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1.
우리 귀염둥이 막내는 열 살이다. 2014년 생.
오늘은 장난감을 대거 정리했다. 이제는 아이도 많이 커서 커다란 블록이나 자동차 장난감들은 잘 가지고 놀지 않기에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워낙에 집에 짐 많은 것 너무 싫어해서 책도 오랫동안 읽지 않는 것들은 하루 날 잡아서 정리하고(그래서 후회했던 책들이 수 권 되지만...) 다른 안 쓰는 짐 같은 것들은 홱! 하고 버리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 그릇도 수납할 공간도 없을 뿐더러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쓰는지라 손님 초대도 못할 단촐한 살림이다.
이런 내게 가장 눈엣가시가 바로 장난감. 오랫동안 안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었다.
2.
여덟 살, 아홉 살 되던 무렵이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 다 그렇듯이 나랑 두 살 차이 나는 내 남동생은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해서 스케치북이나 종합장에 하루종일 앉아서 그리곤했다. 특히 나보다 훨씬 영특했던 내 동생은 그냥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이야기를 입혔다. 우리가 '시험지'라 불렀던 거친 갱지 위에 진짜 기성 만화가들처럼 칸을 나누어서 그림을 그리고, 말풍선을 올렸다. 내가 읽어도 몹시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만화가 신문수 선생님의 '로봇 찌빠' 아류작, 혹은 오마쥬한 만화도 있었고, 길창덕 선생님의 꺼벙이 비슷한, 머리 검은 아이도 등장했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동생은 줄기차게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고, 한 장 한 장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물풀로 이어붙여서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십 원 받고 팔기도 했다. 주요 고객층은 당시에는 참 젊었던, 이런 똘똘이 조카를 사랑하던 이모, 고모, 삼촌들이었던 것 같다.
3.
그런데, 어떤 하루.
이 갱지 만화책들이 전부 사라졌다. 동생은 난리가 났다. 난리가 아니 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린 여서일곱 살 친구의 상상력이 마음껏 구현된 작은 8절지, 그리고 어른들이 보시고 아이고~ 잘 그렸다~ 재밌다~ 칭찬해주셨을 때의 까까머리 내 동생의 표정을 기억한다.
동생의 수십 권되는 갱지 만화책은 엄마가 버린 것으로 밝혀졌다. 대성통곡이 시작됐다.
- 내 만화 내놔아~~~~~~~
내장이 다 끌려올라올 만큼의 통곡이었다.
70년대, 80년대에는 고물장수 아저씨라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종이 박스나 신문지, 고철 등을 받아서 강냉이나 손가락에 끼워 먹는 뻥튀기(요즘은 마카로니 뻥튀기라고 하던데...)랑 바꿔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이 아저씨에게 엄마가 그 만화책들을 넘겼던 것이다.
- 내 만화 내놔아~~~~~~~~
그 날이 토요일이었는데, 정말 하루종일 울었다. 우리 엄마는 그 당시 엄마들이 하던대로 그만 뚝 하라고 화도 내고, 자꾸 이러면 밖으로 쫓아낸다고도 했다. 빗자루도 가지고 와서 때리는 시늉을 했었는데 동생의 통곡은 그치지 않았다. 아마도 엄마의 체벌보다 오랫동안 그려왔던 만화책을 잃어버린 고통이 더 커서 그랬을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울어도 별 수가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 저녁을 먹을 때쯤 되자 울음을 거뒀다. 그리고는 엄마한테 한 마디 했다.
- 엄마, 앞으로 또 이러면 안 돼요.
부엌에서 나오면 작은 수돗가가 있고, 바로 두세 발짝 걸어가면 장독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그 장독대 아래가 광(요즘 말로 '창고')이었는데, 그 앞에서 동생이 뚝하고 울음을 그쳤다.
엄마는 그래, 그래, 알았다, 하고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오후에 퇴근하고 온 아빠는 '거 참, 그렇게 함부로 그걸 버리면 되오?'하고 엄마를 나무랐다.
엄마는 왜 그걸 버렸을까, 그냥 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4.
장난감을 버리면서 이날 생각이 너무나 많이 났다. 혹시 나도 내 기준으로 이것들을 다 처분해버리고 동네 곡소리 나게 하는 건 아닐까. 장난감을 버리는 건 어쩌면 '애착인형'처럼 늘 곁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저 '그곳'에 있어서 든든한 존재를 없애는 행위는 아닐까 조심스러웠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자아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엄마, 아빠는 그저 God이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배가 고프다. 덥고 추울 때 보전도 하지 못한다. 인간의 가장 기초가 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부터 양육이 시작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 큰 후에 기억도 못할지언정 무의식 속에는 부모의 역할이 묵직하게 깔려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은 다 기억하는 수십 년 전 '만화책 폐기' 사건은, 내 동생이 얼마나 예민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무의식의 공책에 적혀는 있을 것이다. 꼭꼭 눌러 적혔는지, 희미하게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기록을 어떻게 다룰지는 동생의 몫이 되어왔을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내가 이걸 다 버려도 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토마스와 친구들'과 커다란 로보트 몇 개, 그리고 자그마한 고무 공룡 인형들을 남기고 싹 정리했다.
5.
사랑에 있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모험은, 겸손한 자세로 파워를 발휘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가장 흔한 예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고하는 행동이다. 누군가에게 충고할 때 근본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는 잘못됐고, 내가 옳아."
부모들이 하는 가장 흔한 실수다. 나 또한 이렇게 혼 내지 않으면 '버릇 잘못 들까봐' 노심초사했던 적이 많았다. 아이들이 뭘 원하는지, 이 아이의 특별한 개성이 뭔지 알아볼 필요도 느끼지 못한 채 우리는 늘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만을 기르고 싶다.
나는 그래서 아이가 학교갈 때마다 했던 "선생님 말씀 잘 듣고!"라는 말을 싹 지웠다. 자폐 친구들은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제발 '의자에 잘 앉아있기를', '다른 친구들 공부할 때 방해가 되지 않기를'... 이 생각만 간절하다. 그래서 자꾸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주입, 또 주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의 방향을 좀 바꿨다. 아이에게도 주어진 24시간, 뭘 원할까? 학교에 가서 뭘 하고 싶을까?
그래서 "학교에서 재미나게 놀다 와!"로 대신 채웠다. 학교는 재미나야 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뭣 같으면, 하는 일이라도 재미나야 산다. 나 같은 직장 안 다니고 혼자 일하는 사람들은 일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6.
"내가 옳고 당신이 잘못했으니 당신이 달라져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따지는 것은 누구나 전혀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
...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적어도 현대 거론되는 문제에 관한 한,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더 우위를 차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개성과 자아의 독립성을 존중해준다.
...
이러한 딜레마는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로써만 해결될 수 있다.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사람을 케어하고(신경 쓰고) 있다면 그 쪽을 보지 말라고. 지속적인 무거운 시선을 거두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얼마나 큰 자유를 주는지 모른다고.
7.
충고나 비판은 리더쉽이나 파워를 행사하는 형태다. 파워를 행사한다는 것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미리 정해진 방식대로 사람이나 일의 진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다른 사람의 영적 성장을 돕고 싶다면 주어진 상황에서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부모라면 아이를 위해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 안다고 확신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과 가치관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확신이 서면 그다음에는 아이의 성격과 능력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실 오늘의 '잠시, 잠깐' 독서는 이 구절부터 시작했다.
장난감을 버리러 나가다가 갑자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이 책을 뚝 펼쳤다. 워낙 얼마 전까지 읽던 책이라 손길이 익숙하기도 했지만...
장난감 하나 버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돌고 돌아 나의 어린 시절 기억도 한 움큼 퍼냈다.
나는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한다.
...
사랑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사랑이란...
치워진 장난감은 우리집에 많은 빈 공간을 선사해주었고, 나는 장난감과 함께 마음도 같이 깨끗이 비운 느낌이다.
금요일에 만난 내 친구는 나한테 이런 선물 같은 이야기를 해줬다.
- 그래도 너 딸은 너가 그렇게 사랑해주니까 사춘기 지나서 좀 자리 잡는 것 같아. 아마 걔는 알걸?
내가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 친구가 그것을 살짝 확인해주는 것만으로도 안심이었다.
장난감 하나 버린 것 가지고 이렇게 거대하게 생각할 일인가.
오늘 일요일, 재밌었다.
오늘 버린 장난감의 아주아주 일부다.
우리 만두의 어린 시절이 함뿍 담겨 있는 장난감들아, 안녕.
다음 우리 만두의 손에는 어떤 것이 쥐여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