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브런치 매거진을 시작합니다.
나는 가정 폭력 '생존자'다.
어린 아가를 숨도 못 쉬게 때려서 죽을 뻔하게 했던 사람은 엄마였다. 그런데, 정작 엄마는 때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한 번 때리고 나서 다 까먹었다고 하면 할 수 없지만,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가 언제 화를 낼지 몰라 불안하고, 아빠는 언제 나를 지켜줄까 마냥 애타게 기다리다가 어른이 됐다. 물론 예정된 수순으로 아주 커다란 폭풍과도 같은 청소년기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너무나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 이제 부모탓 그만할 나이도 되지 않았니?
이 이야기도 커다란 쐐기로 꽁꽁 얼은 내 마음에 박혔다. 이 커다란 얼음은 그 쐐기로는 깨지지도 않는다.
시작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싶지만, 나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렇게 부정적인 기억부터 튀어나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는 '부모'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즉 '그리운 기억', '고마운 마음', '자식이라면 해야 할 효도'와는 전혀 맞지 않는 강한 단어들까지 툭툭 가감 없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걱정하고, 불편해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 사람 왜 이래?' 하고 매정하게 뒤돌아 가는 일은 내가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지난여름, 페이스북에 올라온 내 글, 거칠기 짝이 없는 엄마 (성토) 이야기를 읽고 기획자로서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린 한 출판사 대표님께 연락이 온 적이 있다. 그 출판사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했던 것이 저자들이 그저 썰만으로 200 페이지 책 한 권 꽉 채우는 것 말고 한 장 한 장 공부해서 써야 하는, 밀도 있는 내용의 책들을 내는 곳이어서 이 미팅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눈을 반짝거리며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부모님과 나의 이야기를 풀었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인간의 오감이 있고, 육감 촉이라는 것이 있는 터...
이번 미팅은 내가 준비가 안 되었음을 스스로 알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출판사 대표님은 출판계의 '영 제너레이션'이셨던지라 미팅할 당시에는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부모'의 역할이나 의미에 대해 작가와 함께 아주 신선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그리고 깊이 고찰을 해보고 싶으셨을 것이다.
산만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엄마에 대해서 뭘 아는 것이 없다. 그래놓고는 뒤늦게라도 엄마와 이야기를 해보고 엄마를 정식으로 인터뷰하고 싶단다. 이거 뭐지? 게다가 드라마 쓰느라고 또 바쁘다고? 무엇보다도 본인을 수렁으로 빠뜨려놓았다는 엄마에 대해서는 원망이나 투덜거림으로 가득할 뿐, '공부'를 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솜사탕 같이 입에 넣으면 녹아 없어지는 부모님 이야기로 계속 한탄만 하고 있었다.
대표님은 아주 완곡하게 타당한 사정을 들어 나와의 원고 집필 계약을 거절 내지는 미루셨다. 온전히 이 책에 대해 몰입하여 글을 쓰실 수 있는 작가님과 작업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글 한 줄 한 줄 각주를 쓴다는 마음가짐으로 쓰셨으면 좋겠다는 것.
미뤄졌다. 무기한...(미뤄졌다고 믿고 싶다)
어른이 된 후, 그리고도 한참 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어렸던 엄마 그리고 아빠를 조용히 뒤돌아보고 나서 특히 엄마가 많이 마음이 아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어린 시절은 늘 '영광의 순간'만으로 꽉 찼다. 가난한 집의 장녀로 태어나서 어려서는 영특한 머리로 아버지(즉 우리 외할아버지)께 법관이 될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자라났다. 엄마는 늘 새벽까지 공부를 했고 당연히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엄마가 고 2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밑에 올망졸망 다섯 동생들은 실제 가장이 된 엄마의 말을 거의 어머니 이상으로 잘 들었다.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면 동생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말린 고추 걷고, 빨래 걷고 하는데 엄마만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그들을 사회에 나가서 제 구실을 할 정도로 학교 뒷바라지를 했다. 대전의 외갓집도 엄마가 우수한 성적으로(!) 사대에 가서 국민학교 선생님이 되고 나서 산 집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자식들을 위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엄마가 학교에 근무한 시간은 5년 남짓? 그런데도 엄마는 학교에서 학부모들의 지대한 존경을 받는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마침 이런 엄마의 로망에 걸맞은 막내아들이 태어나는 바람에 히스토리는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내 동생이 영재반 테크트리를 타고 비록 서울대 물리학과는 떨어졌지만, 포항공대 물리학과에 진학한 후 스탠퍼드 석박사 과정으로 가고, 공부를 마친 뒤 영국으로 건너가서 '임페리얼'은 나는 위스키로만 알았는데, 그런 학교에 들어가고 연구자 생활을 이어간 것이다. 아아, 운명의 신이시여!!!!
모두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엄마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낸 영웅이었다.
나는 이상했다. 우리 가족들(즉 아빠, 나 그리고 동생)에게 엄마는 이러한 훌륭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아빠는 늘 아내인 엄마를 타박했고, 동생과 나는 엄마에게 반발하느라 바빴다. 그나마 동생은 엄마 삶의 '희망'이었기에 아들의 존재만으로도 기쁨이었다. 왜 우리만 제외하고 다른 이들에게 엄마는 추앙을 받는 것일까.
어린 시절의 엄마를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사진도 없었다. 심지어 남편인 우리 아빠도 엄마의 결혼 전 모습을 잘 모른다. 나는 엄마의, 뚝 떼어서 회칠이 된 그 기간에 뭔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어린 시절, 언제 화를 낼지도 모르는 엄마는 나에게 악마였다. 물론 그냥 악마 일색의 기억만을 남겼더라면 그냥 엄마와 연을 끊고 지내면 될 일이었는데, 더 괴로운 것은 애기 때 엄마 등에 업혔을 때 그 푹신한 느낌을 지금도 느낄 수 있고, <전설의 고향>을 볼 때 엄마 등 뒤에 숨어서 보던 아늑함도 생생하다. 밤새 몸이 아팠을 때 아침이 되면 시원한 파인애플 맛 '써니텐'을 사주었던 것도 기억한다는 것이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8,9화에 보면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해, 그 결핍으로 주변 사람들을 많이 많이 힘들게 하는 사나운 환자가 나온다.
"너도 나 싫어하지?"
"선생님도 저 싫죠?"
이런 마음으로 뜨겁게 가득 차서 괴롭게도 온 삶이 부글부글 끓는 환자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모두 자기를 존경하게 만들고 싶다. 다 나를 따라야 한다. 그 목표를 위해서는 거침없이 연극도 한다. 아이고, 당연하지. 차라리 드라마에서처럼 막 화내고 손목 긋는 사람은 오히려 마음이 착해빠진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고 해칠 것은 오로지 자기, 나 밖에 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환자의 병명은 '경계성 인격장애'다.
오케이! 좋았어! 하고 이렇게 브런치 북 소개글을 쓰면서 시작했다가 요즘 너무 바빠서 일정한 요일에 연재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일 것 같아 비정기적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브런치 매거진으로 바꿨다. ^^
이 매거진을 읽으면 좋을 분들은 다음과 같다.
나는 요즘 본격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받은 지 벌써 3주가 지났는데 굉장히 도움이 컸다. 선생님께 드릴 진심 어린 감사는 조금 더 있다가 한꺼번에 드리고 싶다.
이 상담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이 있다. 엄마를 생각할 때 '악마'라고 서슴없이 표현하는 섬뜩한 내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 그리고 어쩔 도리 없이 그 악마에게 꼼짝없이 당했던 내 어린 시절도 아낌없이 위로해주고 싶다. 지금은 나 아니면 어느 누구도 이 일을 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동안의 나는 천방지축 어디로 튈지 모르고, 불안한 사람으로 비췄던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나마 오래 알아왔던 사람 몇 명만 안다. 얘는 늘 노력하고, 한 번 잡은 일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는 것을. 이런 멋있는 내 장점이 과거라는 먹구름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어보시면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지도요..
[신이 우리를 내려다볼 때]
https://brunch.co.kr/@chocake0704/199
부모님은 이런 내 마음을 아예 모르거나, 모르고 싶어서 외면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사과'가 가장 빠르고 통쾌한 치료약인데 이 약을 쓸 방법은 없다. 어쩌면 사과를 받는다고 해서 '부모'에게만 유독 비뚤어진 내 마음을 다시 바닥 다져, 초석을 일으켜 세우고, 건물을 올리는 제대로 된 길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이 '엄마, 나한테 할 얘기 없어?'라는 제목의 글 모음은 내 마음의 커다란 건물을 다시 짓는 과정이 될 것 같다. 매주 한 번씩 받는 심리 상담 내용과 짧은 공부라도 차근차근 시작한 내용이 함께 버무려질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하게 될지, 상담의 내용도 어떻게 나아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저 위의 출판사 대표님이 아쉬워하던 그 부분을 메꿀 나만의 '논리'가 세워질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이런 사례가 나만 그런 것이 아님을 안다. 부모님께 깊은 사랑 충분히 받고 자라신 분들도 너무나 많지만 어쩌다 보니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에 대한 보상, 치유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지금도 가족들이 버거운 분들이 많다.
나도 이 글을 한 편씩 완성하면서 부모님과 화해했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는... 이제 나에게 한 번도 내밀지 않았던 손, 내밀지 않아도 된다. 진심이다.
오히려 내밀면 너무 쑥스러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