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진격의 교정, 교열
지난 달 쌤스토리의 김성남 선생님께 곧 제작될 무크지 교정, 교열 작업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예산을 짜고 있는데, 교정 시세가 어떤지 이야기해주면 반영하시겠다고 한다.
원고를 받아보니 바로 발달장애아를 키우셨던 엄마들, 그리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동안 써오셨던 원고들을 모아서 만드는 책이었다. 작업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케이!
어머님들이 남다른 아이들을 키워온 얘기겠거니, 가벼운 에세이 정도에다 끝에 가서 전문가 선생님들이 쓰신 글만 조금 정신차려서 작업하면 되겠구먼... 하고 깃털 같이 생각하고는 작업비를 내가 받아야 할 것 보다 조금 깎아서 불러드렸다. 나도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엄마 중의 한 명으로서 김성남 선생님 회사에 헌금(?)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아, 그런데 그것은 내 오만과 편견이었음이 작업 시작하자마자 드러났다.
발달장애아에서 발달장애 청년으로 키워내신 어머니들은 지금 업계의 전문가가 되어 계셨다. 상담사로, 코치로 그리고 치료사로 대활약을 하고 계셨고, 심지어 어떤 분은 발달장애인 아들을 데리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오셨다. 그리고 경기도 화성시에 꿈고래놀이터라는 치료센터 겸 놀이터를 건립하셔서 지역 협동조합으로 튼튼하게 운영하고 계신 분도 있었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교정을 하다보면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었다. 도대체 왜 장애아인 내 아이의 권익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과하게 해야 하나 하는 내용도 쏟아져 나와서 작업하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죽었다 깨도 애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못하겠다는 마음도 수십, 수백 번 들었다. 맹렬하게 작업하다가 잠시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열성적으로 못하니까 지금 샘이 나서 이런 건가?
그래서 글 속에 자꾸 나오는 '선배 엄마'라는 말도 보기 싫어서 다른 말로 바꿔 버리기도 했음을 소심하게 고백한다. 교정, 교열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 까만 것은 글씨고, 하얀 것은 화면이라는 것을 자꾸 까먹게 되고,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나도 이분들과 같은 발달장애아의 엄마라서...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나도 '선배 엄마'가 될 것이기에... 나는 이렇게 선배, 후배 줄 세우는 것을 아주 싫어하지만, 아이는 클 것이고, 그 세월에 남은 기록들은 다른 엄마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한 챕터, 한 챕터 산을 넘어 가고 있다. 어떤 분의 필력은 무척 좋아서 띄어쓰기 정도만 다듬어드려도 될 정도였다. 그러다가 와우! 거의 다 끝나갈 무렵 복병을 만나버렸다.
그 분의 글은 문단을 아예 통째로 들어내서 다시 써드려야 하는 것도 있었고, 맞춤법도 잘 안 맞는 부분도 많았고... 틀린 것 보이면 그냥 못 지나가는 성정인지라 고치고, 또 고치고 나면 아주 종이에 새빨간 딸기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이분의 글을 한 땀 한 땀 고치는 작업을 하면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글 자체로만 보면 분명히 매끄러운 글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힘 있고, 유쾌하고, 진심히 크게 느껴지는 글임을 발견했다. 발달장애 아이들과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느끼고 겪은 크고 작은 이야기와 생각들이 어쩜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생생하게 통통 튈 수 있는지 어메이징했다. 읽는 내내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 활어와 같은 펄떡임은 오래 여운이 남는다. 이것이 잘쓴 글이다.
그분이 쓰신 글 중 몇 가지 가슴에 보석처럼 박힌 것이 있어서 몇 줄 남겨본다.
수면이 뇌의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시면서 쓰신 문장이다. 이게 뭐라고 왜 그렇게 웃긴지...그리고, 이 글의 마지막 문장에는 나도 내 잠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하며 마무리지으신다.
이 문장에서는 작업하다가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이번 교정, 교열 작업을 하면서 제일 크게 느낀 점은 장애아의 엄마인 내가 그동안 너무 사회에 미안해했다는 것이다. 먼저 우리 주변에서, 사회에서 우리 아이를 이해해주고, 배려해주고, 지원해주어야 했는데 나는 너무 주눅들어 있었다.
아이가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장면을 계속 따발총 쏘듯이 이야기하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도 못한 데다가 소리까지 언제 지를지 몰라서 사실 식당에 한 번도 제대로 데려간 적이 없다. 3년 전에 한 번 데리고 갔다가 아무것도 못 먹고 나온 뒤로는 거짓말 같지만, 단 한 번도 식당에 함께 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마음도 얘를 과연 식당에 당당히 데리고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선진국에서 보고된 '발달장애인들의 노화'에 대한 데이터를 접하고 난 뒤 쓰신 글이다. 나도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발달장애아나 발달장애 청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듣고, 또 직접 만나도 봤는데, 발달장애 아저씨, 아줌마나 발달장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보지 못했다.
나 어렸을 적에도 그렇게 동네에 바보형들이 많았었는데... 우리 반에도 영규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중증 발달장애아가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매일 영규를 데리고 학교에 와서 교실 뒤에 앉아 계셨다. 그리고, 쉬는 시간만 되면 지나가는 아이들을 붙들고, 사탕이나 abc 쵸콜렛까지 쥐어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영규랑 사이좋게 '놀아줘'"
'놀아'도 아닌 '놀아줘'가 너무나 가슴아프다. 지금 영규는 어디에선가 나처럼 중년이 되어 있을 터인데...
그 많던 발달장애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번 작업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나도 좀 '이 엄마들을 보고 배우자'는 것이다.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끼리도 사람인지라 모이면 무리가 형성이 되는데, 나는 이쪽에서는 철저한 '아싸'다. 몇몇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자기 커리어를 포기하고 매달리면서 형성되는 우울, 열등감, 혹은 반대로 뻗치는 자만감(내가 발달장애아 엄마들의 대표라는 환상!?)도 별로 보기 싫고, 원래 뭉쳐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은 연유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 생애주기를 짚어내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좀 더 폭 넓은 세상을 겪어볼 수 있도록 자식 손을 붙들고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인사도 시키고, 말 못하는 아들이 열외되지 않도록 운동회 때 한복 입고 꼭둑각시 춤까지 같이 춰버리는 엄마의 열성을 보고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자꾸 눈물이 난다. 쓰면서... 이 무슨... ㅋㅋㅋ ㅠ)
무려 햇수로 3년 전에 쓴 글을 다시 보고 고친다. 이 글을 썼을 무렵, 하루종일 소리를 지르고 다녔던 1학년 꼬마 만두 어린이(본명은 문혜성, 별명은 만두)는 지금 어엿한 3학년이 되었고, 오늘 아침에는 '고학년'이 뭐예요? 라고 질문도 할 줄 아는 등 지구별의 언어에 잘 적응 하고있다. 또한 정수리가 엄마 코에 닿을 정도로 키도 많이 컸고, 수영과 야구를 즐기는 스포츠맨이 되었다. 아, 그리고 어떤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작년에는 그림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하고, 느리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리 거북이 헬리혜성을 사랑한다.
5살 때 처음 그린 그림. 제목은 <개미>
전시회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그림
전시회 포스터
무려 햇수로 3년 전에 쓴 글을 다시 보고 고친다.
이 글을 썼을 무렵, 하루종일 소리를 지르고 다녔던 1학년 꼬마 만두 어린이(본명은 문혜성, 별명은 만두)는 지금 어엿한 3학년이 되었고, 오늘 아침에는 '고학년'이 뭐예요? 라고 질문도 할 줄 아는 등 지구별의 언어에 잘 적응 하고있다. 또한 정수리가 엄마 코에 닿을 정도로 키도 많이 컸고, 수영과 야구를 즐기는 스포츠맨이 되었다. 아, 그리고 어떤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작년에는 그림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에 감사하고, 느리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우리 거북이 헬리혜성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