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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할 때 혼술 혼밥 하는 법

산청에서 먹는 산채비빔밥

by 황섬

산청은 지금 감 수확으로 분주하다. 어디를 가든지 감이 정말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담벼락 밖으로 축 쳐져있는 감나무 가지를 보면 '아, 저거 한 개 따서 가져가서 까 먹어도 아무도 모를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 쓰고 있는 드라마 스케줄 잡힐 때까지는 진짜 티끌만한 거라도 죄 받을 짓 안 하기로 결심한 터라 꾹 참았다. 마트에서 아이가 장난 쳐서 잘못 딸려온 '짱셔요'도 먼길 돌아가서 돈 다시 지불하고 오기도 했다. (나는 이렇듯, 몹시 기복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잔 따끈하게 마시고 산책에 나섰다. 경상남도 산청의 시천면은 일년에 적어도 두 번 이상은 꼭 들르는 곳이다. 늘 같은 숙소, 같은 집에 머문다. 짧게는 1박을 하고 가도 좋고, 이번처럼 길게 세 밤까지 자고 가기도 한다. 사정만 허락한다면 정말 이곳에서 한 달 살이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 30일 동안 얼마나 나의 뇌 속과 몸 속에 좋은 공기로 가득찰까. 그리고 얼마나 담백한 하얀 광목같이 되어서 돌아가게 될까? 지금 내 상태는 마치 시커멓게 때가 탄 빌로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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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마치고 나서 덕천 시장 쪽에 가서 오늘 마실 물과 저녁 식사용 와인 그리고 안주거리들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점심 때가 되어서 예전부터 점찍어 두었던 우렁쌈밥집으로 향했다. 한 2년 전... 딸하고 둘이 산청 여행을 왔을 때 갔던 집이다. 한창 코로나 때여서 식당들이 잘 문을 열지 않았는데, 다행히 일찍 아침을 먹고 서울로 갈 수 있었다. 그때 돼지고기와 고등어 구이와 함께 아침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아직도 삼삼하게 남아 일부러 주린 배(?)를 참고 간 길. '2인분' 밖에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두 명 아니면 안 된단다. 그냥 내가 혼자 2인분 시키면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안 된단다. 물러섰다.


아직도 시골은 음식점에 한 사람이 가는 걸 노골적으로 싫어한다. 심지어 쫓아낸다.

2020년 이후, 거의 매주말이면 전국 방방곡곡으로 만두를 먹으러 다녔다. (브런치 매거진 '만두엄마의 어글리 딜리셔스'를 보세요 https://brunch.co.kr/magazine/uglydelicious )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조를 짜서 다닌 것이 아니라 시간 효율이나 기동력을 고려해서 혼자 다녔기 때문에 매 끼니 혼밥 혹은 혼술을 해야했다. 그래서 그 세월을 토대로 전국 각지의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혼자 밥이나 술을 먹는 법을 대강 카테고리화 해서 정리할 수 있었다!

다음과 같다.


<장르별>

* 고깃집은 혼자 들어가서 먹을 수 있다. 당연히 1인분만 먹고 나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2인 분 먹고 배터지고 나오면 된다.

* 찌개나 국밥을 먹고자 할 때는 당연히 혼밥 가능하다. 가장 수월한 장르가 바로 이 부문. 한 그릇 음식.

* 백숙, 오리고기, 전골 장르로 들어가면 진입장벽이 몹시 높아진다. 심지어 3인 이상 가야 주인의 눈빛이 온화해지는 집도 많다.

* 만두나 분식류도 혼밥 가능. 그러나, 나는 취재 목적으로 갔기 때문에 다 먹고 난 다음에 남은 음식 포장이 가능한지 확인 후 여러 종류를 다 시켜서 먹었다. 비빔 만두(쫄면 혹은 야채 무침 + 만두) 같은 경우는 쫄면을 장렬하게 남기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 다찌, 혹은 막걸리 시키면 안주 1,2,3차로 쫙쫙 깔리는 이모카세 등등... 여긴 혼밥 혼술 거의 불가능. 나 또한 통영에 갔을 때 다찌, 반다찌 문화를 영접하지 못한 터라 안타까워 급히 1박 2일 멤버를 모아 내려간 적이 있었다.

<지역별>

* 전라도 지역은 혼밥, 혼술 몹시 수월하게 통과. 대체적으로 친절하다. 그리고 혼자 밥 먹고 있을 때 어디서 오셨냐, 어떻게 혼자 오셨냐고 제일 많이 물어주는 곳도 이 지역.

혼술을 하면, 여자가 혼자 마시고 있으니 와서 같이 놀고 싶어한다. 눈빛에 다 보인다. 의자도 들썩들썩함. 몇 회 합석을 해서 마신 적도 있다. 굉장히 유쾌하게 노는 지역이기도 하다.

* 경상남도. 제일 많이 쫓겨난 곳이 이 지역. 오늘도 경남 산청에서 쫓겨남. 그렇다고 기분 나쁘게 워어이~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정중하게 죄송하다고 하면서 돌려보낸다.

이 지역에서의 혼술은.... 경북과는 또 분위기가 다르다. 모두 혼술녀를 쳐다보지 않음. 그러나, 내 뒤통수가 뜨끈뜨끈하다. 왜 왔나. 왜 혼잔가. 어떤 사연이 있는가. 다들 딴데 보면서 궁금해하는 것이 느껴짐과 동시에 일행들끼리 '머꼬?' 하면서 소근대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 경상북도. 딴 건 모르겠고... 식당 문 열었을 때 첫 손님이 여자라고 쫓겨난 적 1회, 술 마시러 혼자 왔다고 쫓겨난 적 2회. 대기록이다! 내가 들어갈 때부터 어서오세요! 하면서 뒤를 살핀다. 일행 있나 하고... 설마 여자 혼자 술 마러 왔을까 하고 상상조차 못하고 있다가 앗! 깜짝! 하는 눈빛들도 많이 봤다. 심지어 자리잡고 앉았는데 혼내기까지. 그러고 나가면서 내 술값 대신 내주는 즐거운 사건도 많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이곳, 경북이다.


그냥 재밌자고, 내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니 너무 신경들 곤두세우시지는 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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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 번 쫓겨난 뒤 들어가게 된 산채비빔밥 집. 이 집 또한 "저 혼잔데요." 라고 말하고 앉았더니만 "참 오늘, 희한하네. 첫 손님이 혼자더만, 또 혼자 손님이네..." 이러면서 웃는다.

곧이어 나온 산채비빔밥. 진짜 너무나 야성적인 맛이라 뭐라 형용을 못하겠다. 나물은 나물마다 자기 고유의 향을 아낌없이 뿜어내고, 진짜 참기름 맛 한 방울도 들이밀 틈마저도 주지 않겠다는 듯 위용이 드세다. 된장? 오오~ 처절하게 짠 맛인데, 집된장 특유의 쨍함 때문에 계속 숟가락을 들여놓게 된다.

점심 한끼 잘 먹고, 도토리묵 저녁에 먹으려고 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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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들른 남명 조식 선생의 '덕천 서원'
조그마한 서원이라 그냥 휙 둘러보고 갈 뻔하다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해주시는 할아버지 덕분에 함께 말벗하면서 구석구석 잘 돌아보고 왔다.

이곳이 사계절 몹시 아름다운 곳이라면서 잘 왔다고 하신다. 그리고 다음에 어디 갈 거냐고... 나는 그냥 숙소로 돌아간다고 말하기 뭣해서 그냥 저 위로 올라간다고 그랬더니 꼭 하동의 '삼성당'에 가보라고 하신다.

찾아보니 여기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다. 잠시 내쳐 갈까 하다가... 그냥 숙소로 들어와서 노트북을 켰다.

이곳 저것 보러다니는 것도 좋지만 그냥 지리산 산자락에 푸욱 묻히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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