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교사와 학생에게 주어진 짧은 조종례시간,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이런 극도의 고독 속에서 결국 아무도 이웃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고, 저마다 홀로 자신의 걱정에 잠겨 있었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우연히 속내를 털어놓거나 자신의 감정을 토로해도, 그 사람이 들을 수 있는 대답은 대부분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상대방과 자기가 서로 엇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먼저 얘기를 꺼낸 사람은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곱씹으며 괴로워하던 끝에 자신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었으며 그가 전달하고자 한 이미지는 기대와 열정의 불 속에서 오랫동안 익혀온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것을 시장에 가면 살 수 있는 괴로움이나 연속극에서 볼 수 있는 우울증 같은 상투적인 감정으로 치부해버렸다. 호의적이든 적대적이든 그 대답은 늘 빗나가는 것이어서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에서-
카뮈의 <페스트>가 코로나 시대에 다시 읽혔다. 이번에 읽을 때는 다른 내용보다 ‘서로 엇나가‘고 ‘늘 빗나가는’ 소통이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에게는 해줄 말이 참 많다. 특히 2022년에는 코로나 시대를 겪고 온 아이들이라 교정해줘야 할 것들이 더욱 많게 느껴진다.
자칫하면 조종례 시간이 길어지고 잔소리가 많은 선생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할 말을 정돈해야 한다. 조종례 시간이 부족하다고 내 교과 시간인 체육시간에 생활지도를 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럽다. 체육활동이 1분씩 줄어드는 것을 아이들은 쉽게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준비해서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매번 완성된 글을 써서 말을 할 수는 없기에 메모지에 서론, 본론, 결론만 메모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서론: 이제 친구들이랑 좀 친해진 것 같죠?(부드러운 말투, 미소로 분위기 좋게 만들기)
본론: 친해질수록 친구 사이에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신체 접촉하지 말기, 험한 말 쓰지 않기, 나의 물건 소중히 하기
결론: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조회시간에 이 세 가지를 선생님이 강조했으니 오늘만이라도 조심해보자. (가벼운 분위기 유지, 웃음 유도)
쉽고 짧게 정리해서 얘기했다지만 내 의도가 정확히 전달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몇몇 아이들은 초롱초롱 눈을 맞춰가며 끄덕여주니 소통이 된 것 같지만 교사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저 선생님의 말이 끝나는 타이밍만 재고 있을지도.
아무리 단어를 고르고 어조를 선택해도 나는 우리 학급 25명조차 공감하게 하는 것이 벅차다. 교사의 말을 마치고 교실문을 나서고 나면 ‘늘 빗나가는’ 느낌이 남아 자꾸 입을 다무는 단념의 길을 찾게 된다.
어떻게 하면 조종례 합쳐서 10분이 되지 않는 시간을 활용하여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는 작가가 느낀 것들을 텍스트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고, 그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공하여 작가와 독자가 그 느낌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책에서 다뤄진다. 글쓰기가 전문인 사람들도 자신의 느낌이 빗나가는 것에 고통스러워하니 그저 교사인 나에게 ‘느낌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은 요원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내가 세우는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언어를 더욱 정교하게.
중학교 1학년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내용을 고르고 또 고르자. 그리고 최대한 짧게 말하자. 그렇다고 조종례가 함축적이고 아름다운 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실용성을 고려한 1차원적이고 단순한 언어를 활용하기. 학생들은 길게 늘어지는 말을 듣지 않는다.
2. 언어로 마음이 닿지 않는다면 다른 미디어를 사용.
선생님의 몸짓(연기), 관련된 유튜브 영상, 음악, 미술 등을 활용하여 다른 감각으로 공감을 이뤄내자. 글과 말이 아닌 형태가 우리 학생들에게는 더욱 친숙한 매개체일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설명했을 때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학습하는 학생들이 있다.
3. 모두를 이해시키려는 욕심을 버리기, 한 번에 이해하길 기대하지 않기
25명의 학생 중 한두 명만 이해시켜도 큰 성공이다. 나머지가 이해 못 하는 것에 좌절하지 말고 한두 명이 이해한 것에 기뻐하자. 그리고 한 번에 이해하면 천재다. 앞으로 1년을 매일 만날 아이들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기다려주자.
P.S. 위에 서/본/결론을 메모해서 얘기 한날 그날 우리 반에서 패드립과 가벼운 몸싸움이 있었다. 내 말이 소용없었음에 잠깐 좌절했지만 세 번째 전략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