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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Nov 10. 2023

거기가 어딥니까!

100중 99가 떨어져 나간다는 드라마 작가 생존기, 다시 시작!

나는 작업실인 공공 도서관에 출근하지 않는 한은 우리집 부엌 식탁에서 글을 쓴다. 무라카키 하루키도 작가로 데뷔하고 몇 년 간은 부엌의 식탁에서 글을 썼던지라 그를 가리켜 <키친 테이블 에세이>라고 했다지. 

브런치에 같은 이름의 매거진에 이런 저런 주제의 글을 몰아 썼는데, 이제는 드라마 작업 '생생' 과정기록만 따로 모아보려 한다. 




특히 우리 어머님 세대(아버님들은 이런 말씀 별로 안 하신다)의 분들이 많이 하시는 말이 있다. 

"내가 살아온 거 다 풀면 그게 드라마야."

우리들 삶은 모두 내가 원탑 주인공인 드라마다. 나도 내 인생 '팔만대장경'이라고 여기고 그 이야기를 드라마로 너무너무 쓰고 싶어서 6년 전인가부터 열심히 드라마 작가과정을 다니기 시작했다. 네 군데나 돌았다. 당연히 돈도 많이 들었다. 사실 이런 드라마 작가 과정을 줄기차게 다녔던 이유는 어떻게 이 판에 줄이라도 또는 연이라도 닿아보려고 다녔던 이유가 컸다. 그러나, 내가 순진했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수많은 이론과 실제를 배우긴 했으나, 일개 지망생일 뿐인 내게 일감은 들어오지 않았다. 일이 들어오면 당연히 현직 작가인 선생님들이 직접 계약하고 쓰겠지, 남 주겠나. 

그뒤로 어떻게 세월이 흘러갔나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11월 초, 일 년 전에 드라마 집필 계약을 했다. 정말 계약서에 싸인을 하던 날 제작사 대표님과 감독님, 이렇게 셋이서 와인을 진탕 마시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울었다. 감격해서... 

그동안 전국 각지, 어디를 가든지 절이면 절, 천주교 성지면 성지 다 돌아다니면서 '제발 드라마 쓰게 해달라'고 빌었다. 두손 모아 파리처럼 싹싹 빌었다. 여기저기 불을 밝힌 초만 몇 개인지 모르겠다. 그 간절함이 이렇게 통한 건가 하고 펑펑 울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지금 생각하면 그날의 내가 너무 쪽팔려서 미치겠다.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첫 작업비가 입금이 된 지 어언 일년. 지금의 내가 이렇게 몇 번이나 기획안이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대본 3화까지도 진도도 못 나가고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의 내가 알았다면 그렇게 감격하고 울고 그 생난리를 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집필 계약을 했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 시작이다. 계약서를 쓴 작가 100명이 있다면 99명은 다 중도 탈락한다(약간 과장된 것도 있지만, 거의 사실이기도 하다. 열에 아홉으로 바꿀까). 이유를 알려드린다. 드라마는 기획부터 제작까지 2-3년 이상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다. 나 같은 초짜 작가 있다고 치자. 그럼 그 작가가 방송 편성과 캐스팅을 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인 기획안부터 대본 4화까지 쓰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까? 나는 이거 길게 6개월 잡으면 충분히 다 될 줄 알았다. 정말로! 진짜 교만하기 짝이 없는 셈법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실제로 1년이 넘게 걸린다. 

계약금을 1차를 계약서 사인하고 받고, 2차는 대본이 완성되면 받는다. 그리고 나머지 3차 잔금은 방영이 끝난 후 받는다. (제작사로부터 드라마 업계 통상적인 지급 방식이 이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말인 즉슨, 1차 계약금을 받고 2년 길게는 3년은 일정한 수입 없이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멋있는 작가들은 자기의 작품에 파묻혀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오고 보조작가들과 함께 밤을 새지만, 현실로 가게 되면 여기에 플러스 '알바'를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지난 8월부터 영화 시나리오 한 편을 각색하는 일을 추가로 했었다. 드라마를 쓰면서 영화 시나리오까지 쓰는 존재 불가능한 광년이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냐고? 일 년이 지난 지금, 현재 스코어를 알려드린다. 네 번째 기획안 엎어져서 다시 처음부터 다 쓰고 있고, 어제 감독님 만나서 회의하고 수정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머릿속이 너무나 복잡한 나머지 이렇게 새로운 브런치북을 따로 만들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머릿속이 왜 복잡하냐 하면 수정 사항 준다고 해서 그걸 또 넙죽넙죽 다 욱여넣어 반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라는 필터를 거치고 원고를 매만져야 한다. PD가 준 수정사항, 감독님이 준 수정사항, 제작사 대표가 준 수정사항 다 다르다. 그들의 의견은 잘 썼네, 못 썼네, 혹은 재밌네, 안 재밌네만 일치한다. 아니면 '이게 뭐야~ 뭔 말을 쓴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로 대동단결하기도 한다. 


이 경우 당연히 작가는 커다란 내상을 입는다.  그래서 내공이 있는, 오래된 드라마 작가님들은 자연스럽게 풍화작용에 의해 못됐고, 싸가지가 없다고 한다. 돌과 바위는 풍화작용을 거치면 둥글둥글해지는데, 작가들은 더 드높게 뾰족해진다. '뭐 어쩌라구' 정신이 장착이 되어야 정신 차리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멀었다. 지난 8월 말 제작사 회의를 마치고는 회식 자리에서 "아냐, 우리 작품이 더 재밌어!"하고 땡깡을 부리면서 울기도 했다. (이 무슨! 유치원생도 유치원에서 이렇게는 안 울 것이다...)

그동안 스트레스도 얼마나 받았는지 모른다. 아마 회의 들어가기 직전 애플워치를 차면 분명히 경고문이 뜰 것이다. 고심박수 주의! 

그래서 아침마다 명상도 해보고, 싱잉볼도 혼자서 뎅뎅 치기도 해봤다. 뿐인가... 이제는 타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번 기획안 잘 풀릴까요? 남자 주인공 이름을 바꿔보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남녀 주인공을 이 시점에서 싸우게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어떤게 좋을까요? 아직은 타로에서도 나는 미생인지라 카드가 나에게 이 모든 해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한 방도였다. 



앞으로 이곳에 이러한 생생한 드라마 작업 과정들을 담으려고 한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지금 현재 집필하는 작가님들 중에는 이런 작업기를 기록한 분은 없는 것으로 안다. 

지금 쓰고 있는 드라마가 잘 될지, 끝까지 제작까지 완주할지, 아니면 완전 이 프로젝트가 사라질지(안 돼! 그러면 이 브런치북도 사라질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 정말 아무도 모른다. 

사실 이 기획은 가제 <나도 스타가 되고 싶어>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엮어내려고 계약을 한 프로젝트였다. 이 또한 작년 겨울에 계약을 하고, 그래도 올해 봄이 가기 전까지는 드라마화 확정! 뭐 이런 딱지를 책 표지 앞에 붙일 수 있을 줄 알았다. 웬걸. 

그리고 지금 와서 돌아보니 아무리 가제라도 책 제목 너무 창피하다. 스타가 되고 싶다니... 내 생각에 앞으로 이런 드라마 제작 시스템과 환경이라면 김은숙, 김은희, 박해영과 같은 대형급 스타작가는 배출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나라고 김은숙 작가와 같은 거물이 왜 안 되고 싶겠나. 그래서 그 염원을 담은 것이 <나도 스타가 되고 싶다>라는 제목이었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바꾸려고 한다. 지금 내 소망은 제발 이번 드라마 한 편 다 마치면 다음 작품이 기다리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한 달 정도 푹 쉬고, 다시 기획안부터 시작할 수 있는 작가가... 


여하튼 오늘도 걷는다. 한 발, 한 발... 도대체 그 끝이 어디에 있는지, 있기는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모르면서도 가는 것이다. 거기가 어딥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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