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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Jun 17. 2018

솔직히 걔들 돈 벌려고 온 거 아니야?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코리안 드림

    파키스탄 외국어 대학(NUML, National University of Modern Languages)에서 두 학기 동안 강의한 적이 있었다. 한국어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능력시험(TOPIK)에 대비 수업이었다. 수강생들은 전원 한국에 취업하고 싶은 학생들이었다. 근로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시험성적을 잘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들 무척 열심히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강의실로 들어섰다. 남학생들이 그야말로 한가득 있었다. 공기는 후끈후끈. 책상들은 앞뒤 양옆 간격 없이 촘촘히 붙어있었다.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은 학생들의 몸은 내내 책상과 눌러있었다. 옆사람과 살갗을 맞댄 채, 양 끝의 학생은 어깨가 벽에 맞닿은 채 모두 잠잠히 공부 중이었다.


    눈앞의 수많은 학생들 중 오직 한 두 명에게만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들었다. 진정 바늘귀만큼 좁은 문이었다. 그렇게 작은 확률이라면 대체 왜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몇 년만 벌어도 본국에 돌아가서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짐작했다. 하여 내게 강의실의 학업열은 그저 일확천금을 노리기 위한 치열한 경쟁처럼 보였다. 모두가 한국어 시험을 잘 봐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으려고 있는 사람들이겠거니, 했다. 그러니까 나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준비를 시켜주는 것이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빨리빨리 진도나 빼는 그런 거.




    그런데 참 이상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국 문화에 관해 수업 했는데, 유독 그 시간에만 학생들이 집중하지 못했다. 문화도 엄연한 시험 범위인데, 학생들은 자꾸만 수업과 관련 없는 질문들을 해댔다. 예를 들면 교통법을 배우다가 “한국에는 여자 경찰도 있느냐”며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식이었다. 이슬람 문화를 갓 배워가고 있었던 나는 ‘혹시 여자인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대꾸하지 않았다.  


    비슷한 일은 매주 이어졌다. 식사예절을 수업하던 중이었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한국에서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돈을 안내면 어떻게 되냐”라고 물었다. 황당했다. 이 학생이 진지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의 생각을 하다가 결국 “그야 음식점 사장 마음이지 내가 어떻게 알겠냐”며, “아마 경찰을 부르지 않을까 싶다”라고 조금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상황을 넘기기 위해 대충 내뱉은 대답이었지만, 강의실 분위기는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경찰이 오면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경찰서에 가면 어떻게 되느냐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세례를 받기 시작했다. 나는 얼떨결에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지 않겠느냐”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다시 수업을 재개하려고 했지만 학생들은 집중해 주지 않았다. 대신 삼삼오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서로에게 어떤 행동을 떠미는 것 같았다. 그들 사이의 토론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이내 그중 가장 영어를 잘하는 듯한 학생이 나에게 한 이야기를 했다.

 



    파키스탄에서는 가장 좋은 호텔에 가서 마음껏 비싼 밥을 먹고 돈을 안내면 경찰에게 신고를 당하겠지만, 경찰에게 20루피(약 200원)를 주면 풀려난다는 것이었다. 20루피면 호텔 식사를 마음껏 할 수 있다니, 웃기는 일이 아니냐며 웃었다. 강의실 전체에는 동시다발적인 공감의 끄덕거림들이 일었다. 초조하게 나의 반응을 살피던 학생들은 내가 이해한 것을 보자 얼굴이 환해졌다. 내가 빙긋 미소를 짓자, 모두 따라 웃었다.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그 반짝거리는 눈빛에서, 그동안의 내 생각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반두비>라는 영화 속 방글라데시인 카림이 한국인 친구에게 듣는 대사가 있다.

너 여기 솔직히 왜 왔냐? 돈 벌려고 온 거 아냐? 부자 되겠다고 온 거 아니냐고?


    아니다. 한낱 돈벌이 욕심 때문에 이 길을 택한 것이 아니다, 그 눈이 말해주었다.


    한국영화(<방가방가>, <완득이>..)에 종종 등장하지 않는가, 불법체류를 한다는 사실과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노자들을 바보 취급하며, 약점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한국인들. 나는 이런 영화들이 한국인들의 부조리함만을 드러낸다고 생각했었다.


    아니다. 바보여서, 혹은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 사기를 당하는 것이 아니다. '내 나라야, 사기도 많고 부당한 점도 많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다를 것'이라는 꿈을 품고 온 사람들이라 그렇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간다는 것이 그들에겐 그 자체로 ‘꿈’이었다. 꿈을 발견하는 곳은 삶에서 만족이 부재하는 곳, 그 자리를 채우는 건 한국에서의 삶의 방식과 문화의 차이를 듣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바랐던 건 시험에서 고를 수 있는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였다. 학생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려 나가기를, 그리고 더 나아질 미래를 한국인 선생님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해보기를 원하고 있었다. 꿈을 가진 모든 자가 그렇듯, 이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상상’이 불합리한 지금을 살게 하는 힘이었다.  


    수업 중 학생들이 특히 즐거워할 때가 있었다. 역할극을 할 때였다. 첫 출근, 회식자리, 명절과 같은 상황을 가정하고 한국인을 만나는 자리에서의 예절을 연습할 때, 학생들은 가장 행복해했다. 서로에게 어찌나 열심히도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지, 예의 바르게도 말하는지. 그저 놀이일 뿐인데, 결코 그냥 놀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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