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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Feb 18. 2024

양평 비스트로 '브리사'

멋부리지 않고. 단정하고. 꽉 찬.

딸과는 소위 '인스타그래머블'한 밥집에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었다. 나는 딸이랑 식사하면서 반주 한잔 거하게 걸치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 좋아하고, 딸은 육식파인지라 본격 정육 식당 같은 곳에 가면 장땡. 

그런데, 오늘은 인스타그래머블한 곳으로 아침에 서둘러 출동했다. 

양평군 서종면에 자리잡은 비스트로 '브리사' 

아내와 함께 이곳을 운영하는 이는 쓰레드에서 만난 친구인데 (쓰친이라고도 하지) 가끔씩 올리는 글을 읽으면 참 좋았다. 가게를 천천히, 조용히 운영하려는 생각도 좋았고, 사실 양평은 본격적인 시골이라고 하기에는 '서울러'들이 많이 내려와 이곳 저곳 개발을 한 터라 조금 특이하게 어색한 곳이긴 하지만, 고즈넉한 시골 생활을 마음껏 즐기려는 삶도 읽혀서 더욱...   

브리사로 출발하기 전, 가게에 수동 타자기를 들여왔다는 소식과 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영상을 보았다. 가게 주변을 직접 알뜰하게 단도리하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기대감 증폭. 



이쯤에서 '비스트로'의 뜻 정도는 알아두고 가도록 하자. 

비스트로는 레스토랑 보다는 훨씬 작고 편안한 프랑스 동네 식당을 의미한다. 보통 메뉴는 칠판에 손글씨로 적어두기도 하고(그날 그날 주인장의 사정에 따라 바뀌기도 할 테니) 주로 le plat du jour(오늘의 요리)라는 점심메뉴를 파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심야식당의 간판 메뉴 돈지루(돼지고기 된장국)처럼 프랑스식 스프 포토푀나 꼬꼬뱅 같은 시그니쳐를 중심으로 운영하기도 한단다. 

(프랑스를 한 번도 못 가본 녀석이 이렇게 아는 체를 해서 죄송하다) 

평소에 레스토랑, 비스트로, 브라세리, 카페(간단한 식사를 팔기도 하니까...) 등등 도대체 뭐가 다른 건가 궁금해서 예전에 한 번 찾아 읽어본 것 뿐이다. ^^;;



가평, 양평 쪽은 우리집에서 빠르면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정도면 충분히 도착하는 곳이어서 심리적으로 그리 먼 곳이 아니다. (우리 동네, 서울의 강북 쪽에 사는 것에 상당히 만족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것) 아시는 분들은 아시지만, 내 삶 전체를 두고 역마살이 보통 기승을 부리는 것이 아닌지라 매 주말은 차마 그러지 못한다 하더라도 주말에는 거의 일단 가방 싸서 어딘가로 가는 게 일이다. (애들은 난 몰라)

그래서 이럴 거면 양평 쪽 조금 많이 외진 시골 쯤에, 우리집에서 차로 두 시간 안 되는 곳을 눈을 밝히고 보다가 작은 전세나 월방 하나 얻어서 작업실로 삼자 생각했던 적이 있다. 작년, 재작년의 일이다. 그래서 옥천이나 서종면 쪽을 슬슬 돌아다녀보기도 했던 인연이 있다. 

지금은 이 '주말 작업실' 프로젝트는 조금 미뤄두었다. 

조만간 양평이든 가평이든 보금자리는 찾을 생각이다. 


처음 양평 쪽으로 들어서니 양 길가에 고깃집, 대형 빵집, 카페... 정말 대단하다! 

그러다가 조금 더, 더, 더 들어가면 이제야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이제 병풍처럼 드리운 산들이 나를 바라보고, 날 풀려 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보인다. 


브리사에 도착. 



이렇게 감각적인 간판이라면 다들 당장 내부로 뛰쳐들어가보고 싶지 않은가.  

크고 작은 식당 모두 간판에 주인장의 감각이 한꺼번에 담겼다. 

한식을 파는 곳에 가면 김치 하나만 먹어봐도 앞으로 나올 음식 짐작할 수 있듯이, 브리사가 그랬다. 



딸과 나를 위해 준비된 테이블. 

그리고 모든 공간이 자연으로 만든 파티장이다. 



딸이랑 함께 "아, 너무 이쁘다~" 감탄사를 뿜으며 각자 핸드폰 삼매경으로... 

식전빵이 나왔다. 



원래 식전빵은 서프라이즈가 있어야 한다. 어떤 식당에 가도 식전빵은 겉바속촉인 것 다 아는데, 그리고 매번 놀라는데도 왜 또 이번에도 놀라는지. 

정말 맛있게 먹었던, 그리고 배고팠던 딸과 나를 살짝 가라앉혀 준 빵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심각했던 것이 내가 저 빵에 묻혀 먹는 소스 이름을 까먹은 것이다. 아아, 올리브 오일에... 무슨 식초인데, 뭐지? 검은 식초인데.

발사믹. 

나도 30대, 40대에는 어르신들이 자꾸 이름 까먹고, 거 뭐지? 이러는 거 다 기억 안 나는 척 하는 건 줄 알았다. 정말이다. 

이거 참... 오십줄 접어드니 진짜 기억 안 난다. 

(황섬이 오십 줄인 줄 이제 아신 분들, 실망하셨다면 변함없는 구독과 좋아요... 방긋)



파스타가 나왔다. 라구 소스 훌륭했다. 우리 딸의 표현에 의하면 '장조림맛' 제대로 나면서 너무 맛있단다. 게다가 파스타 면도 적당하게 익어서 더욱 먹기 좋았다. 탱글탱글... 

MZ 딸아, 음식 사진을 어떻게 찍는 거니, 이렇게 찍는 거니 하고 물었는데 빨리 찍으란다. 어떻게든 좋으니.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라구 파스타다. 


대충 면 삶아서 척 얹어놓고 저렇게 그라인더에 치즈 갈아 얹으면 각 나온다. 사실.... 그렇게 해서 2만 원 넘게 받는 파스타 집도 있다. 많다, 슬프게도...

그런데 저 치즈하고 라구 소스하고, 푹 퍼지지 않고 통통한 존재감 드러내는 면하고 같이 잘 어우러져서 좋았다. 

딸하고 파스타 한 그릇 먹더라도 좋은 것, 건강한 것 함께 먹으면서 각자 알아서 SNS 하고 있더라도, 그래도 좋은 것이 이런 것이다. 미각과 후각의 경험. 


사진에는 없지만, 이 집의 매콤한 피클도 일품이다. 

"김치 있나요?"

내가 파스타집 갈 때마다 부리는 진상 중에 하나인데... 오늘은 피클 한 그릇 더 주세요, 하고 깔끔하게 맛있게 먹고 나왔다. 



오늘, 두 번째 음식. 

나 또 이 피자 먹으면서 "허브 맛이 난다." 하면서 그 허브 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애를 썼는데, 딸이 알려줬다. 

"바질이야."

양파와 바질맛이 어우러져서 신기하게 '과일향'이 난다. 

엄마의 기억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입이 꽉 차게 좋다. 



마지막 하일라이트. 

제주 흑돼지 프렌치 렉 스테이크. 

딸이 돼지고기를 선택했다. 

사실 한 10년 전 한 외식업체에서 홍보 일을 하면서 제주 흑돼지가 일단, 제주에서 태어났으면 중간 이상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무슨 에이징 하면서 고기를 조금 배우던 시절이었는데...

오늘은 그 시절, 팝업 하면서 먹던 스테이크 떠올랐다. 

셰프가 성질이 참 거칠어서 행사 당일, 나오기는 하나,  이게 될까 하면서 긴장하던 때. 그런데, 또 그 성질대로 음식 하나만은 멋지게 만들어내던 이였는데... 

이 음식 참 좋았다. 

그리고 딸은 저 마늘과 파로 다진 소스가 좋았나 보다. 


"집에서 해 먹는 것 같은 느낌이야."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식사, 그리고 화장실까지 정말 완벽했던 공간과 시간. 

핸드폰을 안 가지고 들어갔는데 화장실의 센스는 최고였다. 이쑤시개와 손소독제 수도꼭지는 반짝거리고 변기는 말해서 무엇. 

음식은 맛있는데 화장실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나오던 때도 많았는데, 처음 발 들여놓은 순간부터 식사하고 나올 때까지 완벽하게 와와.... 감탄했다. 

(진짜 내돈내산임...)



양평의 브리사. 

오늘 딸이랑 즐거운 시간 꽉 채우고 들어왔다. 

사실 어떤 사람이 쓰레드 친구인지 몰랐는데, 아내 분만은 알아 보았다. 

그리고 가게에 꽂혀있는 책만 봐도 그 리스트만 봐도 그냥 쓰친 만나고 돌아온 듯한 느낌. 


가족들끼리 굳이 멀리까지 찾아가서 한 끼 멋진 식사 해도 좋다. 

아니면, 비스트로의 하는 일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서 식사하면서 와인 한잔 해도 좋다. 

나는 나중에 친구와 함께 와인 마시러 또 갈 것 같다. 


천천히, 오래오래... 

그냥 오늘 저녁은 이 곡이 생각난다. 


https://youtu.be/C_o5pnMK28A?si=wnvo--FXhBXJlxA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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