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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Mar 14. 2019

아랍 사람들은 왜 수다스러운거야?

사막에서 살아남기: TMI편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여전히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있으므로. 함께 카페에서 마실 음료를 고르는데, a가 오늘 화장실을 못 갔기 때문에 요거트 메뉴를 마셔야겠다고 말했다. b는 곧장 걱정스런 표정으로 가방 앞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유산균을 하나 꺼내 a에게 건넸다. 자신은 이미 ‘갔기’ 때문에 괜찮단다. c는 이런 걸 갖고 다니느냐며 신기해했고, 효능이 어떠냐고 했다. a는 유산균을 입에 털어 넣다가 대뜸 나에게도 ‘갔냐고’ 물어왔다. 나는 ‘아직’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c는 손끝을 살짝 입술에 가져다 대고 혹시 변비냐며, 바나나라도 먹겠냐며 커다란 눈망울을 빛내며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비상식량을 권했다.




TMI. 항간의 유행어다. ‘Too much information’의 앞글자를 딴 줄임말. 즉 필요하지도 않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구태여 알게 돼서 언짢은 류의 정보를 일컫는다. 카페로 돌아가서 용법을 살펴보자. 나의 친구들은 음료를 마시며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근황을 나눴다. b는 ‘이 나이에’ 1교시 수업을 듣느라 아주 고역을 치르고 있다고 했다. a와 c는 그래도 곧 아침잠이 줄 나이가 아니냐는 위로(?)를 건넸다. b는 그 수업에 한 학우가 있는데, 매일 9시만 되면 비데 물티슈 한 팩을, 그것도 두둑한 패밀리 사이즈를 챙겨서 정확히 20분간 자리를 비운다고 했다. 다녀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고 했다. 그랬더니 a와 c는 TMI라며 아유를 보냈다. 이렇게 타인에 대한 사적인 정보를 물리치는 주문으로 주로 쓰인다.


최근 한 방송 연예인은 카카오톡의 생일 정보가 TMI라고 했다. 이 앱이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친구’들이 저장된 목록에서 오늘 생일인 자들을 추려 최상단에 올려주는 것에 대한 불편감을 토로한 것이다. 정말 문제인 게, 거기서 전 남친이 등장할 수도 있다. 잊고 살았던 그놈의 생일을 알림 당한 채 별안간의 고요한 당혹감을 맛보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TMI는 뺑소니 차처럼 날 치고 달아난다. 늘 수고하시는 택배 아저씨도 생신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이 말을 어떻게 전할 방법이 없다. 하여 언짢아지는 것이다. 심하거나 괜하거나. TMI다.


인간은 늘 관심사에 대한 되도록 많은 정보를 좇으며 살아왔다. 가장 친밀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유심히 들으면 TMI라고 지적할 만한 이야기들 뿐이다. 친해진다는 건, 점점 더 보잘것없는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는 과정이 아닌가. 카페에서 오늘 쾌변 했는지 묻는 사이가 돼가는 과정이 아닌가. 타인의 은밀하고 사적인 이야기에 공감을 할 때도, 못할 때도,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간다. 어느 날 비데 학생이 화장실을 가지 않으면, b는 찡긋하며 앞주머니의 유산균을 하나 건넬지도 모른다.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재미있는 법인 줄 알았거늘, 갑자기 과도한 정보에 싫증이라도 난걸까. 너무 많이는 말하지 마라! 한국사회는 TMI를 스팸메일 같은 21세기의 악성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 같다. 매일매일 친하지도 않은 사람의 TMI에 감응하는 어느 민족과 참 다르다. 일부러가 아니다. 우리와 같은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데도 중동-아랍 사회는 과잉 정보에 대해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저 과일을 사는데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느냐, 나이는 몇이냐, 혼인은 했느냐, 지내기에 불편한 점은 없느냐 등등의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인 질문이 결코 무례하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여기서 TMI는 문화이고 삶의 방식이다. 물론 ‘TMI’ 대신 ‘칼람’이라는 단어가 있다. 칼람(kalām)은 아랍어로 ‘말, 수다’를 의미한다. 칼람은, 아니 TMI는 아랍 문화에서 대단히 중요한 정서다.


칼람이란, 단순히 ‘대화’가 아니다. 칼람은 주로 사적인 폭로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런 TMI의 향연을 예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진행된다.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정보, 그런 가십으로 통칭되는 류의 정보를 적극 수용한다. 그렇게 아랍인들은 나의 이야기와 너의 이야기를 나누며 돈독한 유대감을 형성해간다.


파키스탄이든, 튀니지든 거리의 풍경은 일관된다. 노상 카페에 삼삼오오 앉아서 종일 수다를 떠는 사람들. 그들은 초면인 사람과도 밤을 새워 수다 떨기 일쑤다. 아랍인들의 인사를 보노라면 인사말과 안부만 십 분씩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안부를 묻고, 또 묻고, 다시 묻는다. 정말. 이 민족이 괜히 천일야화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인적 드문 사막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몇 주 전, 사하라를 방문했다. 현지 동행인 z도 함께했다. 그는 사륜구동 투어의 기사님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봇물 터트리듯 수다를 쏟아냈는데, 그 시간이 세 시간에 이른다. 아랍에 살다 보면 수다가 여자의 고유 버릇이라는 건 근거가 없는 소리인 걸 알게 된다. 창밖으로는 푸른 창천과 바람이 빚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래 곡선이 펼쳐지고 있는데, 둘은 숨도 쉬지 않고 서로에게 말을 해대고 있었다. (괘..괜..찮아... 내 고막은 튼튼해...) 무슨 얘기를 나누느냐고 물었더니 z는 자기 사촌이 결혼한다는 짧은 대답을 해주었다. 한 시간 후에 다시 물어보니, 이번엔 어제 묵은 호텔방에 대해 얘기해주고 있었다고. 오늘 처음 본 사이에? TMI다.




영혼의 단짝이라도 되었을 것 같던 두 사람은 사막 투어가 끝나자 미래 기약도 없이 번호 교환도 없이 쿨하게 헤어졌다. 언제 끓었냐는 듯이 식어버린 양은냄비 토크에 오고 간 TMI가 무색했다. 우린 곧 사막 박물관에 도착했다. 내부에는 사막의 유물들과 옛날의 삶이 재연된 전시들이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여러 벽 가득히 전시된 무기의 양이었다. 도슨트가 설명하기를, 사막에는 전쟁이 잦았다고 한다. 한정된 자원과 그를 차지하기 위한 유목 부족 간의 경쟁 때문에.


다음 방에는 사막의 마스코트인 낙타들이 있었다. 털 색깔에 따라 식용 낙타, 운송용 낙타, 경주용 낙타, 그리고 군용 낙타... 군용? 군용 낙타라니. 낙타 타고 달려가서 적을 공격했다는 것이었다. 그 위에서 활도 쏘고 총도 쏘고. 조금은 생경한 그림이었지만, 사막에선 낙타가 말 대용이니까. 게다가 낙타가 그리 포악한 동물인 줄 누가 알았던가. 싸움을 붙이면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난다고 했다. (너네... 그렇게 순둥하게 생겨놓고...)


도슨트가 갑자기 나무 숟가락을 하나 들어 보여주었다. 누군가가 텐트 집을 방문하면, 아버지가 나와서 손님과 대화를 하는데, 음식이 필요할 때마다 이 숟가락으로 기둥을 친다고 했다. 탁탁 소리가 나면 안쪽으로 숨은 처와 자식들은 안전하다는 의미로 듣고, 경계를 풀어 천막 밑으로 쑥 음식을 밀어서 건넸다. 왠지 예나 지금이나 아랍인들은 한번 대화가 시작되면 웬만해선 식사를 챙겨야 할 정도로 길어진다는 뜻으로 들렸다.


모포 하나 두르고 유유히 반려낙타와 걷다가 황혼 즈음 오아시스에서 물통을 채우는 상상을 했는데, 사막의 삶은 의외로 전쟁도 많고, 이곳 수다의 역사는 무척이나 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조금 놀라는 중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피의 역사’ 때문에, ‘칼람’이 중요했다. 사막이라는 거칠고 외로운 환경에서는 대화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고 도슨트는 말했다. 상대에게 빠르게 호의 내지는 선의를 보여야 무력 충돌을 피할 수 있고, 그러려면 대화, 이야기, 소통만큼 우선 쉬운 것은 없으니까. TMI는 적대감을 완화하니까. 오랜 사막 생활을 통해 번영한 아랍 민족에게 ‘칼람’이란, 무조건적인 호의의 열매가 아닌, 뿌리 깊은 경계심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고조된 긴장 속에서 열리는 남북대화가 떠오른다. 대화의 장으로 나온다는 것은, 되도록 치고받고 싶지 않다는 의사의 표명이다. 유사시 ‘TMI’는 생존 수단이다. 그래서일까, 코란은 “그대가 인사를 받을 때 더 나은 말로 하거나, 아니면 그와 동등한 말로 답하라” 가르친다. 침묵하면 오해가 생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상대는 무기를 들지도 모른다. 우리 동행인 z가 오늘 처음 본 사막 투어 가이드에게 사촌이 결혼한다는 얘기를 하며 폭풍 TMI를 시전한 이유가 마침내 밝혀졌다. 그것은 충돌을 피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였다. 그렇게 나에 대한 정보를 적극 나눔으로써 싸울 의중이 없음을 어필했던 것이다. 모름지기 사막에선 말이 많아야 한다.





우리 가운데도 사막이 생겨날 때가 있다. 모두가 삭막하고 메마른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않은가. 회의실의 냉랭한 분위기는 사막의 밤공기 같다. 짜증섞인 한숨이 들려온다. 상사는 유독 나만 괴롭히는 것 같고, 저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는 속으로 전쟁이라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선, TMI를 날려보는 게 어떨까.


"아, 오늘은 전 남친 생일이라고 카톡 알림이 왔네요".


운이 좋으면 따듯한 말을 건네받을 수도 있다. TMI 하나에, 진한 눈빛이 오고 갈 수도 있다.


혹 상대가 얼굴을 찌푸리고 어쩌라는거냐 ‘TMI’를 외치면, 우리 사이 유대는 견고하구나,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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