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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W Apr 25. 2022

“선생님, 그건 졸라 오바잖아요 ㅋㅋㅋ”

친구 같은 선생님, 자신 있나요?

평소 학생들에게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이던 젊은 교사 A는 수업 중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소 과장된 예시를 들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웃으며 “선생님, 그건 졸라 오바잖아요”라고 말했다. A교사는 학생의 의도에 악의가 없음을 알면서도 당혹감과 솟구치는 분노를 억눌러야 했다. 존칭과 비속어와 친근함(?)이 혼재되어 있는 혼돈의 문장이었다.


교사가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경우 A와 비슷한 일을 겪는 경우를 종종 봤다. 그리고 그 혼돈의 문장 속에서 교직에 회의감을 느끼기도 한다. 교사가 만나는 많은 학생들 중에는 ‘친구’와 ‘교사’ 사이의 선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녀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화가 난다. 아무리 친구 같아도 선생님인데 그런 말을 하다니…. 내가 우스워진 것은 아닐지 고민은 깊어진다.

그렇다고 학생만 탓할 수는 없다. 학생은 선생님이 정말 친구 같아서 친구에게 말하듯 했을 뿐이다. 학생 입장에서 억울할 것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친구를 대하듯 농담도 하고 가끔 은어도 섞어 쓰면서 왜 학생이 같은 방식으로 선생님을 대하면 이상한 놈이 된단 말인가? 우리의 우정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학교 안에서 ‘친구 같은 선생님’은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해주고 평소에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이 바로 친구 같은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역할은 초고층빌딩 옥상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처럼 너무 어렵고 위험한 책무이므로 열정이 앞선 젊은 교사보다 경험이 많은 교사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연세가 많다는 사실 때문에 학생들과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려울 것 같았던 선생님께서 탈권위적인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다가갈 때 아이들이 느끼는 감동은 더 크다. 무례함과 친근함의 경계를 잘 가르쳐줄 수 있는 노련함은 세월이 뒷받침하는 전문가로서의 교사만 갖고 있는 스킬이다.


우치다 타츠루의 <완벽하지 않을 용기>에서 저자는 교사 한 명이 완벽한 인격체일 수는 없으며 집단으로서의 교사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서운 선생님이 있다면 자상한 선생님도 있고, 재밌는 선생님이 있다면 쌀쌀맞은 선생님도 있는 것이다. 친구 같은 선생님과 어려운 선생님이 모두 필요하다.

학교 교육은 다양한 교사의 집합체로서의 교육 공동체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유형만큼 다양한 선생님이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은 보통 10~15명 정도다. 다양한 선생님을 통해 어른들과 소통하는 법도 배우고 그만큼 탄력적인 인격을 갖추게 된다.


학교 안에서 교사의 스타일을 분담하는 것은 업무 분장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공동체로서 서로를 보완하여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남성과 여성, 젊음과 노련함, 엄격함과 자상함, 각자의 과목 등으로 교사의 정체성이 규정된다. 특정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면 교사 공동체의 훌륭한 구성원이 된다.


나는 <완벽하지 않을 용기>를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사실 교사로서 부족한 나의 모습에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불편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학생의 실수를 자상하게 지도해줘야 했는데 나는 짜증을 냈고, 학생들의 시시콜콜한 잡담도 끝까지 들어줘야 했는데 무시하기도 했다. 나는 결코 친절한 교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의 그런 부족함을 다른 교사가 채워줄 것이라는 말에 안도했고 다른 교사의 부족함을 내가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사들의 연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나의 업무노트를 돌이켜보니 교직 경력이 1년씩 쌓일 때마다 나의 스타일도 변화무쌍했다. 신기한 것은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과 균형을 맞춰왔다는 사실이다. 무서운 선생님이 옆에 계시면 나는 보다 자상해졌고 때론 웃긴 역할도 맡았다. 내 노트를 보니 초임 때 나도 A교사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렇기에 A의 분노에 공감할 수 있었나 보다. 교사도 세월에 따라 구성원에 따라 학생들에 따라 다각도로 변화한다.

아직 나는 ‘친구 같은 교사’는 자신이 없다. 나에게 혼돈의 문장을 남기는 녀석들을 웃으며 넘기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50대의 노련한 선생님이 되었을 때 내가 학생들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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