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로 시작해 은둔으로 나아가는 과정
어릴 땐 오래 달리기가 싫었다. 공도 없고 상대도 없으니 지루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사점을 느끼기 마련인데 축구나 농구는 공이 날아오는 긴박함 때문에 그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하지만 오래 달리기를 할 때는 그 사점의 고통을 오롯이 정면으로 감내해야 했다. 30대가 되어서야 러닝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러닝이라기보다는 걷기와 달리기다. 이 운동은 예전에 가장 큰 단점으로 여겼던 ‘지루함’이 장점으로 인식되면서 또 다른 재미를 내게 안겨주었다. 처음에는 한 시간 넘게 뛰는 것이 지겨워 이어폰이 꼭 필요했었는데 이제는 이어폰을 일부러 빼고 달린다. 온전히 느껴지는 심박수,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 입과 코로 들고 나는 차가운 공기가 나를 즐겁게 한다. 3km를 뛰는 것도 부담이었던 내가 이제는 10km 이하로 뛰면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가 됐다. 나는 주로 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걷고 달리는 중이다. 같은 구간을 스마트워치로 기록해가며 반복하니 나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달리기와 관련된 책을 소개하자면 조지 쉬언 <달리기와 존재하기>,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크리스토퍼 맥두걸 <본투런>이 있다. 달리기 전과 달리기 시작한 뒤의 독서가 달랐다. 책마다 작가가 말하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다면 꼭 달리기를 경험한 뒤 읽기를 추천한다. 만약 달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작가들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달린 거리와 독서의 깊이가 비례한달까.
달리기는 곧 걷기와 연결된다. 10km를 뛰러 나오면 실제로 달리는 것은 6~7km고 나머지는 걷는 시간이다. 때때로 아내와 함께 나올 때면 더 오래 걷기도 한다. 뛰는 것이 내 몸의 원초적 감각에 집중하는 시간이라면 걷기는 감각을 확장시키는 시간이다. 걷기와 관련된 책을 소개하자면 레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장 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가 있다. 이중에서도 레베카 솔닛의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걷기는 곧 생각하기와 연결된다. 같은 템포와 동작으로 팔다리를 반복하여 움직이다 보면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생각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폰을 켜고 검색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이다. 그래도 휴대폰을 잠시 넣어두고 먼 곳과 가까운 곳을 살피며 걷기를 바란다. 이 시간은 나에게 필요했던 진짜 생각들을 만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나는 걸으면서 휴대폰으로 놓치고 싶지 않은 생각을 메모하는 용도로 쓴다. 걷기가 능숙해지면 음악, 검색 앱보다 메모 앱이 유용해진다.
이 생각하기는 다시 명상과 연결된다. 야외에서 걷는 다면 날씨와 장소를 내 온몸으로 겪는 경험을 하게 되니 종교적인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는 가끔씩 불교의 참선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도 하고, 순례자들의 깨달음도 이런 걸까 하며 ‘러닝 뽕’(?)에 취한다. 물론 구도자들의 경지에 이를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이런 감각은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한강에 사람이 많더라도 상관없다. 나 홀로 뛰러 나왔다면 나는 혼자인 상태다.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 명상의 순간은 ‘은둔’으로 귀결된다. 캐롤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데이비드 빈센트 <낭만적 은둔의 역사>가 이 주제와 어울리는 책이다.
러닝의 목적이 건강에서 사색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있다. 러닝을 하다가 숨이 차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멈췄다면 이미 남들과 다른 러닝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걷기와 달리기가 좋은 운동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으로 직접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아무리 설명해봤자 스스로 경험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달리기를 조금이라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을 공개한다.
1. 생각보다 비싼 러닝화를 산다. 투자금액이 높으면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2. 뛰기와 걷기의 비율을 5:5로 설정하고 시작한다. 달려야만 운동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밖에 나왔다면 성공이다.
3. 밖에서 뛰는 것이 효과적이다. 추우면 기모 레깅스를 입고, 더우면 해가 진 뒤 뛴다. 눈이나 비가 오면 그냥 쉬는 것도 좋다.
4. 러닝의 왕도는 없다. 다양한 정보를 수용하되 나만의 러닝 스타일을 찾자. 좋은 자세를 따라 하다 보면 내 자세를 찾기 쉽다.
5. 컨디션이 나쁠 때는 3km만이라도 걷고 오자. 걷다 보면 어느새 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