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작가의 유퀴즈 방송을 보고...
내가 왜 이 방송을 이제야 봤지? 시간이 날 때마다 '무엇이든 물어보살'하고 '유퀴즈'는 꼭 챙겨보는 편인데 말이다. 사실 이 방송을 보기 전에는 주호민 작가가 영화 <신과 함께> 웹툰 원작자라는 것하고 '이마트' 광고 그야말로 약 빨고(?) 찍었다는 것 외는 아는 바가 없었다. 이말년하고 함께 방송하는 것도 가끔 봤는데 나한테는 그닥 안 웃겼던지라... 그러다가 어젯밤 우연히 내 눈에 띈 유퀴즈 주호민 편.
주호민의 큰 아들은 2013년 생인데 자폐친구라고 한다. 그동안 방송에서 '굳이' 그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묻더란다.
- 오빠는 방송에서 왜 둘째 얘기만 하고, 첫째 얘기는 안해?
어, 내가 그랬나? 곰곰 되돌아보니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했는데, 그게 그렇게 부끄러웠다고 한다. 참 마음 아팠을 것 같다. 그 뒤 큰아들 선재를 sns에 공개하고, 용기내어 우리 아들은 자폐아라고 밝혔는데, 주변에서 아빠 주호민에게 정말 어마어마한 응원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동안은 서로 이야기안해서 몰랐던 사람들도 우리 아이도 자폐라며 밝히고 통성명하기도 하고. 이런 '커밍아웃'은 남다른 아이 때문에 조금은 외로울 장애아 부모님들에게 큰 힘이 된다. 너도? 어, 나도! 이거 얼마나 마음 놓이는데...
우리 아들은 2014년 생. 처음에는 그냥 고집 센 아이가 잘 울고, 소리도 잘 지르고... 그저 그런 줄 알고 키웠다. 돌 즈음에는 엄마, 아빠라는 말은 물론이고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생님' '서앵님'이라고 하면서 부르기도 해서 아우~ 우리 혜성이 말 빨리 트이겠다면서 기대가 컸었다. 그러다가 돌 지나면서부터 감기에 걸렸다 하면 열이 펄펄 끓고, 37.5도만 넘어가도 아이가 눈이 돌아가면서 경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집 냉장고에 각종 해열제만 4-5개씩 준비해놓고 돌려가며 먹였다. 그래도 열이 잡히지 않으면 그길로 바로 응급실 행, 입원을 반복하는 헬게이트가 열린 것.
한 번은 주말에 할머니댁에 갔다가 바로 입원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바이러스가 무려 6개가 한꺼번에 걸렸었다. 호흡기 4개, 소화기 2개... 그중 하나가 신종플루였다. 의사들도 이게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 사실 나는 그때 아이 그냥 그대로 보내는 줄 알고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도 기적 같이 나았고, 사진은 퇴원하던 날 아침 회진 때 사진이다. (저 선생님은 지금 어떤 의사선생님으로 성장하셨을까!)
주변 사람들은, 그리고 전문가들은 열병과 연관이 없다고는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안녕, 엄마, 아빠 다 하던 아이가 다시 '안녕'을 찾는데 3년이 걸린 것이 그 때문이 아닌가 짚게 된다. 그 뒤로 아무리 기다려도 말문이 터지지 않았다. 그냥 꺄아악 소리를 내거나 의사가 잘 전달이 되지 않으면 자기도 답답하니까 징징거리며 울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계속 기다려보자고는 하셨는데 나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병원에 검사를 예약했다. 1박 2일 동안 있으면서 뇌파까지 검사를 해본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병원... (써글....) 아이가 언어가 안 되는데 당연히 검사 자체가 안 되는 것을 가지고 그냥 수치화 시켜서 아이를 돌고래 아이큐를 만들어놨다. 그리고 뇌파고 뭐고 아이가 아무리 수면제를 투여해도 깊은 잠에 들지 않아서 실패. 그 악몽같았던 1박 2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여하튼 결과는 당연히 자폐성 장애.
내 인생에 '장애'라는 단어가 처음 들어오던 날이었다. 페이스북에 이 사건(!)을 검사 결과를 받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올렸다. 평소에는 좋아요 100개도 넘기 어려웠는데, 순식간에 좋아요 350개가 붙고, 위로 댓글도 계속 달렸다. 관종이 됐든 페충이 됐든, 그때 내 심정은 그거라도 아니면 나는 진짜 괴로워 못참을 것 같았다. 그날... 울었나? 기억이 안 난다.
그 뒤로 벌써 7년... 남편과 혜성이를 기르면서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명확했던 것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얘 뭐 하고 사나, 뭐 하면서 독립하나 하는 걱정은 잠깐씩 들지만 '대책을 세우면 되지' 하고 그걸로 끝. 지금 열 살인데 말 처리가 완벽하지 않다. 그러면 어때.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인데 말이다. 지금은 뭐가 먹고 싶은지도 알고, 아프면 어디가 아픈지도 이야기한다. 이거면 됐지! 그리고 아이 때문에 이거 못하고, 저거 못하는 것 없다. 각자 알아서 여행 다니고, 일 열심히 하면서 산다. 아이의 상태가 커가면서 많이 호전되는 것도 엄마, 아빠가 자기 보면서 걱정 1도 안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자식이어도 엄마, 아빠가 나만 보면 걱정하고 한숨 쉬고 그러면 정신병 걸릴 것 같으니까.
아, 딱 한 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운 적이 있구나.
아이가 학교 들어가서 첫 달, 3월이었다. 학교에 특수학급이 생긴 첫 해였다. 그리고 특수교사도 처음 채용되어 왔는데... 나는 일을 해야 하니, 당연히 학교 마친 후 아이를 돌봄 교실에 보내든지, 다른 집처럼 학원 뺑뺑이를 시켜야 한다. 아이는 7살 때부터 유치원 마치고 돌봐주실 활동 지원 선생님이 계셨는데, 하루에 6-7시간을 돌봐주실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돌봄 교실 신청하면 되겠지 하고 있다가 3월 개학 후 첫 주에 갑자기 학교에서 호출을 받고 가게 되었다. 교감 선생님, 돌봄 총괄, 특수학급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측 의견(이라고 쓰고 처분으로 들었다, 나는...) 아이들의 '위험 방지'를 위해서 장애아는 돌봄 교실에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돌봄 교실에 특수 교사가 배치되어 있지 않아서 나온 의견이겠지만 너무 불공평했다. 그 자리에서 반발했다. 아이가 오랑우탄이라도 되는 거냐고, 장애아가 다른 친구들을 해하는 존재냐고 말이다. 그럼 장애아 엄마, 아빠들은 밖에서 근무 시간 채워 일하지도 못하냐고.
안 그래도 학교에서 돌봄 교실 입실에 난색을 표하는 것을 알고, 다른 동네 돌봄 센터도 갔다와 보기도 했다.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울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회의를 마쳤다. 사실 회의가 아니라 우리 아이 한 번만 믿어달라고 애원하는 자리였다. 그렇게 다른 선생님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와 함께 남은 특수교사 선생님이 내 손을 잡으면서 제가 힘이 없어요, 이렇게 다른 방법을 못 찾아드려서 죄송해요, 제가 할 방법이 없어서 죄송해요... 하면서 우는데 선생님이 죄송하실 일 절대 아니라고 위로해드리다가 그만 나도 엉엉 울어버렸다. 아, 그해 봄... 참...
지금? 교감 보란듯이 돌봄 잘 다니고 있지, 뭐. 돌봄 선생님도 우리 혜성이 귀여워죽겠다면서 3학년 때도 담당하고 싶다고 하신다. 우리 혜성이 완전 팬이 되셨고, 지난 9월 말 성북동에서 열린 <거북이 헬리혜성> 전시회 때는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하셨다.
주호민 작가의 차기작은 바로 큰 아이 선재 이야기를 담은 만화라고 한다. 자폐아를 키우면서 부모가 가지는 생각들 감정들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그냥 묵히면 금방 휘발될 것 같은 그 소중한 기억들...
나는 자폐아를 키우면서 이렇게 조각 조각 내 생각들을 가끔 쓰기만 했지, 그걸 작품으로 만들 생각은 못했다. 사실 아이의 일상이 '장애아'의 일상이라기보다는 그냥 '초딩'의 일상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본격 '자폐' 스토리를 쓸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주호민 작가를 보니 나도 분발을 해야겠네. 혹시 아나. <신과 함께>처럼 다음 작품도 영화화 된다면 그 시나리오는 진짜 내가 쓰고 싶다. (혹시 이것 보시면 연락주세요... ㅋㅋㅋ)
주호민 작가의 재발견. 같은 자폐 스펙트럼 친구를 키우는 입장에서 왠지 주호민 작가와 (나 혼자) 많이 친해진 것만 같다. 그분은 나 모른다, 당연히. ^^
얼마 전에는 서울대학교 발달장애 전문의 김붕년 선생님이 나와서 그때도 굉장히 재밌게 봤는데, 내일은 도대체 3년 전에 걸어 놓은 내 예약은 차례가 지금 얼만큼 왔는지 재미삼아(?) 확인이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