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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an 13. 2024

장기전세 신청해 봄- 살(BUY)집? 살(LIVE)집!

행운을 빈다. 황섬.

이번 43차 장기전세주택 신청을 별 생각없이 해봤다. '에이~ 설마 되겠어?' 하고 그저 맘 비우고, '이번에 안 되면 지금 사는 집에서 계속 편안하게 사는 거지.' 이러고 맘 편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신청한 곳이 경쟁률이 무려 8:1 이 넘는다. 7집 뽑는데, 신청한 사람들이 무려 60명.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동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다. 

내 나쁜 버릇 중의 하나가 바로 시험을 보든지, 이렇게 어딘가에 당첨되고 싶어서 신청을 하든지, 아예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험을 다 봤으면 뭐가 틀렸는지 가슴이 아프더라고 일일이 체크하고 다음 번엔 틀리지 말도록 재정비 해야한다. 아파트 청약도 그렇다. 혹시라도 당첨되었을 경우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은행에 가서 얼마 정도를 끌어당겨 대출을 받을 것인지 가늠이라도 해놓아야 한다. 혹은 이번에는 떨어졌더라도 다음 번에는 어떻게 절치부심, 와신상담하여 붙을 지 알아두기라도 해야 할텐데... 나는 영 계획이 없었다. 백년을 허리 꺾어 반을 살았는데도 '부동산은 내 일이 아님'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어서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복기해보면 서울 변두리 이 조그마한 집 전세라도(사실 집주인 분의 배려로 시세와는 별개로 아주 낮은 가격에 살고 있다) 살고 있는 것이 그저 행운이다. 


https://youtu.be/5pNtDgTrxck?si=FXkw8qKziWs5LO6X


이런 내가 언제 당첨자 발표를 하는지 검색을 하다가 이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아영이네 행복 주택'이라는, 깔끔하게 설명 잘 해주는 내집 마련 채널이다. 그런데, 영상 맨 앞에 내가 이번에 신청한 주택을 '펜트하우스'로 소개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펜트하우스란 아파트나 건물 맨 위층에 자리한 고급 주거 공간을 뜻하는 부동산용어라고 한다. 그저 크고 멋진, 미국 헐리우드 스타들이 사는 집과 같은 호화주택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방이 무려 네 개고(꺅!) 드레스룸, 파우더룸도 넓단다! 그리고 출입문도 두 개나 되고(와우! 어렸을 때 엄마 아빠 몰래 외박하기 딱 좋잖아!) 엘리베이터도 혼자 쓴단다. 이렇게 좋은 집인지도 모르고, 그냥 우리 동네니까 막 신청한 건데...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집' 하면 나는 그저 책꽂이 하나 커다란 것 짜서 벽 하나 쫙 세워놓고 종이책 사서 주르르 꽂으며 내 홈 도서관처럼 만들어보는 것이 꿈일 뿐이다. 책을 들여놓을 공간이 마땅찮아서 되도록이면 E- 북으로 대체해서 보는 것도 불만스럽다. 또 하나의 '귀여운' 소망이라고 한다면, 부엌 좀 ㄱ자로 꺾어져 봤으면... 지금까지 늘 작은 평수에만 빙글빙글 돌아가며 살아온 바람에 단 한 번도 부엌이 꺾인 적이 없었다. 부엌이 좁으면 작업 속도가 확 느려진다. 그릇이나 냄비, 조리도구를 치우면서 요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데 이 아파트는 너무나 멋지게 ㄱ자로 꺾여 있다! 앞에다가 아일랜드 식탁이라도 하나 놓으면... 꿈에 그리던 ㄷ자 부엌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견물생심. 

지금 내 마음이 딱 이 마음이다. 이 영상을 보기 전에는 집에 욕심이 없었다. 그저 우리 동네에 있으니, 아들 운동하러 가는 곳도 바꾸지 않아도 되고, 딸이 살고 있는 집에서도 가까워서 골라본 것일 뿐인데, 지금은 내 마음의 '드림 아파트'가 되어버렸다. 오래 전부터 '여기로 이사 한 번 가봤으면' 하고 가끔 한 번씩 상상해온 우리집 앞 '이 편한 세상' 아파트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나의 '드림 아파트' 옆 아파트는 20집 뽑는데, 44명 신청한 곳, 그곳으로 그냥 할 걸 하는 생각도 든다. '20집이나 뽑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몰릴 거야.' 하는 생각으로 한 번 살짝 틀어서 7집 뽑는 곳에 넣은 건데... 다들 나랑 똑같이 생각을 반 바퀴 들어서 하고 있었나 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방 네 개짜리 드레스룸 있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그럼 고3인데도 집이 좁아 나가서 자취하고 있는 우리 딸도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만두 녀석이 아무리 쿵쿵 뛰어도 아무도 우리집한테 뭐라고 할 사람 없을 테고. 아들 때문에 일부러 1층으로 이사를 온 건데, 옆집 여성이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어서 시끄러운 집으로 아주 낙인 찍혔다. 

전세가 3억 9천이다. 와, 요즘 시절에 너무 싸잖아! 지금 이 돈을 또 어디서 구해야 할지, 걱정은 나중에 은행에서 하면 된다?


돈이 흐르는 길목에 서 있으라는 말을 거의 20년 째 들어왔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알 길이 없었다. 그 뒤로 나이가 많이 들어버린 지금도 돈이 흐르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남이 만든 돈 한 달, 한 달, 따박따박 받아 먹으면서는 답이 없다는 것 정도 아는 것까지는 왔다. '나'라는 인간의 자산가치는 얼마인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지금은 작전 상 네 발 털뭉치 안에 손발톱 꽁꽁 숨기면서 살고 있는데, 만족스러울 만큼 몸값 올릴 때까지는 끊임없이 노력해 볼 작정이다. 그렇다고 언젠가는 '냐오옹~' 하고 포효하면서 세상에 챙! 챙! 칼을 들이대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내 능력이 잘 쓰여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 방 한 칸, 내 땅 한 마지기 따라오겠지. 사실 작금의 내 최고 재테크는 '글 잘 쓰는 것'이다. 덧붙여 중요한 것은 '제값에'... 제값 받고 드라마 잘 쓰고, 제값 받고 책 잘 쓰고... 


가슴이 뛴다. 자꾸 욕심이 생긴다. 

동영상 괜히 봤다. 원래 여기 신청하고 난 다음날, 남편과 함께 타로 카드 뽑아보면서 계속 메이저 카드가 안 나오길래, '에이~ 우리 안 돼. 됐어.' 이러면서 맥주 콸콸콸 들이붓고 이미 끝난 일인데... 사람의 마음이 가볍고 솜털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하루다.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고 이 동영상 밑에 달린 강탄산 터지는 사이다 댓글 하나로 잠시 복닥복닥했던 마음, 잘 거두고 간다. 안녕. 

- 집, 내가 돈 주고 사고 말어.


서류 제출자 발표는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그마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다른 세상에 눈을 조금은 뜬 것이고, 앞으로 똘똘하게 내 집 살 곳 잘 찾아보겠다는, '어이쿠, 늦게라도  황섬, 대견하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P.S. - 나이 들어 신청하니 좋은 점. 전세 사기 따위 없을 안전한 집에서 칠순까지는 살겠더라. 팔순 때는 난, 모르겠다. 내일 걱정은 내일 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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