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의 귀환

열받아서 쓴 마누라의 초단편 SF 소설

by 황섬


시도는 외계에서 왔다. 지구에 불시착을 했는지, 어쨌는지 특별한 임무를 마치고 인간의 외피를 벗어던지는 과정에서 잘못되어 지금까지 그 껍질을 뒤집어쓰고 지구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외피 탈피 오작동 때문에 얼굴이... (중략)


시도를 마냥 기다릴 수 없던 선발대가 급히 별로 떠났고, 외계인 시도는 후발대의 출발 시기를 기다리며 지구에 사는 것이다. 걔네 별나라 외계인은 일단 '음식'의 개념이 없다. 뭔가를 먹고 싸는 일보다는 지구인들의 상상 범위를 넘어가는 의식 활동을 영위하면서 평생을 산다. 그래서 지구인들보다 영이 수백, 수천 배는 발달하였고, 수십 차원의 높은 의식의 영역이 단계별로 펼쳐져 있으면서 시간의 앞뒤 순서조차도 없다. 그저 찰나의 의식을 짚어 살 뿐이다. 아이를 낳는 산모는 태어날 아이의 미래와 죽음까지도 다 알고 있고, 그를 보면서 출산한다.

그들은 목욕을 하지 않고, 청소란 것도 모르며, 정리라는 개념이 없다. 목욕, 청소, 정리를 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를 왜 해? 가 아니라, 청소가 뭐야? 가 바로 시도의 고향별에서 돌아가는 사고방식이다.


여하튼...

시도는 오랫동안 지구에서 방황하다가 아뿔싸! 지구인 여성 황섬을 만난다. 당시 황섬은 굉장한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지구를 떠나느냐 마느냐 기로에 서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0.78초만에 외계인 시도는 알았다. 그녀의 눈동자를 보면 데이터가 입력됐다. 7383943840 워리벨(워라밸 아님. 삶에 대한 근심걱정을 측정하는 그들의 단위)로 걱정과 슬픔이 한가득이라는 것을.... 그리고, 결심한다. 이 여자를 도와주어야겠다. 그것이 지구인들이 이야기하는 사랑이라는 느낌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아아, 지구인들은 너무 복잡하다. 왜 감정을 희로애락으로 나누는가. 그냥 사는 거지.


섬과 함께 시도는 묵동에 위치한 '백악관 나이트'라는 지구인들이 유흥을 즐긴다는 시끄러운 장소를 난생 처음 방문했다. 그리고, 지구인들이 즐기는 저차원의 오락인 나이트 댄스를 사지를 뒤흔들며 춰댔다. 섬은 그런 시도가 많이 창피했지만, 꾹 참았다. 처음 만났으니까...

그 뒤로 10년이 넘게 시도는 후발대의 출발 소식을 전해듣지 못한 채로 지구에 눌러붙어 있고, 섬은 첫날 나이트에서 느꼈던 쪽팔림을 지속적으로 느껴가면서 함께 살고 있다. 물론 둘은 '전청조의 기적'과도 같이 만두라는 아들을 하나 낳았다. 만두는 지구에서 유일하게 외계인 아빠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아이다. 황섬조차도 그들의 언어를 알지 못한다. 그러던 중...


외계인 시도는 후발대의 출발시기를 통보받기에 이른다. 2023년 가을, 지구인들에게 수퍼문이 노출되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한가위 보름날, 달 구경을 하다가 우주에서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받은 만두. 그날 밤, 추석맞이 회식을 했다며 지갑 잃어버리고, 폰 깨지고 개꽐라가 되어 퇴근한 부친에게 은밀히 후발대의 출발 소식을 알려주었다.

만두는 아빠를 따라 고향 별로 가서 살 수도 있고, 엄마와 함께 지구에 남을 수도 있다. 선택은 만두의 몫.

아빠의 고향으로 가면 만두는 원활하지는 않지만 지구말도 알아듣는 굉장한 초천재로 살아갈 수 있다. 엄마의 지구에 남으면 '발달장애'라는 이름표를 달고 장애인 복지 카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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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은 어젯밤, 우주로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로지 황섬 혼자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집안 그 어디에도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지구에 혼자 남은 황섬. 황섬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양치하기 전, 거울을 바라보며 씨익~ 하고 웃었다.

세수를 마치고 거실로 나와보니 섬의 눈에 들어오는... 바닥에는 그들이 까먹고 간 삶은 달걀 껍질이 온통 어질러져 있다. 청소와 정리라는 걸 몰랐던 외계인 시도, 그 피를 이어받은 만두.




진짜 어쩜 이렇게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청소를 하나도 안 해놓고 갈 수가 있냐! 삶은 계란 쪄놓고 나가면 진짜 여기 저기 계란 껍질 다 흩어져 있고, 귤 한 박스 사다놓고 나가면 세상 온갖 군데 다 귤 껍질 늘어놓고... 말 안 하면 분리수거 진짜 1도 안 하고... 식기 세척기 다 돌려졌는데도, 어쩜 그릇 꺼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래놓고 싱크대에다가 밥 먹고 난 그릇 물로 부시지도 않고 척척 산더미처럼 얹어놓고...

ㅅㅂ, 열 받아서 쓴 초단편 SF 소설 <시도의 귀환>. 젠장.....


페이스북에 올린 이 글을 읽고,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님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하시고, <쌤스토리>라는 출판사까지 내고 출판까지 하시는 분께서 이 스토리를 중편이나 장편소설로 발전시켜보고 싶으시다고 하신다.

갑자기 SF판 <늑대 아이>도 생각이 나고... 좀 더 유쾌하게 발전시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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