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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Dec 05. 2022

영화제에 초대받았어요!

소심한 작가의 소란스러운 영화제 준비記

어쩌다가 이번 주 금요일로 다가온 <대종상 영화제> 초대장을 받았다. 작년엔 대종상 영화제가 열리지도 못했다고는 하는데, 여하튼 상상도 못할 일이 우연하게 벌어졌다.


내 취미는 영화제나 뮤지컬 대상 등등 '각종 시상식 보기'다. 사실 이 취미는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다지 생산적이지도 않고, 킬링타임에 가까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상 타는 것 보면서 옆에다 세수 수건 놓고 혼자 감동해서 흑흑 어깨를 떨며 울고 앉았는 내 모습이 그다지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아서였다. 그리고... 지금도 고백하기 참 어려운 까닭이 바로 '내 욕망'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오래전부터, 어쩌면 시상식을 보는 취미를 가지게 된 이후부터 나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상상해왔다. 그것이 신춘문예가 되었든, 동네 글짓기 대회가 되었든, 대한민국 최고의 각본상이 되었든 어쨋든 내가 무대에 올라가 상을 타는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수상 소감을 준비했다. 겸손하고도 위트 있고,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릴만한 좋은 문장을 뽑아내고 고치고 또 고쳤다. 아, 어떤 타이밍에 눈물을 흘려야 할지, 여우주연상도 아닌데 눈물 흘리는 것은 오바일 것 같아서 꾹 참아야 할지...  감정 수위를 정하기도 했다.

이런 은밀한 세리머니는 아주 오랫동안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러다가 아뿔싸! 술자리에서 이 사실을 실수로, 혹은 느슨해져서 누설하고야 말았다. 결국 돌아오는 소리는 당연히 내가 취미를 은닉했던 이유랑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고 마음에 약간의 상처를 남겼다.

"무슨 작가가 다 쓰기도 전에 시상식 수상소감부터 준비를 해요?"

"그러게요.................."

뭐 그 정도쯤이야 그냥 빨간약 정도 바르면 금방 나을 창피함이었다.


<동백꽃 필 무렵>을 쓴 임상춘 작가는 '작가란 늘 작품의 뒤에 서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있다'고 했다.그래서 공식석상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이름도 본명이 아닌, 누가 들어도 필명 혹은 가명 같은 이름을 쓴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가지고 관심 받고 싶어서 애쓰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는 임상춘 작가의 이런 모습이 멋있었다. 자기가 누군지 굳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 않아도 전국을 덜컹 들었다 놓은 '동백이'를 쓴 작가라는 것,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기꺼이 작품의 뒤로 숨겠다고 한다. 아, 얼마나 멋있나!

그런데, 그건 그 사람 생각이고....  김칫국부터 들이마시며 수상소감을 준비하던 나는 몹시 창피했다.  그렇게 내 마음에 아까징끼를 바르고 있던 와중에 <대종상 영화제> 초대장을 받은 것이다. 그냥 구경꾼으로 초대받았기 때문에 '청바지에 돕바' 입고 가도 아무도 뭐라 안 하는 자리다. 그저 초대해준 친구의 정성을 봐서 예를 갖추어 블레이즈 정도 입고 가면 그만일...


그런데, 초청장을 받자마자 내 마음이 너무 신나는 것이다. 뭘 입고 가지? 어떤 귀걸이를 하고 가지? 신발은 어떻게 맞춰 신고 가야 하나? 내가 상을 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어떤 후보에도 당연히 오르지 못한 처지(당연하다. 각본 쓴 것이 없으니... 쯪쯪...)에서 참석하는 최초의 영화제이지만 즐기고 싶었다.

게다가 금요일 몇 시부터 레드카펫 행사 있으니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당장 입고 갈 옷도 없었다. 2013년 이후 한 10년 정도 쇼핑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그때부터 내 경제 상황도 내리막을 걷고 있기도 했고, 그 몇 년 전 내 주제도 모르고 백화점에 면세점에 빈티지 샵에 싸돌아 다니면서 돈을 물 쓰듯 쓰던 패악에 대한 자숙의 의미로 쇼핑을 자제했다. 정말 청바지 입다 입다가 찢어지면 한 번 사고, 티셔츠 입다 입다가 목이 늘어나서 가슴이 다 보일 지경일 때 한 벌 보강하고... 매우 강력한 긴축 정책을 이어오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아, 이제는 한 번 예쁘게 꾸며 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당장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오십 살인데, 얼굴 녹아 내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이제는 팔다리에 아무리 바디로션을 발라도 조금만 지나면 버석거린다. 더 바짝 마른 고목나무가 되기 전에 꾸며 보고 싶었다.


나도 스타가 되고 싶어.

얼마 전 계약한 책의 '임시' 제목이다. 물론 출판 진흥원의 공모 사업 같은 곳에 내려면 이 원초적인 제목은 당연히 다 뜯어 고쳐야 할 것은 알고 있다. 공모 사업의 심사 위원들은 아무리 통통 튀는 명랑 발랄 에세이여도 이런 1차원적인 제목을 안 좋아하신다. 조금 더 고상해야 한다. 나도 어느 덧 책 짬이 몇 년 되어서 그런 분위기와 마케팅 포인트 정도는 파악 가능한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나의 욕망에 가득한 원초적인 모습, 그간 버둥거려온 모습 등을 잘 알고 있는, 따로 고생스럽게 내가 누군지 진땀 빼며 설명하지 않아도 되어서 굉장히 고마운 편집자의 제안으로 기획한 책이다. 그리고 어쩌면 출간이 될 때까지, 어쩌면, 스타가 되지 않아서 현재 진행형으로 몇 달, 몇 년 더 가야할 책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결과를 모르는 책이다. 그래서 '스타 이즈 본'이 아닌, '되고 싶어'로 끝맺음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완'의 상태, 가능성, 희망도 좋았다.


지난 주말은 온통 인터넷 쇼핑으로 시간을 보냈다. 눈알이 빠질 듯했다. 딱 맘에 드는 브랜드 하나 들어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고 싶을 정도였다. 원래 생필품을 사던 사이트에서 시상식에 어울릴만한 저렴한 옷을 고르려고 하지만 쉽지 않았다. 위 아래 적절한 착장을 상상하기 어렵기도 했고, 사진 속의 모델은 이렇게 예쁜데 막상 받았을 때 실밥 다 튀어 나온다든지 퀄리티가 안 좋았을 때를 완벽 대비하기 힘들었다. (우리에게 남은 날은 단 일주일!) 아니나 다를까... 로켓 배송으로 온 하루만에 배송된 옷들은 모두 반품할 수밖에 없었다. 업체가 옷을 잘 못 만든 잘못이 아니라 내가 잘못 고른 탓이 훨씬 더 컸다. 오케이, 그렇다면 그냥 우리집 앞의 옷가게에 가서 주인 언니의 안목에 도움을 받으리라 결심을 하고 추운 날 옷깃을 여미고 갔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이도 저도 결정된 것들이 없어서 답답했다. 그냥 하던 대로 청바지에 어그 부츠 신고 갈까. 다들 꾸미고 올 텐데, 그런 내가 더 튀고 힙해보일 수도 있잖아! '꾸안꾸(꾸미지 않은 듯 꾸민)'가 아닌 진짜 '꾸안(꾸미지 않은)'이 될 테지만...




처음에 이 차림으로 가려 했으나, 너무 추울 것 같아 패스.



결국은 이 세트로 결정했다. 검은 치마에, 다크 그린 셔츠, 그리고 포인트 귀걸이.

만약 집으로 배송이 제대로 원활히 된다면. 만약, 배송에 차질이 있을 때 발령될 '진돗개 하나'는 잘 모르겠다.





자꾸 망설여졌다.

"아직 작품도 다 안 써놓고 무슨 시상식장에 그렇게 꾸미고 와?"

핀잔을 받을 것 같아서 최대한 안 꾸미고 싶은데, 또 꾸미고 싶은 것이다. '내 마음 나도 몰라'가 아니라, 정말 잘 아는데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상 받는 자리여도 이렇게 유난떠는 것도 촌스러울 텐데, 하물며... 닥치고 글이나 열심히 써야지 이 무슨 호들갑인가 싶고, 또 그러기에는 내가 언제 이런 시상식장 한 번 와보나 싶은 마음에 예쁘게 꾸미고도 싶고.


오늘 아침,  갑자기 내 페친분이 한 분 생각이 났다. 메이컵과 헤어를 하시는 분이다. 메이크업 사진 올라온 것을 보면 굉장히 자연스러우면서도 개개인의 얼굴의 장점을 잘 드러내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분께 정말 큰맘 먹고 페이스북 메시지를 드렸다. 금요일에 메이크업 헤어 가능하시냐고. 마침 다행히 시간이 맞았다. 역시 사전 질문도 꼼꼼히 해주신다. 평소에 바라는 스타일 있는지, 피부 표현은 매트한 것이 좋은지 물광이 좋은지, 립도 어떤 것이 좋은지 등등... 게다가 속눈썹은 붙이는 것 괜찮은지까지 물어보신다.

"사실... 이번 메이크업은 화장한 것 안 들키면서 세련되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주문' 했다. 그리고 지금  입장을 말씀드렸다. 괜히 작업도   끝났으면서 허파에 바람 들어서 시상식 간다고 혼자 신나가지고 꾸미고 왔냐는 놀림을 듣고 싶지가 않다고 말이다.


이런 갈팡질팡하는  마음, 그리고 어떻게 보면 창피한  상황을 꼼꼼하게 기록해두는 이유는 나중에  글을 읽고 어떤 마음일지 궁금해서다. 그리고  인생에서 영화제 초청장을  받을 수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메이크업하고   입을까 신경쓸 시간에 작업이나 열심히 하라는 말 들을 걱정 안해도  정도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심은...

아아, 일단 미뤄두자. 지금 얼마나 들떴는데! 일단 즐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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