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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Aug 16. 2018

외국인들도 때를 밀까?

우리보다 먼저 밀었대...

"At one point my ajumma shook me to open my eyes and pointed with apparent pride to gray lumps, bigger than rice grains, clinging to my arms. I wondered if they were one of the cutting-edge Korean skin care products I had heard so much about. No, they were clusters of my own dead skin cells.

어느 순간 아줌마는 날 흔들어 깨우면서 내 팔에 달라붙은 쌀알보다 큰 회색 덩어리를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난 그것이 한국의 최첨단 스킨케어 제품인가 싶었지만 그것들은 사실 내 죽은 피부 세포 덩어리들이었다."

뉴욕 타임스 조디 캔터(Jodi Kantor) 특파원의 2014년 2월 8일 기사 중


    엄마는 꼼꼼히 밀어주겠다며 목욕 전 이태리타월을 꺼냈다. 몸을 뜨끈한 물에 불렸으면 때를 밀어야 하는 법. 익숙한 일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이태리타월 아래서 돌돌돌 말려 나온 찌꺼기를 보면 왠지 더럽기도 하고, 그 거무스름한 것을 몸에서 벗겨내어 시원한 게 분명한데, 주변의 친구들은 아무도 때를 미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난 ‘때’를 볼 때마다 그랬다. 내 백인 친구, 흑인 친구도 벅벅 밀면 때가 나올까, 궁금했다. “걔넨 안 미니까 안 나오는가보지”가 엄마의 대답이었다.


    정말 한 번도 밀어본 적이 없을까! 샤워 후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도 마주치는 그 흔한 때를 그냥 둘 수 있다니. 밀어도 끝없이 나오는 녀석들인데, 한 일생의 양을 몸에 얹고 살아도 무방한 건지!


    몇년간의 해외 생활 후 때밀이가 우리만 하는 별난 행동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나는 굳이 수고스럽고 고통스러운 짓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엄마께 선언했다. 그때의 소신을 지켜온 지 15년이다.


    그 사이에 한류가 불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더니 급기야 외국인들은 때까지 밀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문화체험관광 선호도 4위에 찜질방과 때밀이가 선정됐다. 2015년에는 미국의 한 토크쇼에서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의 찜질방 체험기가 공개돼 큰 반응을 일으켰다. (사족: 이 배꼽 빠지는 영상, 안 보신 분 있다면 꼭 보시길 바란다.) 최근에는 할리우드 스타들까지 때밀기를 극찬하고 나섰다. 아기 살갗 피부가 된다나 뭐라나. 한국인들의 특이 행동인 줄로 알았는데, 우리 '고유문화'라고 생각하니 별안간 때밀기가 자랑스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때밀이’가 나에게 두 번째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튀니지에서였다. 한 스파에서 서비스를 고르던 중 점원에게 ‘하맘’을 추천받았다. ‘바디 스크럽’이라는 영어 설명이 있었다. 우리가 관심을 보이자 직원의 입꼬리에 슬며시 미소가 퍼졌다.


“새로울 거예요. 추천합니다”


    조금 뒤 나는 하맘(hammam)이라 불리우는 습식 사우나에 앉아있었고 곧 이어 관리사가 들어왔다. 그녀는 나에게 엠보싱 처리된 긴 매트에 누우라고 했다. 그리곤 작고 도톰한 천 속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그렇게 15년 묵은 때를 온몸 구석구석에서 밀어줬다. 잊고 살았던 그 맛이었다. 아, 시원했다. 앞면(?)이 끝난 뒤 우린 눈이 마주쳤고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뒤집었다.


    중동 사람들도 때를 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목욕탕에서 몸을 불린 후, 꺼끌꺼끌한 때밀이 장갑으로, 우리와 너무 비슷하게. 때밀이는 한국인들만 즐긴다고 생각했는데.


    '하맘'은 터키를 포함한 튀니지 등 이슬람 국가의 유서 깊은 공중목욕탕이다. 기원은 고대 로마시대의 공중목욕탕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후에 오스만 제국이 터키 땅을 다스리면서 이슬람 문화와 독특하게 결합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전신 노출을 하면 안 되는 율법에 따라 언제나 몸을 수건으로 가리고 있어야 하며 (팬티도 항시 착용해야 하며) 샤워는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 고인 물을 불결하게 생각하여 욕조가 없는 것도 이슬람의 영향. 남아있는 고대 로마의 풍습으로는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깨끗하게 몸을 미는 때수건(‘케세’라고 불린다)이 있다. 중동인들이 2천 년 넘도록 즐겨온 때밀이의 맛, 케세.


    넓고 넓은 세상, 중동 문화와의 교집합을 발견했다. 무려 목욕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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