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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an 03. 2024

에브리씽 베이글의 유혹  

아모르 파티! 흣따! 흣따! 

요즘에 무사히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책 읽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모임에서 추천받은 철학책을 읽기도 하고, 마음이 급하면 지금 작업하고 있는 원고 자료 수집을 위해서 준비한 책들을 읽기도 한다. 무식한 내 머리통이 하루에 겨우 두 시간 더 일찍 깬다고 하여 뭐 그리 많이 달라지겠냐마는 몸은 아직까지 적응하느라 피곤한데, 마음만은 든든하다. 별 한 것도 없이 내가 똑똑해진 것 같은 느낌? 이건 말도 안 되고, 조금 더 정확한 표현으로 벼려내보자면 이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날 것의 재료가 훌륭하게 발효되어 그동안 맡지 못했던 향미가 저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언젠가는... 


여하튼 여적지 돌대가리인 나에게 오늘 6시 30분 경, 이 말이 하나 훅 꽂혀 들어왔다. 

둥근 고리를 향한 갈증. 

둥근 고리.... 뭐지? 

우리는 끊임 없이 하나의 원리를 깨달아 가는 중이라며 그 '원리'라 바로 이 둥근 고리가 아니겠냐는 설명을 들었지만, 도통 모르겠는 것이다. 지금 내가 설명해주신 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쓴다고 쓴 건데, 이것마저도 아마 잘못 이해하고 쓴 것일 것이다. 살아 생전 니체 오라버님 책을 안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내가 잠깐 사이에 제대로 알아듣고 아하! 모먼트가 올 리가 없으니까.  


나는 내 주위에 ‘동그라미’를 그려 성스러운 경계로 삼는다. (동그라미 : 너희가 더없이 사랑하는 자기, 너희에게는 그것이 덕이다. 너희 안에는 둥근 고리에 대한 갈증이 있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둥근고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올랐던 이미지가 있었다. 그는 바로 '검은 베이글'. 

나는 몹시 논리적이지 못하고, 무당도 아니면서 눈 앞에 촥 펼쳐지는 그림대로 그 느낌대로 휙휙 멋대로 살아왔다. 좋게 말하면 초고도로 직관적인 내게 바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에브리씽 베이글'이 선물처럼 다가온 것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은 다들 많이 보셨을 것이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일부 스포일러도 있을 수 있으니 각자 유의해주시길 바란다. 

나는 이 영화를 커다란 극장 스크린으로 한 번, 집에서 ott로 한 번 총 두 번을 봤다. 그리고, 매트릭스니 마블 시리즈니 지구상에서 유명하다는 명작 영화들을 오마쥬해서 퀼트처럼 오목조목 꿰어놓은 이 영화를 내가 한 번의 감상만으로는 정신이 없어 도저히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대충 넘겨 때려 맞추기... 이런 것을 잘 못한다. 불행히도 상황이 앞뒤로 완벽하게 이해되어야 천천히 앞으로 진도 빼는 스타일이다. 이러니 내가 학교 다닐 때 중간, 기말 시험을 잘 봤겠니?) 

그래서 유튜브로 신기하리만큼 편집과 설명이 잘 된 요약본을 계속 끊어 되풀이하면서 보았고, 그제야 이해가 조금씩 가기 시작했다.  


인간은 후회한다. 

내가 가보지 않은 인생, 궁금하지 않은가? 나도 '그냥, 거기서 그랬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 많이 한다. 내 인생에서 제일 많이 후회하는 순간은 1992년 겨울, 밴쿠버 공항에서다. 왜 돌아왔을까. 엄마가 아무리 오라, 오라, 난리를 쳐도 나는 안 간다고 공항에서 자빠져 누웠어야 했는데... 어쩌면 나는 거기에서 안 돌아왔으면 그냥 저냥 북미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아마 남편도 외국인일 수도 있겠지... 

신기하게도 타임 랩스 소설이나 영화들을 보면, 신기하게도 공통된 원칙이 있다. 매번 이 원칙을 발견하고는 나는 괜히 혼자 잔잔히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함이 일었다. 왜 이런 원칙을 세웠을까. 


넷, 죽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현실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돌아오지 않는다.  -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중 
둘, 과거로 돌아가서 어떠한 노력을 한지언정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 <커피가 식기 전에> 중


에에올의 세계관은 여러 평행우주에 다양한 내가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주인공인 에블린은 어느 세계에서는 유명 액션 여배우로 갈채를 받기도 하고, 손가락이 소세지로 진화한 나라에서 국세청 직원과 연인이 되어 있기도 하며 일본식 철판볶음밥집 셰프로 활약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맨 처음 보여지는 에블린은 매일 매일 빙글빙글 돌아가는 빨래방의 주인, 여기저기에서(에브리웨어) 모든 것을(에브리씽) 다 한꺼번에(올 앳 원스) 해달라는 사람들로만 수두룩한 그녀는 이제 조부 투파키라는 악당에 대항해서 각 멀티버스에 흩어진 '나'를 모아야 한다. 즉 '수퍼 자아'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내 머릿속에 탁 떠올렸던 바로 그, 검은 베이글, 모든 토핑이 다 올려져 있는 다 타버린 베이글은 바로 현실(어느 것이 진짜 현실인지는 모르겠으나...)에서는 또 한 명의 속 끓이는 인간인 딸 조이, 그리고 어느 세계의 악당 조부 투파키가 만든 베이글이다. 이 세계, 저 세계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에블린은 베이글의 그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결국, 초자아로 거듭나기 위해 드디어 구글리 아이(Googley Eye)를 이마 한 가운데에 떡 붙인다. 인도의 여자들이 이마에 빈디를 붙이면서 두 개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보는 '제 3의 눈'이 생기는 것과도 흡사하다. 

에블린은 이렇게 다양한 유니버스 속에서 '살아내며'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와도 같이 각각의 지혜를 하나씩 장착하면서 목표점으로 삼았던 '수퍼 자아'로 발전을 하게 되나... 


여기에서 잠시 에브리씽 베이글에 대한 이야기를 조부 투파키의 입으로 들어보자. 

에블린의 딸 조이와 조부 투파키 역을 맡은 배우 스테파니 수의 오디션 장면이라고 한다. 진짜 연기가 어마어마해서 링크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상 속에 나오는 노래, 듣기 괴상해보이는 노래도 오디션장에서 배우가 지어서 불렀던(물론 준비를 해왔겠지만...) 노래라고 한다. 당연히 영화에서도 이 멜로디는 쓰였다. 


https://youtu.be/1rLhnMq_kh0?si=NA6DE3sFoX5PRClT


- 지루해하던 어느 날이었는데, 너무... 너무 지루했지. 그래서 난 모든 걸... 베이글 위에 올렸어. 내 모든 꿈과 희망, 성적표, 모든걸 말이야. 개의 품종, 중고 사이트 구인 광고들, 참깨, 양귀비씨, 소금....

그러더니 스스로 붕괴되더라고. 왜냐하면, '엄마'...

그 모든 걸 정말로 베이글에 올리면 진실이 돼. 

- 어떤 진실?

-  들을 준비됐어?

이 모든 게 부질 없다는 거야. 

- 아냐, 조이 그런 건 믿지 마. 

존나 부질없다고. 기분 좋지 않아? 

모두 부질 없다는 건 모든 고통과 날 실망시켰다는 것에 생기는 죄책감이 사라지게 되는 거잖아. 

베이글로 빨려 들어가는 거야. 


모든 것을 경험하는 것은 모든 것을 경험하지 않은 것과도 같고, 모든 것을 욕망하는 것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는 깨달음.  

Nothingness. 空. 


아, 인생은 고통스럽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구나 라는 생각으로 에블린이 조부 투파키의 유혹을 따라 허무의 상징인 베이글로 빨려들어가려고 하는 찰나! 

........................ 여기까지! 


이것이 바로 각각의 유니버스에서 보여주는 삶에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열쇠가 아닐까. 

1. 지금 오후 1시 24분,  두 시 반 전까지 이글을 마쳐야 다음 스케줄에 지장이 없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급한 마음으로 시계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자판을 토도독 두들기고 있는 나와,

2. 1992년 겨울 밴쿠버 공항에서 울고 불고 내장을 토하듯 난리를 쳐서 딸을 한국으로 빽시키는 것에 실패하고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 후, 그곳에 남아서 네덜란드 태생의 키가 190이 넘는, 지금은 대머리가 된 블론드 청년과 결혼하여 30년 넘게 개고생하다가 겨우 빨래방을 차려서 이제 먹고살만해진 나, 

3. 이태리의 라 스칼라좌에서 조수미의 뒤를 이어 한국인으로는 몇 번째로(?) 공연한 성악가로서 촉망받으며 살다가(아, 한국인이 아닐 수도 있겠구먼!) '내가 죽인 시체만 모아도 공동묘지'라는 이탈리아 마피아 두목의 눈에 들어 음악이고 뭐고 때려치고 막스마라, 로로피아나 따위 앞 마당에서 루꼴라 캘 때나(취미가 가드닝?) 입는 정도의 호화 생활을 하고 사는 나... 


1,2,3번 그리고 그 이상의 내가 멀티버스에 다 존재하고 있다 하여도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와 같이 '가보지 않은 길'은 죽을 때까지 못 가보는 것이다. 수많은 가능성의 뚜껑을 덮은 채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다. 

그래도 그 안에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현생의 의미를 찾아낸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참 뭉클했다. 여기에서 '현생의 의미'는 우리가 너무나 많이, 쉽게 이야기하는 그것 아닌가. 현재를 즐겨라. 지금을 사랑하라. 


나는 그래도 이렇게까지 내가 에브리씽 베이글을 다시 생각하고, 정리하는데 그래도 맨 위에서 말한 '둥근 고리'와 무슨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조금은 시간을 내어 찾아봤다. 물론 오늘 하루 발췌 초록해서 읽는다고 내 인생에서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니체의 '영원 회귀'의 개념은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뜻과 결국에는 맞닿는다고 한다. 현재를 즐겨라. 지금을 사랑하라. 허무주의에 허우적대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는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좋다. 

(제가 이에 대한 배움이 너무 짧아서 많은 분들의 조언 댓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짜입니다!!!)


그리고, 인연들. 윤회를 하면서 억겁의 시간을 통하여 계속 연결되는 이 소중한 인연들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감히 '대신 죽을 수도 있는' 내 자식들, 그리고 옆으로 퍼져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 가끔씩 오며 가며 따순 입김을 불어 넣어주는 친구들, 나에게 일을 만들어주는 사람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는 것 없이 싫은 사람들도... 인연이다. 인연의 고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둥글다. 일직선이나 직사각형, 삼각형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 

한동안 대학가를 휩쓸었던 우리 김연자 언니의 '아모르 파티' 들어보고 가자. 

(그동안 '파티'가 Party 인줄 알았던 분들은, 이 노래를 온몸으로 즐기면서 Party도 근사하지만, Fati 운명이라는 뜻도 있었다는 되새기면서 조금은 '덜' 심각해지기로 하자. 


https://youtu.be/Pbl1g8V04KE?si=jf7RVxHqfjWLAt-9


흣따! 흣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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