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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24. 2024

너무 사랑하는 여자들

내 얘기다, 내 얘기... 

이 책은 한 5-6년 전에 요점정리까지 하면서 굉장히 열심히 읽었다가 이번에 드라마 쓰면서 캐릭터 연구하려고 다시 사서 줄 죽죽 그어가며 읽은 책이다. 즉, 세상의 모든 '평강공주병'에 걸린 여자들을 위한 분석 논문이다. 또는 나, 바보 같은 황섬 씨의 보고서나 다름없다.

(남편이 늘 나보고 바보 같은 황섬.이라고 부름 ㅋㅋㅋ)


내가 왜 그렇게 누군가를 사랑하면 내 시간, 재산까지 바쳐서 사랑했는지. 중독이 된 듯 사랑했는지. 남녀 관계에서 우연이란 있을 수 없는데도 왜 그 남자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위험을 무릅쓴 이유가 무엇인지. 안팎으로 나에게 결코 사랑을 줄만한 조건이 안 되는 다크한 남자를 만나서 계속 되풀이해서 상처받고, 버림받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힘든 사랑을 이어 나갔는지. 
이 미스테리를 명확하게 풀어내주는 책이다.


1. 자신에게 익숙한 패턴에 딱 맞아떨어지는 상대를 원한다.

2. 과거에 고통을 주었던 패턴을 재현해 극복하고 싶다.




몹시 명철한 통찰이다.

나는 50년 살면서 절대적인 지지와 충만한 사랑을 받은 것이 중3에서 고등학교 1학년 올라오면서 사귀었던 오빠, 딱 그 한 사람에게서였다. 그 어린것이 뭘 알겠냐고 하겠지만, 아니었다. 우리집 대 파탄 날 때 우리 엄마가 그 고 2짜리 오빠한테 사위 대하듯 기댔던 적도 있다. 아빠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에 안 들어오고 엄마는 거의 실성한 듯이 앉아 있을 때 오빠가 우리집에서 같이 우리 식구랑 자줬다. 내 남동생도 형이랑 친해서 모든 상황은 오빠가 온 뒤로 평온해졌었다. 어른이 고2 남자애한테 어린애처럼 기댈 정도의 상황이라면 어린 시절 나의 결핍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 오빠, 참 고마웠는데...  
어디서 얼마나 머리 까지고 배 나와서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렇게 나의 익숙한 패턴은 '사랑 결핍'이다. 부모님도 넉넉하게 사랑을 준 적이 없고, 오히려 폭력에 가까웠다. 늘 불안하고, 무섭고, 두 사람은 늘 자기들 싸우느라 바빴고,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저 고성이 언제 끝나나 무서웠으니까.

그리고, 내가 꼭 하고 싶었던 것이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패턴을 굳이 재현해서 그걸 극복하고 싶다는 것.

그래서 늘 다크 하고,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남자를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거기에서 내 존재의 이유를 느끼던 거였다. 내가 이 사람을 돕고, 구원하고, 결국은 딱 이 한 마디, "정말 고마워" 이것 듣고 싶어서 지난 30년 간 시행착오를 엄청나게 했던 것이다.


그러면, 저 사람은 뭘까.

오빠는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진실한 고백, 프로포즈, 생일잔치 다 해주고, 단 한 치도 의심 없이 의지할 수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내가 외국에 가버렸는데 고 3 때 단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보내줬었다. 내가 살던 동네의 우체부 아저씨가 날 기억할 정도였다. 사우스 코리아에서 편지 왔다고.

그런데, 군대 갈 때 진짜  잔인하게 찼다. 나는 사랑할 때 장애물이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느끼는데,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면 이건 지루해지니까. 그래서 불륜, 스무 살 연하 혹은 스무 살 연상과의 사랑, 이런 도전적인 상황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패턴, 즉 사랑의 결핍을 재현해서 극복하고 싶었던 것인데, 단 한 번도, 진짜 단 한 번도 그런 결핍을 가진 자들은 개과천선하여 나에게, 내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정말 고마워"라는 말을 해준 적이 없다. 당연한 이치다. 자기를 변화시켜준(?) 나에게 감사하면서 감동할 개체들이 못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도 없었고. 사랑받지 못할, 참혹하게 백퍼 지는 게임에 늘 나는 도전하고 있었다.


이 책을 찬찬히 줄까지 그어가면서 읽으면서... 온통 나의 임상 심리 보고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은 이 시기를 지나온 것 같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으로 계속 가슴을 쓸어내리며 읽고 있다.


박경리 선생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아, 나이 들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앞으로도 또 불안하고, 힘들 일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분별할 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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