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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ug 21. 2021

부모도 내가 골랐으면 좋겠다.

애들도 나를 골라줬을까.


1. 


유튜브에 '권감각'이라는 언니가 운영하는 채널이 있는데, 꽤 재밌다. 진짜 빨래를 개면서 촬영을 하는데, 말빨이 보통이 아님. 


오늘 어떻게 하다가 충격적(!)인 사연을 들었는데...


2. 


엄마, 아빠가 너무너무 싸우던 집안의 외동딸이었던 사람이 보낸 이야기다. 


나이가 어릴 때 엄마랑 아빠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 진짜 천둥번개도 그런 천둥번개가 없다.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아마 이 사연자도 그랬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나 때문에 싸우는 건가 했다가, 왜 저렇게 돈돈 거리나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차라리 이혼을 하지 했다가도 그럼 나는 어떻게 하나 눈물도 흘리고.... 


부부싸움 이거 애들한테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어린 나이에 가장 커다란 인생의 짐이 된다. 


오죽했으면 이 사연자는 나중에 내가 커서 돈을 벌어서 엄마 아빠한테 잘해드리면 이 모든 문제는 끝날 것이다, 가정의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까지 생각을 하기까지 했을까... ㅠㅠ (애들이 만들어내는 가정의 평화, 그런 거 없어~!)


3. 


우리 엄마, 아빠도 허구헌날 싸웠는데, 주제도 다양했다. 


아빠가 회사 마치고 스페인어 학원을 다녔는데 그것 때문에 진짜 대가리 터지게들 싸우시기도 했고, 제일 큰 문제는 백수 시아버지인 우리 할아버지. 그리고 고모들 셋 다 교육을 시켰다고 지금도 되풀이를 하는데, 그렇게 시댁에 돈을 뜯기는 것이 무척 억울했던 모양이다. 맞다. 억울하다. 나도 지금 시댁에 돈 술술 빠져나가는 것 짜증나지만, 그럼 내가 좀 더 벌지... 이 생각으로 버티고 있으니까. ㅋㅋ


그런데, 세상에 중3 겨울방학 무렵! 


우리 아빠가 다른 여자분을 사랑(불륜이라는 단어는 여기에 쓰고 싶지 않다. 우리 아빠는 정말 그 여자분을 사랑했던 것을 알기에...)하기 시작했는데, 와우! 그 분과 '예술의 전당'에 갔다가 어버이 성가대 반주하던 언니한테 들켰다. 


4. 


당시 나도 반주를 하고 있던 터라 성모승천 대축일이었나, 큰 미사 반주 같이 하면서 언니한테 그 얘기를 들었는데, 중3 짜리가 뭘 안다고 언니네 엄마한테 제발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런데, 이미 성가대에 다 퍼지고, 우리 엄마 실성. 


그 뒤로 나의 고초가 시작이 되었다. 


엄마 안방에서 울며 뒹구는 것 일으켜 세우고 신세한탄 반나절 듣고. 


아빠 술 먹고 들어와서 피아노 치면서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어무이~~~~!' 절규하면서 괴로워하는 것 옆에서 들어드리고. 


(우리 아빠 아주 어려서 어무이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인생에 칼바람이 들이닥치기만 하면 미친듯이 어무이를 부르는 습관이 있다. 옆에서 지켜보기 되게 민망하고 재수없다. 마음이 괴로운데 왜 피아노를 치고 난리?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 버릇 어디 가려나 싶고...) 


이 둘 사이를 왔다갔다 거리면서 엄마가 저렇게 아빠를 사랑했었나? 저거 지금 연극이지? 전략상 저러는 거지? 하고 생각은 했지만 말은 못 했다. 


그래서 지금도 깨지지 않는 내 삶의 법칙이 바로 이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온전히 모르지만, 자식은 부모의 전부를 꿰뚫어본다>


5. 


당시 아빠는 나를 캐나다로 보내려고 준비하고 계셨다. 나는 속으로 이러다 재수 없게 못 가는 거 아니야? 전전긍긍했지만, 고맙게도 아빠는 대사관에 가서 비자 받는 것이니 뭐니 이것만은 어무이~ 안 부르고 묵묵히 준비해주셨다. 


그때부터 엄마의 방해공작과 망상은 더 심해지고.  


지금 너 보내고, 그 여자랑 같이 둘이서만 캐나다로 도망가려고 하는 거라고. 너 밖에 없다, 아빠 들어앉힐 길은. 외국은 한국에서 1등하는 애들만 가는 거다. 너는 안 된다. 니 실력으로 외국은 무슨... 등등... 평생 주워 담아도 부족할 망발을 그때 다 들었었다. ㅎㅎㅎ 


엄마는 지금 딸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아빠한테 버림받기 일보직전인데. 


6. 


동생은 과기고에 들어가는 것이 당시 소원이었고, 매일 과기고 기숙사에서 공부하는 꿈을 꾸던 친구여서 일단 캐나다행을 보류했다. 동생의 결정에 우리 엄마는 두고두고 평생 아들에게 고마워했고, 역시 아들만 내 편이라고 (유치하게!) 두둔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생이 과기고 들어가고 싶어서 그런 거라는 것은 차마 엄마한테 이야기는 못했다. 그러면 정말 이 여자 무너질 것 같아서... 


7. 


대신 온갖 비난의 화살은 나에게로 쏟아졌다. 


저 못된 년이 엄마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외국에 가려고 한다며 이모들은 물론, 온 성가대 아주머니들한테 울며 불며 이야기하는 바람에 정말, 당시에 성당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내 인사도 안 받고 째려보고 난리가 났었다. (아무래도 이 사건이 내가 다른 사람의 이목에 마음가짐이 크게 좌지우지되는 성향을 결정짓는 데에 큰 역할을 한 듯) 


7. 


아무리 엄마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고초를 겪는다고 해도 딸을 그렇게 동네방네 썅년으로 몰아서 떠들고 다니는 것은 지금도 이해불가에 용서불가다. 


8. 


다시 사연자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저렇게 싸우던 엄마, 아빠가 어느 날 동생을 낳으셨단다. (응? 이건 무슨 전개? 그렇게 싸우면서?) 무려 18살이나 차이나는 동생. 


그런데 지금 이 동생을 사연자가 거의 다 키우다시피 하고 있으며, 엄마가 늘 이러신다는 것이다. 


- 엄마가 없으면, 얘 엄마는 너니까 너가 동생 잘 챙겨라. 


내가 낳은 아이도 아니고, 나랑 상의 1도 안해놓고 낳아 놓고는 그런 게 어딨냐고 항의하면 그때부터 싸가지 없는 년, 못된 년 등등 비난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9. 


우리 엄마 같이 직접적으로 칼을 꽂는 방식은 아니지만, 저 엄마도 지금 사연자의 인생을 아주 칼로 북북 그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이에 권감각은 절대 엄마, 아빠의 무책임한 행태에 동조하지 말고 도울 생각을 말아라. 아등바등 알바하고 돈 벌어서 엄마 다 갖다 주지 말고. 그렇다고 가족들과 등 돌리라는 말은 아니어도 자기 인생 자기가 영리하게 챙겨야 한다고 조언.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아마 그거 잘 안 될 거다, 왜냐하면 이것이 '장녀들의 종특'이라고까지 예측해준다. 


10. 


좋은 엄마, 좋은 아빠. 


참 되기 어렵고, 힘들다. 


아이하고 나하고 따로 떼어서 적절한 거리두기가 쉽지 않지. 


반대로 나는 너무 아이들과 거리두기 4단계가 평생 발령된 것은 아닌가 싶어 가끔 반성한다. '자유'를 준답시고, 너무 내 방식대로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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