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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Nov 13. 2023

남주 캐릭터, 나를 동경해요.

드라마 쓰는 언니의 남주 캐릭터 사랑하기 

제가 생각을 잘못했습니다

성질이 몹시 급하다. 지난 주 금요일 오후, 번개치듯 이 '드라마 작가 생존기'를 연재하겠다고 결심하고는 연재 요일을 '월요일'로 클릭하고 바로 그날, 금요일에 올렸다. 나혼자 뭐 이건 프롤로그니까 다음 주 월요일, 그러니까 오늘 정식으로 다시 올려야지 했는데... 월요일 아침이 되니 많은 분들이 금요일 글을 읽어주셨다. 지금도 계속 좋아요가 올라오고 있다. (응원도 예상 외로 많이 받고... 정말 감사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일텐데 말입니다. ㅠㅠ 은혜 잊지 않는 호랑이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잠시 고민을 했다. 내 계획대로 오늘 한 편의 글을 더 올릴 것인가, 아니면 다음주 월요일까지 기다릴 것인가. 결론은... 

두 번째 글 들어갑니다. 

 


작년 여름, 지금으로부터 거의 일 년 반 전 제작사 대표님과 감독님, 그리고 내가 모여서 기획은 잡았던 것은 결혼을 다섯 번 한 여자가 원탑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끄는 것이었다. 내가 살다 살다 드라마에서 결혼을 세 번 한 사람 나오는 것까지는 봤는데, 다섯 번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오방색도 왜 다섯 가지 색깔이겠나. 한국인은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가서 봉투에 4만 원이나, 6만 원을 넣지 않는다. 5만원을 넣거나 아니면 바로 10으로 뛴다. 그만큼 5라는 숫자는 균형을 의미한다...는 개뿔. 

한 여자의 25년에 걸친 파란만장 결혼과 이혼의 역사를 풀어내는데, 다섯 편의 대하드라마를 1부터 5번까지 차례대로 나열하면 너무 지루할 것 같았다. 시청자들이 봤을 때 이미 1번 이야기 끝나면 2번, 3번 다 읊어댈 것 같았다. 물론 나의 큰 자산이자 무기인 폭력, 불륜, 괴랄한 집착증, 시댁의 압박 공격 등 각종 이혼 경험과 자료들을 탑재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버라이어티하게 몹시 잘 풀지 않으면 꽝으로 가는 지름길은 자명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방법을 쓰기도 하고, 주인공을 결혼 다섯 번한 여자가 아니라 딸로 설정을 해서 나의 진짜 아빠는 누구인가(아아~ 맘마미아와는 다르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내적 외침 하에 아주 된장찌개처럼 보글보글 구성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찾아 나서는 구성도 잡아보기도 했다. 물론 속절없이 엎어졌다. 사실 서너 가지의 구성으로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신기하다. 

지금 잡고 있는 구성에 몰입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믿는다. 지금 내 머릿속은 오로지 지금 쓰고 있는 스토리밖에 없다. 


"캐릭터에 매력이 없어요, 매력이..."

내가 만들고 있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강토시'다. 토요일에 태어난 한 수의 시와 같은 아이라고 해서 토시의 낭만적인 엄마가 지어주신 귀한 이름이다. (물론 이 낭만 엄마도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다... ) 이 매력적인 이름을 지닌 토시, 우리들의 강토시가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불쌍한 나의 토시... 너를 너무나 예쁘고, 통통 튀고, 어처구니 없게 귀엽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살려주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너덜너덜한 '살려는 드릴게' 상태로 만들고 말았구나. 

기획 회의 마치면 술 한잔 하면서 얼굴에 둥실 달 뜬 나에게 다들 주문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캐릭터에 매력을 좀 살려달라고. 커다란 숙제가 아닐 수 없었다. 나도 정말 간절하게, 애절하게 매력있는 토시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히 '드라마 작법을 못 가르칠 자신이 없다'고 목놓아 외치는 이기원 작가님의 글을 '얼룩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공모에 당선되는 극본 쓰기'라는 연재였다. 과연 이 작가님께 작법을 못 가르치기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나는 그 어떤 작법서들보다도 이분의 얼룩소 연재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스스로 상상력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 

(이곳에 들어오신 분들 중 많은 분들이 드라마를 쓰고 있거나 쓰고 싶은 분들일테니 꼭 한번 가서 읽어보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링크 걸어드린다. https://alook.so/users/LZtMQ3 )

다들 매력있는 캐릭터, 캐릭터의 매력...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는데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한 챕터를 빼서 설명을 해주었다. 지난 글에서도 잠시 소개를 했지만, 그것을 또 한 번 더 인용해보려한다. 


캐릭터의 매력이란 다음과 같다. 

동경심을 지니면서도 아, 그래도 얘도 나랑 같은 인간이네... 

매력= 동경심 + 동질감. 

동경심을 지니면서도 아, 존나 딱하네... 불쌍해... 어떡해...  

매력 = 동경심 + 동정심. 

평범한데 또 비범한.... 예를 들면 드라마 <무빙>의 우리 봉석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말도 못하고(너무나 평범한 고3!) 자꾸 날라간다(이 얼마나 비범한 노릇인가!)!!

매력 = 평범 + 비범 


이기원 작가님의 설명을 토대로 이렇게 도식화는 해보았지만, 당연히 수학 공식과도 같이 끼워맞출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면 이유를 콕 집어 이야기할 수가 없지 않나. 나는 얼마나 사소한 것에 매력을 느끼냐 하면 'Je ne veux pas traviller(나는 일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노래를 어떤 남자 앞에서 혼자 흥얼거리는데, 내가 잘못해서 'Je ne sais pas...(나는 몰라요)'로 불렀더니 그자가 바로 어? 하고 앞에서 같이 흥얼거리면서 제대로 쥬느 브 빠 트라바이에~로 고쳐서 함께 불러주는 것이다! 아아~ 이게 뭐라고~ 나는 그 순간부터 그에게 훅 빠져들었다. 

노래가 궁금하신 분들은.... 

https://youtu.be/pnWFghAQ2FY?si=nm1d1I7ShnPZ2EQf


그렇다고 내가 앞에 앉은 남자가 방귀만 껴도 사랑에 빠지느냐, 그것도 아니다. 또 하찮은 이유로 마음을 도무지 열 수 없을 때도 많다. 그 사람 잘못도 아닌데, 남자 콧구멍 때문에 마음에 안 들때가 있다. 콧구멍에 오서방 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매력은 하찮고, 가늠할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질료도, 공기도, 에너지도 아닌 그 무언가이다. 

이 '캐릭터의 매력'이라는 중요한 사항이 세상의 모든 드라마 작법서에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도 않고, 챕터마저도 세를 놔주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지만, 당연한 일이다. 그 어떤 이론으로도 설파되기 어려운 것인지라. 


그런데 나는 그 글을 읽는 순간, 한 단어에 빠졌다. 

'동경'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동경하는 감정부터 시작하겠구나. 누군가를 동경하고, 흠모하고, 추앙하고, 숭배하고... (숭배까지 가니까 조금은 오컬트적인 면까지 드러나게 되어 거부감이 일기 시작하지만... 그러나!)

나는 고심 끝에 드라마 전반을 관통하는 메인 스토리에 토시의 연인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지금은 이렇게 한 여자의 25년 이혼사에서 또하나의 근사한 축, '로맨스'를 더해서 맛있는 꽈배기로 만들고 있다. 

우리 토시도 너무 결혼하고 이혼하면서 고생만 하지 말고, 뜨겁게 사랑하자. 결혼 많이 하고 유턴해서 돌아왔다고 그게 무슨 죽을 죄니, 그 죗값을 받아 죽을 때까지 수절하며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당당하게 또 사랑하자! 

그래서 탄생한 남자 주인공 캐릭터가 '진동경'이다. 

나는 요즘 동경과 사랑하려고 한다. 진동경의 어투, 목소리, 좋아하는 음식, 취미, 꿈, 버릇, 과거사 등등 다 사랑할 자신이 있다. 아직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라 오늘은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랑하려고, 사랑하고 싶어서 계속 캐릭터를 만들고 있다. 내일은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진동경은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던 뻔한 캐릭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와인과 스테이크를 즐기는 진동경 혹은 지구환경을 생각해서 비건인 진동경도 좋지만, 비빔밥에 된장찌개를 슥슥 넣어 비벼먹는 진동경, 삼겹살 지글지글 돼지 기름에 신김치를 구워먹기를 즐기는 진동경이었으면 좋겠다. 식성만 봐도 푸근하고 서글서글한 캐릭터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는 굉장히 날카롭고 쇳소리나는 인간, 할 말 다 하고 살아 좋겠다, 잘났다 소리 나오는 인간... 그러나 그 철옹성 안에 숨겨진 솜사탕 같은 비밀은 누구만 안다? 당연히 나중에 우리 강토시만 알아내야지! 

진동경의 도움으로 그리고 진동경을 사랑하는 씩씩한 여성 강토시 자체만으로도 캐릭터의 매력이라는 골대에 공을 힘차게 걷어 차 넣어버렸으면 좋겠다. 


노희경 작가님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드라마를 쓸 때, 출연하는 캐릭터들의 트리를 만들어 벽에 붙여놓고 아침마다 일어나서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는... 나도 그짓(?) 내일부터 시작해서 대본의 마지막 줄 쓸 때까지 하라면 진짜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려면 당장 캐릭터 트리부터 만들어야할까. 그전에 진동경을 '진짜 동경'할 방법부터 찾아 마무리짓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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