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 문화' 혹은 '무리 문화'의 절정에 이르렀다. 맘에 맞는 친구, 혹은 필요에 의해 옆에 꼭 붙어야겠다는 친구들끼리 작은 소행성을 만들고 서로 자석같이 붙어 다니는데, 이는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왜 필수적인고 하니, 이 안에서 처음으로 '좌절'을 배우기 때문이다. 덤으로 따라오는 것은 '외로움'. 그리고 맺는 결실은 분명히 '독립'일지니!!
나는 지금도 욕을 조금은(!) 찰지게 하는 편인데, 효과적인 욕 발사 방법은 중학교 때 혜팔이(가명)한테 배웠다. 때는 바야흐로 중 2에 올라가서 학기 초, 정말 친하고 싶었던 무리에서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탈하게 됐다. 그 무렵 사춘기 애들, 특히 여자애들은 끼리끼리 다니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사람 인人자'처럼 마음도 몸도 아주 돼지표 본드처럼 꽉 붙어 다녔는데, 그 친구들한테서 이탈하게 된 사건은 내게도 꽤 충격이었다. 친구들이 왜 나를 싫어하는 것일까 헤아리다가 하루가 다 갔다. 상처를 나름 깊게 받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혜팔이랑 친하게 된 것인데... 지푸라기라도 붙들고 일어나듯, 내 곁에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혜팔이를 붙잡은 것이다. 혜팔이는 공부는 잘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멋쟁이에다가 무엇보다도 나에게 돈까스, 당시에는 경양식이라고 부르던, 중학생들에게는 조금은 과분한 식사를 많이 대접해주었다. 아마 자기도 먹고 싶으니까 날 자주 데리고 갔던 것 같은데, 대학가 앞에서 갖는 혜팔이와의 경양식 타임은 정말 신나는 일임과 동시에 '중학생이 여기 와도 되나' 하며 약간의 죄책감이 드는, 과하게 어른스러운 일이었다. 여하튼 다른 친구들 무리에서 배척된 아픔도 잠시, 혜팔이랑 함께 하는 시간은 편안하고 재미있었다.
밥인가요, 빵인가요? 이 분은 밥을 선택하심.
그런데, 중 2 중반기를 지나니 혜팔이도 진한 사춘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슬슬 나를 데리고 '날라리'라 불리는 소위 불량학생들 무리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나름 쑥맥이었던데다가 날라리들이 노는 방식이 하나도 재미가 없던지라 좀 저어했지만, 조금만 참으면 그보다 더 큰 '소속감'을 안겨주니 괜찮았다.
결국은 혜팔이랑 놀려면 기본적으로 욕은 좀 할 줄 알아야했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욕을 하나 싶다가, 한 번 무장 해제하고 욕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으니 이게이게 정말 재미난 것이다! 그리고 욕을 잘 하면, 친구들은 나를 보고 재밌다고 웃고, 박수쳤다. '씨발'도 그냥 씨발로 안 하고, '씨봉탱', '씹탱', '씨볼알' 등으로 바리에이션을 주면 친구들은 더 열광했다.
뭘 더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몇 개월 여를 학교 끝나면 솔밭에서 껌을 씹고 다니다가 결국 혜팔이는 완전히 '날라리' 클럽의 찐멤버가 되었고, 나는 또 다른 친구 무리가 생겨서 그쪽으로 합류를 하게 된 바람에 그쪽은 손을 씻게 되었다.
애들 노는 데에 무슨 조직도 아니고, '손을 씻는다'는 표현이 우습기도 하지만, 그쪽 아이들의 유대감은 그 어떤 무리보다 강했다. 남자 친구도 꼭 그 조직 안에서 사귀어야 했으니까...
게다가 우리 엄마는 내가 혜팔이 만나러 나갈 때마다 되게 뭐라고 했다. 그 공부 못하는 애랑 또 노는 거냐고. 나는 공부 좀 못 하면 어떻냐, 나라고 뭐 썩 잘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며 대들었다. 이제는 엄마랑 혜팔이 때문에 싸울 일도 없어졌다.
그 뒤로 혜팔이는 나를 봐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나는 또 다른 친구들이 생겼고, 그 친구들은 공부들도 잘 하고, 건전하게 노는 데다가, 친구들 집에 가면 적어도 부모님이 치킨 정도는 튀겨 주시는 문화여서 더 좋았다. 그리고, 수유리 학교 앞에 KFC가 새로 생겨서 그곳을 우리의 아지트 삼아 놀았는데, 어두컴컴한 경양식집과는 달리 밝은 조명에 건전한(!) 튀김닭 냄새가 좋았다. (나는 그때의 기억 때문에 그런지 아직도 그 어떤 치킨보다도 KFC 치킨을, 그 기름 뚝뚝 떨어지는 닭껍질을 사랑한다)
이제는 날라리가 되어버린 혜팔이를 져버리고, 공부 잘하고, 뭔가 더 모범적으로 보이는 친구들 무리에 들어간 배신행위(?)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느꼈지만, 아마 내 기억에 혜팔이에 대한 미안함은 얼마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내 옆의 친구들과 노는 것이 너무나 재미났으니까.
먼 훗날, 나는 대학에 진학했고, 그 해 겨울 방학은 대학에 간 애들끼리 모여서 아주 덕성여대 앞을 싸그리 점령했다. 다들 귀걸이들 하나씩 하고, 파마도 하고, 교복 벗어 던지고 어른스러운 옷으로 갈아 입고 각자 어설픈 딴 사람들이 되어 나타났다. 하루는 나도 그에 질세라 빽바지에 가죽 점퍼를 입고 덕대 앞 KFC 쪽을 지나 어느 카페를 향하고 있었다. 그때 저쪽에서 진짜 '어른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딱 봐도 아주 세련된 어른인 자그마한 여자가 지나가는데... 그 여자가 바로 혜팔이!
나는 시간도 이미 5-6년 지났으니 그때 일이야 다 지난 일이지 하며 반가운 목소리로 혜팔이를 불렀다.
- 혜팔아! 나야!
그랬더니 두꺼운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고 지나가다가 스을쩍 두 눈을 꺼내어(정말 그렇게 보였다) 나를 바라보면서 이 한 마디 하더라.
- 누구세요?
이 시절에는 이 정도로 친구란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즐거운 추억을 선물해주기도 하지만, 평생 잡아 뺄 수도 없는 칼을 꽂기도 하지.
곰돌은 5학년 때 잠시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소팔(이 또한 가명!)이라는 아이가 인스타그램에 곰돌의 얼굴 사진을 모여라 꿈동산처럼 커다랗게 늘려 놓고는 거기다가 자기네 무리에게 뭐라뭐라 써서 올린 것이다. 딸이 그것을 보고 엉엉 울고 난리가 났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인스타 부계를 타고 들어가서 그 녀석에게 친신을 하고, 제대로 캡쳐해서 선생님께 보냈다.
그때도 곰돌은 난리가 났었는데 이유는 단 하나. 나 이제 누구랑 노냐는 것이었다.
이렇게 나쁜 짓을 하는 친구는 친구도 아니다, 다른 친구를 찾아보자. 혹은 그 사이에 친구가 없다 하더라도 인생의 그릇은 학교가 전부가 아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불라불라 해봤자 무쓸모. 소용 없었다. 아이는 지금 그 친구에게 버림 받은 것이 눈이 돌아가서 마음에 온통 허리케인이 불어 쓸어가 버리고 있는데 내 '훈장질'이 들릴리야.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 아니, 어머님. 소팔이는 공부도 곰돌이보다 훨씬 못하고, 곰돌이가 훨씬 모범적이고, 친구관계도 좋아요. 그런데, 왜 곰돌이가 그 애한테 이렇게 휘둘릴까요? 소팔이가 애들을 좀 몰고 다니는 경향이 있긴 해요.
선생님은 아마도 엄마인 나를 진정시키느라고 이런 말을 해주신 것임을 알고는 있으나, 삑! 반칙이다. 선생님은 상대 진영의 아이 정보를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흘리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여하튼 이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는 소팔이에 대한 강한 편견이 들어차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 반 편성을 받고 나서 곰돌은 울상이 되어 들어왔다. 소팔이랑 같은 반이란다.
그런데, 얼래? 이제는 교복 맞추러도 소팔이랑 같이 다니고, 학교 끝나고도 학원 안 다니는 애가 반에서 소팔과 우리 곰돌이 둘 밖에 없는지라 아주 꿍짝이 맞아서 잘도 딱 붙어 다니기 시작한다. 가끔 우리집에도 데리고 왔는데, 내 눈을 똑 바로 쳐다보고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흘리듯 '안냐아세여' 인사하는 것이 몹시 거슬렸다. 그리고 그 발음도.... 이야기를 듣자 하니, 걔네 엄마가 얘를 안 키우고 아빠랑 같이 치킨집을 하면서 할머니가 키워주신단다. 오빠 세 명은 지금 이미 성인이 되었는데, 그렇게 소팔이를 구박한다고 한다. 그래서 소팔은 늘 가출을 꿈꾼다고 하는데... 가끔 죽고 싶다고 그래가지고 한밤중에 우리 곰돌을 소환하는 바람에 놀이터로 나간 적도 있다. 어우~ 그때 혹시 소팔이가 맥주 사가지고 오는 건 아닌가 하고 내가 그 놀이터 뒤에 가가지고 쭈그리고 앉아 숨어있기도 했는데... 야! 너 쟤랑 놀지마!를 마음속으로 이미 백 번도 더 외치고 있는 이 속물 엄마를 어쩔 것인가.겉으로는 딸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꾸 생각하느니 '근묵자흑', '근주자적'이나 떠올리고 있고...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이제 소팔이와 한반이 또 됐다면서 무척 좋아했다! 나는 또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지만, 애가 이렇게 좋아하니 그것만으로도 됐다, 내 친구 아니니까 신경 끊자는 마음을 먹기는 했다.
그리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게 소팔이 잘못인가? 무엇보다도 곰돌도 이혼한 엄마 밑에서, 그리고 할머니 집에서 자라고 있지 않은가. 왜 내 주제는 이리 계산을 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왜 뭐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를 어른의 음흉한 잣대로 가르고 자빠졌는지 모르겠다. 다 다른 토양에서 각자 알록달록 자라는 아이들인데 말이다.
하루는 곰돌이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한단다. 친구 몇몇이 노원역에 몰려가서 파자마를 깔맞춰 사고 난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