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덕텐트 Jan 25. 2021

열 달 맺힌 둘레의 흔적



-

당신에겐 열 달간의 아픔을 담았던 그 흔적이 그득하고 선명하게 둘레에 남아있다.     


얼어붙어 있던 차가운 나와 들끓게 분노했던 나를 미지근하게, 무던할 수 있도록 당신은 오랜 시간 나를 품었다.

넘치는 나를 품기도, 부글부글 쏘아 올리는 나를 감내하기도 했다. 슬픔을 담거나 기쁨을 담기도, 냄새나고 향기로운 나날들도, 긴긴 순간을 나를 품으며 굳건히 있었다.     


세월을 담는다는 것은 몸을 쓰라리도록 닳게 만드는 희생이다     


나는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담겨있는 숱한 세월에 그저 피를 갈고 날을 세워

쏟아지고 깨져버리는 날만을 고대했다.     


나의 패륜은     


액체로서의 당신과 단절되고 

자유롭게 날아가는

기화의 망상을 꾸었다.     


그러다 내, 드디어

내가

떠나게 되던 날, 떠날 수 있게 되어 

내 모든 것을 모조리 챙긴 뒤

그 품을 벗어나던 마침내의 날     


당신의 감정 없는 표정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지나가는 자들을 바라보며

체념도 아닌 망자의 시선으로

뚝뚝

허공에서 눈물을 주워 담았다.     


당신에겐 나를 담았던 흉터들이 둘레를 이루며 남아있었다.

열 번째 달이 흐르고 지나가던 날에

나는 당신의 품에서 사망했다.

당신은 나를 보며 울부짖었던 것 같다     


나는 내용물에서 꺼내어져

추억들을 기억에서 지우고     


점점

점점 사라져 갔다     


당신에게 남아있던 흉터들은

수세미에 의해 박박

지워져 가곤 했다     


둘레는 닳아갔다













컵으로 글을 썼다.


주저리주저리 항상 글을 쓰고 싶은데 뭘 쓸지 모르겠는 요즘이었기에

한참을 고민하다 친구에게 그냥 아무 단어나 뱉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래서 나온 '컵'





컵으로 무얼 쓸까 한참을 고민했다.




카페에 나와 커피를 시켰고


기나긴 고민을 하다보니 커피를 다 마시게 되었다.





컵에 더이상 액체는 남아있지 않았지만

커피가 있던 커피의 흔적들이 컵 층층마다 둘레에 쌓여있었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생각이 났다.





제왕절개를 하고나면

배에는 커다란 흉터가 생긴다.



배를 가르고 나온 아기가

숱한 성인이 될 때까지


끓어오르고, 차갑고, 사고뭉치인

미완성의 아이를 



미온수로 덤덤한 '사람'이 될 수 있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어 아이를 담아냈던 어머니와

컵의 모습은 닮아 있었다.








그러나 




컵에 담긴 무언가는 파렴치스럽게도




컵으로부터의 탈출을 갈망한다.

그것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그 안에 있는 존재는 

컵 밖 세상이 자유의 세상이라 착각하고


마침내 죽는다.





그것이 우리의 패륜스러운


슬픈 운명


커피가 담겼던 컵과 우리의 삶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던


이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은 소중했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