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서울신문 칼럼
어느 봄날, 카페에 앉아 거리의 젊은이들을 멍하게 보고 있는데 어떤 목소리가 내 귀에 정확히 꽂힌다.
“엄마, 여기 설명서 잘 보셔. 이 약은 하루 세 번, 그리고 절대 안정. 안압 때문에 진짜 무리하면 안 돼. 여기 씌어 있어. 알겠죠? 청소도 하면 안 돼.”
오른쪽 눈에 두툼한 붕대를 댄 할머니께서 따님의 신신당부에 고개를 하염없이 끄덕인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딸은 퇴원 안내서 몇 장을 앞에 좍 깔아놓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꼼꼼하게 반복해서 설명하기 바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3~40년 전 젊은 엄마가 어린 딸 앞에 앉혀 놓고 “알았지?”를 연발하며 뭔가 가르쳐주는 장면이 상상이 되었다. 묘한 울림이 일었다.
며칠 전에는 어느 분께서 표지만 봐도 울컥한다며 <나의 작은 아빠>라는 제목의 그림책 사진을 SNS에 올렸다. 나보다 훨씬 컸던 아빠가 어느덧 키가 같아지는 시기가 오고, 이후엔 참 이상하게도 아빠가 점점 작아진단다.
카페 안, 내 옆 테이블 모녀의 풍경과 머리가 하얀 아빠가 아들의 등에 업혀 있는 그림책의 내용이 애잔하게 포개졌다. 그러나 내 마음은 마냥 흐뭇하지만은 않았다. 소수의, 노후가 준비된 가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미래가 불분명한 가정에서 장성한 자식들이 치러야 할 저 모습 뒤의 일들이 구체적으로 펼쳐졌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로는 따님이 치렀을 수도 있는 눈이 아픈 어머니의 수술비, 병원비와 이후 병구완의 책임과 생활비 부담 등이 내 머릿속에서 계산되었다. 하물며 우리 부모님의 사정이 되면… 막상 우리집 문제를 내 손바닥 위에 올리면 그저 눈을 질끈 감아버릴 수밖에 없다. 50대에 대장암을 한 번 앓았던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시는 두 분이 내게는 큰 행운, ‘자식 로또 복권’에 당첨되었음에 감사할 뿐.
2022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01만 8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17.5%에 달한다고 한다. 놀라웠던 것은 2021년 기준, 본인과 배우자가 직접 생활비를 조달하는 비율이 65%에 달하는 점이었다. 지난 10년간 13.4% 증가한 수치라 한다. 백세 시대를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 전 세대처럼 노후를 마냥 자식들에게 맡길 수만은 없는 시대 흐름의 분위기를 읽어낸, 그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일까.
그렇다면 노령인구의 부양은 누구의 책임이 되어야 하는가의 질문에는 가족·정부·사회 책임이라는 답변이 49.9%, 반을 차지했다. 그리고 부모 스스로 해야 한다는 답변도 17%에 달했다.
아들이 중증 장애 판정을 받고, 장애인 활동 지원을 지난 4년 동안 꾸준히 받아왔다. 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는 바우처도 일정 금액 제공 받는다. 그러나,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 하는 기본적인 양육비 이외에 사적으로 목돈을 들여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다.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취약 계층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지원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내가 없으면 ( )는 어떻게 하나?’라는 질문에서 괄호 안에 장애인을 넣어도, 우리 부모님을 넣어도 답이 불투명하기는 똑같다. 대한민국 사람들 반이 원하는 고령인구에 대한 지원, 가족·정부·사회의 탄탄한 삼각대가 생생하게 우리 주변에서 잘 기능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저께 동지, 엄마가 팥죽 끓였다고 와서 먹고 가라고 해서 갔다. 팥죽 간이 완벽. 내가 좋아하는 그 소금간. 역시 어려서부터 먹던 거라 입에 딱 맞나 싶다.
엄마랑 팥죽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
내 친구 중에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남의 집에서 애까지 낳은 애가 있었다며 그 친구를 참 좋게 봤던 것은 끝까지 가정을 지켜서란다. 내 친구는 남편이 잠시 바람을 피웠을 뿐인데 아마 남의 집에서 애까지 낳았다고 이야기한 건... 이 이야기를 했을 당시, 내가 엄마 집에 얹혀 살고 있어서 조금 더 과장해서 거짓말을 했던 건데, 정작 내가 기억을 못하고 엄마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내 친구들도 이렇게 엉망진창 속에 살고 있으니 나 좀 무시하지 마라... 이런 취지였던 듯한데, 지금의 나는 그때 거짓말 했던 걸 까 먹고 읭? 이런 것.
엄마가 다시 와서 그 친구의 남편은 딴집 살림 차리고 아이를 낳았다고 믿고 또 이야기한다.
"니 친구는 정말 내가 좋게 본다. 그게 가정이지. 그게 부부고. 그렇게 힘들어도 새벽기도 나가고, 주님께 매달리며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
나는 그때 거짓말 했던 것을 기억 못하고 아냐, 걔는....... 이러다가 말을 거두었다.
그리고 조금 뒤에 항의했다.
나는 이혼을 많이 한 사람인데, 그걸 알면서, 그게 딸인데, 그 앞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나를 조롱하는 거다. 그랬더니 얼굴을 팍삭 찡그리며 아, 그랬겠구나 한다. 엄마, 나한테 사과하라고 했더니 아니, 내가 사과한 거지 뭐냐고 한다. 그러면서 또 한 마디.
"좋은 이야기만 하자. 너는 나한테 꼭 좋은 이야기 한 마디 안 하더라. "
결국 아까 내가 했던 이야기는 다 들어갔다. 즉, 내가 엄마 이야기에 조롱당한 건 다 없어지고... 엄마는 여전히 나한테 미안하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나는 엄마한테 이렇게 내 존재에 대해 놀림을 많이 당하고 살았는데,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다. 엄마가 나를 끊임없이 놀리고, 밑으로 내려놓는 이유도 안다. 엄마의 위대함(?)을 좀 알아달라는 이야기이다. 나좀 봐 줘, 이것이다.
집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엄마를 칭찬한 적이 없다. 남편인 아빠를 포함해서 모두에게 엄마는 적이었다. 그래서 외로웠구나 싶다. 엄마가 사실 빌런이긴 한데... 다른 집들은 엄마가 빌런인 위치에 있는 상황을 잘 몰라서 이해를 못하는데... 서로서로 만든, 다 같이 빌런인 식구가 우리집인 듯. 나도 우리 엄마한테 빌런이고, 엄마도 아빠한테 빌런이고, 아빠는 내가 빌런이고... 아아. 이런 양질의 콩가루 집안이라니. 곰곰히 생각하니 나도 엄마한테 칭찬 한 번 안 했다는 걸 알았다.
단.
우리 딸 곰돌양만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늘 문자 보냈단다.
날씨 추우면 집에서 꼭 틀어박혀 계세요. 위험해요.
코로나 걸리면 안 돼요. 마스크 꼭 쓰세요.
엄마가 이 문자 받고 눈물이 나더란다. 우리 자식들은 키워봤자... (후략)
팥죽 다 먹고 나오면서 엄마한테 큰소리 뻥뻥 쳤다. 이런 딸, 내가 키웠다고. 나는 딸한테 적어도 미안할 땐 사과했다고. 그래서 이렇게 잘 자란 거 아닌가. 엄마가 한 마디 한다.
"애 성정은 다 타고나는 거다."
나랑 엄마 한 두어 시간, 꼰대 배틀 하다가 승자독식 아무도 못하고 씁쓸하게 뒤돌아 선 느낌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나도 정말 너무 꼰대다.
지난 봄에 썼던 서울신문 칼럼과 함께 이 글을 놓아둔 이유는... 엄마니 아버지니 뭐니 해도 70대 후반을 넘어 팔순을 바라보는 그 연세 드시고 어디 크게 하나 편찮은 데 없으신 것만으로도 자식들에게 큰 재산 물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고맙다는 이야기, 굉장히 하기 어색하긴 한데... 감사합니다. 부모님.
*** 사진은...
엄마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팥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엄마 죽 떠놓은 뽄새하며, 음식 솜씨 진짜 없는데 왜 이렇게 내 입맛에 맞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