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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an 19. 2024

될 때까지, 기우제

인디언 기우제의 메커니즘?

‘인디언 서머’라는 것이 있다. 

북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사는 대륙에 가을 초입부터 늦가을 사이 비정상적으로 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비가 좀처럼 내리지 않는 가문 날씨를 일컫는다. 

인디언 서머가 이어지면 당연히 여러모로 불편해지는데, 정작 인디언들은 이때를 ‘절망 가운데 놓인, 뜻밖에 얻은 희망’의 시간으로 비유한단다. 

가뭄이 시작되면 다 같이 모여 기우제를 올릴 것이고, 그러고 나면 비가 올 테니까. 

비가 올 때까지 바치는 기우제를 허무개그나 미신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실제로 척박한 땅에서 ‘기우제’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단단히 다지는 기제이자 신념 체계로 이어 내려왔다.    



가끔 끓는 머리를 식히러 혼자 가까운 가평 시골 마을로 간다. 1박 2일, 자는 곳, 먹는 곳 모두 같은 곳을 둘러 온다. 그날도 저녁 식사를 하러 늘 가던 닭갈비 집에 갔다. 밭에서 상추랑 고추를 직접 키워 따서 상에 올리고, 요즘 흔치 않은 집된장으로 찌개를 끓이는 곳이다. 

닭갈비 2인분을 시키고 조용히 바깥 텃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음식을 가지고 오셔서 테이블 가스레인지 불을 탁 켜시면서 말씀하신다. 


“이번에도 양념 좀 덜 얹었어요.”


고추장으로 만드는 음식은 좀 과하게 허옇다 할 정도로 양념을 덜어내고 먹는 편인데, 아주머니는 그런 나의 식성과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긴 닭갈비 집에 늘 혼자 와서 먹는 손님은 안 잊어버리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 와중, 주인아저씨가 밖에서 돌아왔다. 곧이어 두 분 나란히 붙어 앉아 늘 틀어두는 텔레비전을 올려다본다.


“장사 하나도 안 되고…”


할머니가 시선은 계속 위쪽으로 꽂아두며 푸념하듯 말씀하신다. 


“그러다가 다음 달엔 더 잘 되기도 하는 거고 그런 거지. 설마 굶어 죽겠나.”

“내가 굶어 죽는 거 걱정하는 걸로 보이남.”

“그럼 뭐가 걱정이여.”


세상 어디든지 이렇게 걱정거리들이 한 움큼씩 기본 토핑으로 뿌려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 맛있게 집어 먹고 있던 닭갈비도 얼마간의 나의 ‘불안’을 갈아 넣어 번 돈으로 사 먹고 있는 것일 터이다. 

이 일이 끝나면 다음 일이 이어질까, 내가 이 작업을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내 글을 읽고 어떤 ‘평가’를 할까. 

한 배우는 처음부터 꿈을 크게 잡지 않고 작게 잘라낸 현실적인 소망을 단계별로 올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에 캐스팅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한 단계, 작품이 끝나면 불안한 마음이 들 여지없이 다음 작품이 예정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 또 한 단계….


“그냥 장사 안되는 게 걱정이지.”

“그렇게 반복해서 걱정하는데, 위에서 참 그거 안 이뤄주겠다, 이 사람아.”


간절히 걱정(?)을 하면 걱정하는 상황 그대로 현실에서 벌어진다는 아저씨의 일갈이다. 나는 이날 닭갈비 집에서 '초인'을 만난 듯했다. 

고통아, 걱정아, 불안아, 다 나한테 쳐들어와라. 살포시 눌러주마! 삶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내가 그만한 적수가 되니까 들어오려니 생각하고 어린아이처럼 놀이로 알고 즐기는 자세… 까지는 아직 무리이지만, 까짓 거 그런 척이라도 해본다. 


Fake it till you make it. 

줄기차게 흉내내고 그런 척 하다보면 그 비슷한 것까지는 해낸다... 이쯤으로 의역하면 되지 않을까. 마침내 원하는 바대로 될 때까지 해보는 거다. 무작정 버티는 '존버'랑은 또 다른,  삶을 대하는 태도다.  

이 문장은 몇 년 전 재미있게 봤던 넷플릭스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 에밀리가 임신한 상사 대신 파리로 발령이 났을 때, 남자친구가 '너 프랑스어도 못하잖아!' 하면서 놀라니 그 앞에서 경쾌하게 던진 한 마디였다. 이 문장을 한참을 잊었다가 지난 주 연속으로 세 번이나 만난 것은 우연일까?


렇다. 우리 일상에서 ‘인디언 기우제’는 어떤 방향으로든 꽤 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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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가슴 속에는 어떤 간절함이 담겨 있을까요. 금요일인지라 마음이 조금은 여유롭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기적도 놓치지 말고 확대경으로 보는... 여기까지 썼는데... 또 하나의 부고장이...
그저께는 제 친구의 동생이 세상을 떠나서 너무나 슬픈 마음으로 빈소에 다녀왔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희 드라마 제작사 대표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네요. 내일은 일찍 채비를 하고 가뵈어야 하겠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기적으로 느껴집니다. 흐르는 시간을 향유할 수 있음에 저절로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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