학생 측이 서면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가해학생이 작성한 서면 사과문이 적절하다면 조치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즉 현실적으로 보자면 가해학생이 서면사과문을 써오면 피해학생이 만족하지 않았더라도 학교는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교사가 사과문을 다시 쓰라고 한다거나 양을 더 늘려 쓰라고 한다면 가해학생 측이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할지도 모를 일이다.

  서면사과 조치는 받았으나 사과할 마음이 없는 경우가 있다. 많은 경우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도 서면사과를 써서 제출하는 것은 생활기록부에 학폭조치사항을 기재유보하기 위해서다. (최초 학폭으로 조치사항 1~3호 처분을 받은 경우, 정해진 기간 내에 이행하면 생활기록부 기재가 유보된다)

  이 학생들은 보통 사과문이 아닌 변명문에 가까운 글을 내기도 하며 이를 피해자 측이 봤을 때 더 큰 분노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더욱 교사가 행동하기 어렵다. 서로 감정이 상해버린 가해자 측 보호자 또한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이다.(교사는 자신의 말이 무조건 녹음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학교폭력은 사안의 형태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심의위원회에서 조치결정을 받는다고 해서 가해자의 마음이 갑자기 진실로 사죄하겠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조치를 이행하고 쿨하게 털어버리겠다는 심산이 되기도 한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은 ‘교육적 조치’가 아닌 ‘교육기관의 행정’ 일뿐이다.

  자녀가 학교에서 폭력(신체폭력, 사이버폭력, 따돌림 등)을 당하고 오면 부모님들은 분노한 상태로 학교에 온다. 흥분을 넘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때론 분노의 방향을 잘못 잡아 교사에게 분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당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데 가해자가 가장 강력한 9호 퇴학을 당한다 한들 분이 풀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보호자 상담을 할 때 학폭법으로 피해자가 개운해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미리 주지 시키고 시작한다. 학폭법은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는 역할이 아니다. 학교는 학폭법을 바탕으로 피해학생이 더 안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잘못한 학생에 대해 징계를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가해학생이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적법하게 벌을 받았다면 학교는 다시 그 학생이 정당하게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피해학생 측의 분노가 지속되고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 사법적 판단을 받아보라고 말하는 수밖에 없다. 교사로서 상대 학생을 재판장에 세우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교육은 위축되고 분노는 확대된 상황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민원전화를 했던 학부모는 표면적으로 행정처리 말고 가해학생에 대한 학교의 교육적 조치는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연간 계획으로 이뤄지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재발방지와 보복행위 금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담임교사가 생활지도를 통해 상대를 배려하는 사회생활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내가 들어도 원론적이고 답답한 대답이다. 하지만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학부모는 문제를 일으킬 만한 주요 학생들을 중점적으로 교육하고 학교폭력 사후처리가 아닌 예방적 교육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미안하지만 안된다고 말했다. 특정 학생을 교사가 잠재적 가해자로 정해놓고 교육하는 것을 그 학생들의 보호자는 가만히 있을 것인가? 자신의 자녀가 잠재적 가해자로 지목되고 낙인이 찍히는 것을 두고 보는 보호자가 잘못된 것이다. 또한 예방적 교육은 매우 듣기 좋지만 특정인을 지목해서 하는 것은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의 예언자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보편적인 학교폭력예방교육을 연간 횟수를 지정하여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학폭법은 완벽하지 않고 앞으로도 완벽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과 어긋나 헛도는 느낌을 실무자로서 늘 느끼지만 마땅히 대안도 떠오르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이 입법활동을 통해 더 정교한 학폭법을 만들어주길 기대하면서 학교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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