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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먼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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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촉촉 Jan 11. 2021

쓸모 없는 눈사람

먼-데이 에세이 2

먼- 데이 에세이란?

'먼'데이마다 애'먼' 사람들에게 글을 뿌리는, '먼'가 할 말 많은 사람의 글


지난 수요일 정말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역대급 퇴근이었다. 하얀 눈을 보며 감상에 젖기보다 차가 미끄러질까 브레이크를 밟는 발과 핸들을 잡는 손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평소보다 2,3배는 걸려서 집에 오자마자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는 정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풍경이었다. 바깥을 보며 생각했다.

"ㅅㅂ 출근 어쩌지."

눈이 쌓인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빙판길과 출퇴근 대란이 걱정된다. 이게 나이 탓일까? 아니, 직장인이기 때문에?


그러나 세상을 감싸 안듯 쌓인 눈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촉촉해졌다. 사람들은 유머와 감성을 잃지 않고 쪼물딱 쪼물딱 귀엽고 멋있는 눈사람을 만들었다. 이 곳 저곳 눈오리 공장이 가동되었고, 오리 말고도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눈사람들이 생겨났다. SNS의 순기능이란 건 아마 이렇게 다양한 재미를 따뜻한 방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겠지.


그러나 여러 눈사람 이야기 중에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글도 있었다.

https://twitter.com/couple_gotohell/status/1347074662748938243


이 글이 화제가 되고, 가수 이적은 인스타를 통해 이런 짧은 글을 쓰기도 하였다.



이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고 눈사람 폭행에 대한 게시물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분명 일부 사람들의 폭력성이 심각하고, 그걸 과시하고 부추기는 사회에 문제가 있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 눈사람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감성에 공감하지 못하고 심지어 하찮게 여겨서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니, 눈사람 좀 부시는 게 뭐 그리 죄가 되나?  그까짓 거 돈도 안 되는 데 오글거리는 거..
 이런 장난 좀 부셨다고 거참 피곤하게 구네"
그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반응 아닐까? 만약 이 눈사람이 어떤 이의 재산, 상품이었거나 살아있는 생물이었다면 아무래도 좀 더 많은 생각 끝에 폭력을 행하고 죄책감을 느꼈겠지. 아니, 죄책감이라는 순수한 감정보다 자신이 고발되고 피해받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효율적이지 않다면, 경제적이지 않다면 내게 피해만 가지 않는다면
상관없고, 필요 없는 것일까?


일상에서도 효율적이거나 수익적이지 않으면 쓸모없는 행동이 되어버린다. 예의가 많으면 씹선비가 되고, 시를 읽거나, 문학고전을 읽고 감상을 쓰는 것이 지적 허영이 된다. 개인의 감성을 길게 적으면 오글거리는 글이 되어 조롱당한다. 내집 마련과 주식 대박같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는 꿈은 인정받지만, 거대한 이상을 추구하는 꿈은 철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물론 이런 소리를 하는 나조차도 평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받아드리지 못하는 고집쟁이고, 괜히 쓸데 없는 일을 해서 시간을 낭비했단 생각이 들면 거부감이 심하다. 그러나 가끔은 딴 짓과 쓸모없음을 관용할 수 있고, 거기서 행복감과 여유를 찾는 삶도 필요하지 않을까? 

나도 다음에는 눈이 오면 조그만 눈사람 하나를 만들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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