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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Sep 24. 2018

영어 이름, 써야 할까?

클라우디아, 내 이름의 주인

    학교만 가면 친구들은 네 이름을 다시 말해보라고 계속 졸랐다.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궁극의 잰말놀이(tongue twister)라도 찾은 양. 자기들끼리 내기라도 했는지, 쉬는 시간에 우르르 몰려와서 우리 중 너의 이름을 가장 잘 발음한 사람을 알려 달라고 했다. 돌아가면서 한 명씩 무지하게 애를 썼다. 도긴개긴이었지만.


    “내가 맞았다! 쓰어햔!”

    승자를 골라 친구들 사이의 희비를 가르는 건 그나마 재미나 있었지, 출석 불리는 건 늘 지독한 수고였다. 나의 차례가 되면 선생님들은 잠시 망설였다. 곧 기이한 소리로 변장한 내 이름들 중 어느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써휸?”

    "소, 혀어언."

    "쎀, 휴오오욘"

    “그렇게 부르셔도 돼요”

    “아니? 난 너의 이름을 맞게 불러주고 싶어. 그러니 날 고쳐줘.”

     어른들은 쓸데없이 단호할 때가 있어서 난감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올리비아네 아줌마가 내 이름의 뜻풀이를 물으시길래. 그러니까, 이게 우리말 단어는 아니고, 중국의 글자를 사용한 건데, 원래 한국인들은 이름을 그렇게 많이 짓고, 음의 절반은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냥 들어간 부분이고 뒷부분은 여러 뜻이 있긴 한데 그중에서 엄마가 마음에 들어하는 뜻은 ‘현명한’이라는 설명을 하니, 올리비아 아줌마는 어떤 놀라움을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급격히 밝아진 표정으로 네 엄마가 아주 멋진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막 기뻐하셨다.


    아, 아니. 작명소에서 지어준 이름이라고 했다. 소현. 무려 돈 주고 산 이름이라고.


    올리비아 아줌마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드냐고 물었다.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아, 아니. 그러니까 정말로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내 이름이 멀쩡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해외 생활의 작은 불편함을 두고 이름을 통째로 원망할 순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진심은, 내심 ‘올리비아’ 같은 위화감 없는 이름이 부러웠다는 것이다. 부르기에 앞서 모두를 주춤케 하는 내 이름, 소리가 어딘가 늘 과한 나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별수 없이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해버렸다.


    아줌마는 남들과 다르다는 게 얼마나 싫은 건지 안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올리비아 아줌마는 나에게 비밀을 알려주겠다며 사실 자신이 오스트리아인이 아니라고 했다. 올리비아네 아저씨는 오스트리아에서 큰 카지노 사업을 하는 부자였고, 아줌마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아주 바쁘신 분이라 집에는 자주 못 오신다고 들었다. 올리비아 아줌마는 이웃나라 어느 시골에서 자랐는데, 그래서 생김새도, 말투도, 오스트리아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기론 미모만큼은 아주 출중했다. 그럼에도 오스트리아에선, 모두가 한눈에 이방인임부터 알아본다고.


    올리비아 아줌마는 공감을 건네는데에서 멈출 분이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더니 ‘클라우디아’라는 이름은 대신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그 소리가 예쁘고, 좋았다. 아줌마는 열성적인 체질이었다. 그리고 학내 발이 아주 넓었다. 내가 보는 아줌마의 모습은 늘, 선생님들과 수다, 다른 학부모들과 수다, 올리비아의 친구들과 수다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온 학교에 나를 ‘클라우디아’로 소개하셨다. "아 참, 소현이의 새 이름에 대해서 들었냐며"로 시작하는 아줌마의 수다력은 그 사실을 빠르게 모두가 알게 했다.



    그 후 얼마쯤 지나 엄마가 학교에 왔다. 체육 선생님은 “클라우디아 어머님이시냐고” 인사하셨는데 엄마는 당신의 딸이 클라우디아임을 아직 알지 못하셨기 때문에 엉뚱하게도 속으로 은근한 미소를 지으셨다. 내가 좀 외국인 같아 보이나 싶으셨다고. 그런데 조금 후에 올리비아 엄마가 “클라우디아!”라고 부르니 저 멀리서 내 딸이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네 이름이 클라우디아냐”라고 엄마가 나에게 물었을 때, 올리비아 아줌마가 대답했다. 소현이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워서 모두가 잘못 부른다고 들었다고. 게다가 너무 튀는 이름이라 소현이가 불편해했다고. 그래서 영어 이름을 하나 지었다고. 아주 간단하게 해결하지 않았느냐고. C로 시작하는 이름은 구름 같아서 어딘가 모르게 슬프니, 더 굳센 느낌의 K를 썼다고 하셨다. 그렇게 올리비아 아줌마는 새 이름에 행복을 빌어주셨다.


    이제 엄마까지 알게 되었으니 완전 공식적. Klaudia. 나의 영어 이름이었다.



     이름을 얻고 시간이 지나 3학년이 되었다.  , 학급에  친구가 전학 왔다. 이름은 C 시작하는 클라우디아, 폴란드에서  소녀였다. 클라우디아는 오밀조밀 예쁘게도 생겼었다. 날씬하고, 성숙하고, 키가 엄청나게 컸다. 그야말로 미녀였다. 그녀를  모두가 눈이 커질 정도로. 발육이 빠르니 엄마와 옷을 함께 입는다고 했다. 어른 옷을 입고는 아동복과는 차원이 다른 세련됨을 매일 뽐냈다. 당연히, 인기도 많았다.


    그녀는 모두가 상상했던 ‘클라우디아’였다. 클라우디아라는 예쁜 이름과 딱 어울리는 친구. 몇 번의 소개를 거쳐서 겨우겨우 내 이름으로 자리 잡았던 ‘클라우디아’는 모두에게 단번에 그녀의 이름으로 접수되었다.


    한바탕 인지부조화를 겪던 친구들은 나를 다시 소현이라고 불렀다. 나의 한국 이름에 도전하는 것은 다시 작은 오락거리가 되었다. 선생님들은 새 클라우디아와 헷갈리지 않기 위해 출석부에 명시된 나의 본명을 사용하셨다. 한국어 이름이 아무리 부르기 어려웠어도 같은 이름이 두 명 있는 것보단 불편하지 않으니까.


    우린 둘 다 클라우디아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K와 C의 차이가 있었지만, 나에게 씩씩한 기운을 주기 위해 올리비아 아줌마가 심어둔 한 글자는 제구실을 전혀 못했다. 클라우디아는 나의 동명이인이자, 신스틸러, 내 하루의 주연이자, 내 이름의 주인이었다.


    클라우디아는 태어날 때부터 클라우디아였을테니, 먼저 쓴 놈이 임자라는 논리도 나를 당당하게 해주지 못했다. '같은 이름 다른 느낌'이라고나 해야할까. 클라우디아로 산다는 건 파티에서 나와 같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본 것 같이 부끄러웠다. 하하. 이제는 이 이름이 부끄러웠다. 남들과 달라서 싫다가, 이제는 누군가를 닮아서 싫다니.



    이름 콤플렉스를 가진 여자 ‘김삼순’의 이야기를 아시는가. 자신의 이름을 부끄러워하는 한 여자가 ‘김희진’이라고 불러 달라는 조건을 내걸고 들어간 일터에서 사장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어릴 적 동경하던 예쁜 피아노 선생님의 이름이 ‘김희진’이었던 이후로 삼순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의 보통명사는 오직 ‘희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곧 이 남자의 옛 연인 ‘희진’이 돌아온다. 선망의 이름일 뿐, ‘희진’에 편입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나를 부르는 한국식 이름이 들릴 때마다 나의 이방인 정체성을 확인하는 듯했다. 그런데 예쁜 영어 이름을 갖게 되니, 나의 ‘클라우디아’ 아닌 모습에 부딪혔다.


    ‘내가 아닌 타인만을 상기시키는 이름을 두어서 무엇하나!’ 김삼순이 개명 신청서를 찢어버릴 때의 마음은 그런  아니었을까. 겨우 7 , 그리고 30 김삼순이 그렇게 통한다. 내가 아닌  누구로도 불릴 필요가 없다는 ‘고유명사들의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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