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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Feb 10. 2024

아스파라거스의 아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구글에 들어가니 이런 멋있는 청룡 한 마리가 대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당장 설날 첫 날, 브런치로 모셔왔다. 


좀 쑥스럽지만 '감사 일기'를 쓰고 있다. 꼭 끝에 '감사' 자를 안 넣어도 되는데, 하다보니 이렇게 된다. 그중 공개해도 창피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꺼내본다. 

우리의 뇌는 너무나 신비로운지라 머릿 속에 지도가 그려졌다고 평생 그 지도만 보며 맴맴 도는 것이 아니란다. 새로운 신경망을 구축할 수 있고, 그에 따라서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 뇌속의 새로운 지도 만들기 작업 중의 하나가 바로 나에게는 '감사 일기'다. 


요 며칠 계속 연습하고 있다. 

내가 보는 세상, 생각하는 것, 예상하는 치를 넘어선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전제하기. 내가 하나의 우주라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우주라는 것을 잊지 말기. 그리고 내가 딛고 사는 지구 말고도 다른 별들이 수 없이 있다는 것도 잊지 말기.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 저 흰 점이 지구다.



- 명절 때마다 식사하러 오라고 늘 불러주는 엄마에게 감사. 

- 정형외과 병원 진료 갈 때 택시 불러 달라고 하면서 귀찮을 까봐 머뭇거리는 아빠, 고맙다고 인사해주는 아빠에게 감사. (실제로 엄청 귀찮았음)

- 명절이면 딸과 어디론가로 짧은 여행을 계획할 수 있어서 감사. 

- 명절에도 늘 내 작업물을 기다리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사. 

- 그 사람들이 영화 드라마 업계에 판치는 양아치들, 나쁜 사람들이 아니어서 더더욱 감사. 

- 조용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어서 감사. 

- 뒤늦게라도 나의 특성을 알게 되어서 감사. 

(며칠 전, 내가 아스퍼거인임을 알게 되었다. 조금 상심했지만, 인생의 수수께끼가 풀린 듯 후련했다.)

-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상한 마음은 다시 싱싱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 살아온 나 자신에게 감사. 

- 맛있는 커피를 적정한 온도로 데워 마실 수 있음에 감사. 

- 적당한 거리를 두며 나를 존중해주는 진실한 친구에게 감사. 김땡땡. 이땡땡.




For Ann Druyan 

In the vastness of space and the immensity of time, 

it is my joy to share a planet and an epoch with Annie. 


상상할 수 없이 광활한 공간과 셀 수 없이 무한한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시간을 애니와 공유했던 것은 내게 기쁨이었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로맨틱한 사랑 고백. 

칼 세이건 박사의 책 '코스모스'의 첫 장에 등장하는 고백을 이곳에 모셔오며 마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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