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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30. 2024

생애 최초 차박, 파바박!

가평 금대리

드디어 내 인생 위시 리스트에서 한 가지를 이루는 날이다. 오십에 시작하는 솔로 차박 라이프. 조촐한 내 숙소를 꾸며 놓고 커피 한잔 앞에 두고 앉으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생애 최초 내 집 마련 ^^



차박을 하도록 만들어진 캠핑장이 없어서 자주 가던 숙소 옆에 오래전부터 빈 마을회관 터가 있어서 그 앞에 댔다. 이 마을의 고요함은 진짜 내가 너무나 사랑한다. 혹시 북한강가에 자리 좋은 데 없을까 둘러도 봤지만 이미 펜션들과 수상레저 업체들이 모두 차지했다.


모든 게 다 처음이다. 모기장 치는 것도, 창문 가림막으로 막는 것도, 랜턴 켜서 올려놓는 것도 파워뱅크에 노트북 연결하는 것도…



가만 보니까 요즘이 차박 하기 딱 좋은 시기인 듯한데, 문 닫고 오래 있으니 좀 덥다. 곧 무시동 에어컨과 캠핑용 선풍기를 들일 것 같다. 애초에 음식은 모두 사 먹거나 포장해 와서 먹자고 계획했었는데, 자꾸 버너랑 코펠 욕심이 생긴다. 일단 오늘은 나의 단골집에서 이른 식사를 했다. 두릅 튀김, 두릅 숙회까지 잔뜩 주신다.



시골 사람들은 마을에 못 보던 차를 보면 기가 막히게 알아보고 가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던데, 그래서 좀 쫄았다가 이젠 좀 편안해졌다. 그래도 계속 내 차를 보고 다른 차들이 가다가 서서 본다. 심지어는 내 차 옆에 어떤 이가 주차를 하고 갔다. 저 위에 펜션 오셨냐면서...


남편이 혼자 있으면 일상생활이 안 돼서 어디 갈 때마다 꼼꼼하게 부탁을 한다.



처음에는 좀 자기가 잘 알아서 하는 남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그런데, 옛날에 그런 남편이랑 살아도 봤는데, 간섭과 잔소리가 정말 사람 숨통 막히게 했던 걸 떠올리니 평일에 이리 나와서 혼자 차박 할 수 있다는 게 어디냐 싶다. 곁에 어떤 친구가 있느냐도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는데 그렇게 중요하다는데 하물며 남편이야. 어제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본인도 이혼을 한 이혼 전문 변호사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진짜 허벅지를 딱 내리쳤다.


- 여러분. 이혼한다고 해서 인간의 생각이 더 업그레이드되고 사람이 없던 능력이 생기는 게 아니에요. 나라는 인간은 똑같아요. 이혼을 열 번 해도 한 번 했던 나와 똑같아요. 뭐가 절로 더 업그레이드되겠어요. 그래서 두 번째, 심지어 세 번째 결혼은 더 신중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 방송을 들으며 운전하다가 피식 웃었다. 10년 전, 15년 전, 20년 전 내가 떠올라서…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면서 결혼하고, 또 심각한 이유로 헤어지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이혼하고... 아 너무나 지난했던 시절... 그래, 사람 안 바뀐다. 그걸 잊고 자꾸 로봇 같이 업그레이드되는 주인공을 드라마에 그리려고 하니까 고뇌가 안 보이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같은 실수 노력해도 또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나 같은 애들은 어떻게든 더 행복하고 싶어서 기를 쓰고 악착같이 달려들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이 스스로도 대견하다. 이것이 내 방식의 업그레이드라면 업그레이드일까. 그래서 이 소소하지만, 작은 공간에서 작은 랜턴 하나 켜놓고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최강으로 '나 혼자만 레벨 업'(혹시 모르는 분들이 오해하실까 하여... 아주 유명한 웹툰 제목이다)된 황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 살면 다 거기서 거기야.

맞는 말이고, 또 틀린 말이다. 여러 번 바꿔 살아보지도 않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을 보면 나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남편한테 톡 보내다가 평일에 조용하게 생애 최초의 솔로 차박을 하니 행복하다가 여기까지 생각이 흘렀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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