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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an 01. 2024

애들한테 한 달에 얼마 들어갑니까?

사교육의 미친 바람, 그 한가운데에서 

딸은 이제 고3으로 올라간다. 아니, 지난 11월 수능이 끝난 뒤로 이미 고3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고3은 족쇄다. 부모님, 선생님들이 '넌 이제 고3이니까' 하고 강제로 채우는 족쇄가 있는가 하면, 수험생 스스로 '난 이제 고3이니까'로 채우는 족쇄도 만만치 않다.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이도 슬슬 마음의 끈을 꽉 조이는 중 같아서 함께 동참하기로 하면서... 대입 시험 보기 전 마지막으로(정말 마지막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함께 연천으로 1박 2일 짧은 여행을 갔다 왔다. 때마침 눈이 지긋지긋하게 많이 내리면서 날씨까지 우리의 여행을 아주 잘 도와주시고... 숙소에서 창밖으로 하얗게 내리는 눈만 바라보며 밋밋하게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끝내주게 근사한 풍경을 구경하거나 신명나는 액티비티를 즐기고 온 것은 아니어도 좋았다. 맛있는 것 야무지게 먹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이번에는 그동안 한 번도 나눠본 적도 없는 '입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생소하고도 유익한 화제였다. 



아이가 6학년 때 중1 때까지 한 1년 정도 강북 8학군이라는 학원가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 버스에 몸을 싣고 갔다가  밤 늦게 돌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원에서 컵라면 삼각김밥 사 먹을 돈 충분히 주기, 혹은 매번 같은 것만 먹으면 질릴 테니 또띠아 말이나 샌드위치 여러 종류로 사 놓고 챙겨주기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아이가 그 종합 학원 매일 다니는데 하나도 안 행복해 보였다. 공부도, 악기도, 운동도 어느 정도까지의 실력에 이르기까지 고통과 인내의 구간이 존재한다지만, 이건 정상적인 정도나 수준이 아니었다. 딴 집애들은 그 구간을 건너든 말든 난 모르겠고, 얘 얼굴 보니까 바로 콱 접시에 코 박고 죽을 것 같았다. 그냥 관두라고 했다. (거길 6년을 꼬박 다니는 애들은 대단하다!) 그 돈으로 우리 맛있는 것이나 사 먹자고 했다. 그리고 솔직히 묵직한 학원비가 빠져나가지 않으니 빠듯한 살림에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으로 당장은 조금 숨통이 트였다. 그 뒤로 3, 4년이 지난 후... 아이의 입에서 드디어 이 말이 나왔다. 


"그냥 그때 나 등 떠 밀어 학원 보내고, 공부 시키지 그랬어."

당황했다. 아... 그렇지. 이렇게 원망할 수 있지. 갑자기 수십 년 전, 고등학생 황섬이 뇌리를 스쳤다. 아, 시발... 물론 욕은 속으로 혼자 뇌까릴 뿐이었다. 

"엄마는 그냥... 너가 그때 너무 안 행복해 보여서..."

내가 이렇게 대놓고 머뭇거리자, 딸은 실로 그녀의 18년 인생 명언이라 할 수 있는 말을 하고야 만다. 

"엄마, 대한민국 아이들, 다 안 행복해. 그냥, 기초가 탄탄하면서 안 행복한 애들하고, 나처럼 기초고 뭐고 하나도 없으면서 안 행복한 애들로 나뉘는 거야."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 나는 굉장히 욕심이 많은 친구였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그러나, 공부도 그럭저럭 하긴 했지만, 전교에서 놀 정도의 실력? 턱도 없었다. 근처도 못 갔다. 대신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던 피아노나 성악을 부모님이 좀 밀어주셨으면 하고 바랬다. 성악가 조수미처럼 무대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면서 관객들을 아주 그냥 홱 사로잡아버리고 싶은 욕망으로 들끓었단 말이다. 그런데, 엄마는 이런 이야기로 매번 내 기를 죽여버렸다. 

"우리나라에서 1등 하면 음악 시켜줄게. 먼저 우리나라에서 1등을 해."

6학년 때, 피아노 선생님이 얘, 예원이나 선화 보내보자고 했었을 때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엄마다. 나는 그때 심장이 터져 죽을 뻔했다. 너무 너무 음악 중학교 시험 치고 싶어서... 사람이 어설피 아는 것이 얼마나 무서우냐면 본인의 생각에 '신념'이 생긴다. 그냥 '나는 모르겄는디...'하고 머리 긁적이는 사람들은 자기가 틀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지한다. 그래서 더욱 숙고하여 좋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엄마는 음악에 관한 한, 어설픈 사람이었다. 그냥 매일 클래식 라디오 듣고, 성당 성가대 오랫동안 나간다고 딸의 음악적인 재능을 판단할 소양이 갖춰지는 것이 아닌데... 여하튼 내 꿈은 대한민국 1등이 될 수 없었던 고로, 설령 됐다 하더라도 증명을 할 수가 없었던 터라 종료되었다. 세상을 보는 내 시각도 예중, 예고 엘리트 테크트리를 타고 가는 클래식 음악에 한정되었었다. 도저히 그 과정은 부모의 격려와 경제적 도움 없이는 혼자 헤쳐나갈 수 없었고, 그 뒤로 수십 년 동안 내 꿈은 부모에 의해 '짓밟히고 무시 당했다'는 프레임을 쓰고 작동했다. 괴로웠다. 

딸은 지금 수학 과외를 하고 있다. 60만 원 가까이 든다. 여행을 와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나의 눈치를 조금씩 보면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추가로 영어 과외하고 논술을 하고 싶단다. 내신 말고 정시로 돌파하겠다고 한다. 공부하고 싶다는데, 남들은 어이구 고맙습니다! 할 이 이야기를 엄마 눈치를 보면서 쭈뼛쭈뼛 꺼내는 아이에게 좀 미안했다. 동시에 엄마의 머릿속에는 초고속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영어 과외. 또 오륙십... 논술... 아아... 세 과목만 돌려도 한 달에 150만원 넘게 들어갈 것 같은데... 

"엄마, 다른 친구들은 한 달에 250만원 씩 내고 학원 다녀." 


뻥치시네. 

이 말이 턱까지 차올랐다가 들어갔다. 
우리 동네에서? 그거 강남 사정 아니야? 
이 말도 꿀꺽 삼켰다. 


"내가 그동안 학원 안 다니고 세이브한 돈이 많을 거 아냐. 그거 고3 투자해줘. 나 재수하면 또 4-5천 깨져."


가슴이 턱 막혔다. 다른 집 엄마 아빠들은 도대체 얼마 벌길래... 도무지 멀쩡한 자연수로 계산이 되지 않았다. 엄마, 아빠 맞벌이를 한다고 하더라도 한 달에 250만 원도 못 버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서' 수두룩한데 그 돈을 아이 학원비에 쏟아붓는단 말이지? 그리고 아이가 외동이란 법이 있나..  


"엄마 인생에 세이브란 없어. 다 아웃이야." 


용기내어, 참 못나게도 이 말은 했다. 엄마 인생, 세이브 없다. 

솔직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지금 공부 시작하는 고3 아이 한 명을 학원을 돌린다, 내가 봐도 뻔히 250만원 어치 실력 안 오를 것 너무 잘 아는데 그 돈을 써야 할까. 좀 더 효율적인 방법 없을까나. 

사실 내가 스무살 때부터 10년을 과외 선생, 학원 선생 해서 아는 치다. 나한테 영어 배운 학생들 지금 전국에 수백, 수천 명 흩어져 살고 있을 텐데, 과연 그들의 부모님이 내게 주신 돈값 하면서 영어 잘 하고 살고 있나. 아니다. 그래서 그 돈을 절대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나의 마음 회로는 반대로 돌아간다. 
아이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하면 그래, 그래, 해! 흔쾌히 이래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조금 힘들었다. 어려서 그렇게 내 꿈을 꺾어버렸다며 부모 탓 하던 아이는 자라서 과외 두 과목 더 하고 싶다 하는 아이의 부탁에 벌벌 떠는 어머니가 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 엄마, 아빠도 뒷바라지 해줄 형편이 도저히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전국 1등 운운하면서 유도했는지도 모른다. 정말 애 한 명한테 백만 원 넘어가면 진짜 너무 부담스럽다. 열 살 짜리 아들, 운동하는 것만 해도 돈이 많이 든다. 


우리나라 사교육비, 미친 바람은 나 어릴 때에도 불어댔고, 지금도 불어댔고, 앞으로도 불어댈 것이다. 비뚤어진 교육열은 나라에서 어떻게 칼을 댄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만약 지금 사교육 전면 금지 시킨다고 해보자. 당장 나는 쌍수 들고 만세를 부를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밑에 깔린 교육 인프라에 갈려 들어간 인력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전 정권 시절, 과외 금지를 내 걸기는 했지만, 돈 있는 집은 물밑으로 다 했다.  어쩌면 지금 똑같은 일 벌어지면 과외비 더 치고 올라가고도 남을 것이다. 우리 딸은 과외 어플에서 조건과 가격 제일 적당한 선에서 선생님을 찾았다고 했다. 이렇게 대놓고 적정 가격을 형성할 장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초초초 프리미엄 가격들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가지를 치겠지. 

아니, 다른 집은 아이 교육비에 얼마나 들이는지 궁금하다. 다들 얼마나 쓰십니까. ㅠㅠ 


대한민국 미친 것 아닌가. 애 한 명한테 교육비를 달에 250만 원을 쓴다? 애가 몇 명인데? 내가 지금 순진한 소리 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가 재수를 하면 집행유예 1년, 벌금 4천만 원이라는 말이 웃프게 들린다. 
이 글의 결론이 사람들의 속을 뻥뻥 뚫어주는 해답을 남기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이다.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2024년 1월 1일 오늘도 열심히 인생의 자전거 바퀴를 돌리는 부모님들께 힘차게 화이팅만이라도 외쳐본다. 
아, 그리고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어 본 결과, 수학 과외는 계속 현행을 유지하되 나머지 과목은 인강 전 과목 수강으로 유인(?)한 후 협상을 해보려 한다. 실제로 과외를 여러 과목 하는 것은 옛날 부잣집처럼 선생님들이 집으로 와서 줄 서서 대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동하면서 드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몹시 소중한 자기 공부 시간이 확 줄어든다. 뭐 한 것 같지도 않은데 하루가 금방 갔다는 소리를 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남매 어머님 이원숙 여사... 지금 하늘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신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여사님께서 사실 억척 어머니 판타지, 아메리칸 드림의 한 획을 그어주신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자제분들이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음악가가 되어 천만 다행이다만... 


놀러와서도 내 앞에서 25,000원짜리 이투스 수학 강의를 듣고 있는 우리 딸 귀엽다. 1월 7일까지 들어야 한다며 중얼중얼거리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는데... 엄마가 어떻게든 해줘야지. 이 말이 머릿속에서 내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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