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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Nov 17. 2018

한국에 인터넷은 있냐고?

    많은 중동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튀니지 사람들은 어딘가 다르다.


    그러니까 중동 사람과 알게 되어 여러가지 잡담을 나누다 보면 무릇 이런 것들을 궁금해한다. 이곳엔 왜 왔냐, 어떤 도시들을 방문해보았느냐, 지내기는 어떠냐, 전통 음식은 먹어보았느냐, 맛이 어땠느냐 등. 두 유 노 박지성? 두 유 노 싸이?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 단골 질문들과 비슷하여 정이 간다.


    내가 반하게 된 것들에 대해 늘어놓는다. 갓 구운 바삭 촉촉한 짜파티, 푸짐하게 채워 넣은 피타빵, 알싸하게 매운 고추맛 젤리 ‘칠리 밀리(Chili Mili)’, 머릿속 상상이 현실이 되는 맞춤형 의복, 과일의 환상적인 가당비(가격 대비 당도), 수크에서 득템한 실크 스카프, 언제나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하는 낯선이들, 입장료가 없기엔 너무 멋진 자연, 우산의 존재를 잊게 하는 매일 화창한 날씨... 양고기... 기절하게 맛있는 그 양고기...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들도 당신의 나라를 꽤 괜찮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가장 즐거워한다.


    튀니지에서 잡아탄 택시에서 기사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 나라 사람들은 몇 개 국어를 하느냐고. '한국어랑 영어를 한다'라고 대답하니 '프랑스어는 못하고?'란다. 그래도 영어는 꽤 한단 듯이 입술을 삐죽거린다. 웬 엉뚱한 상황인가 싶지만 바로 이런 질문들이 튀니지 사람들의 단골이다. 튀니지 사람들은 늘 이렇게 ‘너의 나라’에 대해서 물었다. 어느 수준까지 왔는지 궁금하다는 듯이. 중동보다는, 뭐랄까, 차라리 유럽인들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세상에는 하나의 언어도 평생을 걸쳐 배우는 (나 같은) 사람들이 있고, 유럽인들도 있다. 대단히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몇 개 국어 정도는 술술 구사하는 줄줄이 소시지 같은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들 중 누가 9개 국어를 한다고 해도 너무 많이는 놀라지 않아야 한다.


    한국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나이부터 물어보듯이, 유럽인들은 만나면 서로 공통적으로 하는 언어부터 찾는다. 그런 게 없어도 의사소통이 대충 될거면서 그런다. 스페인 사람과 이탈리아 사람끼리 그렇다고 했다. 각자의 언어를 하며 서로의 말을 알아 듣는단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사는 튀니지인들이 자꾸 이걸 묻는다. 비행기 옆자리 남자, 내가 불어도 노어도 아랍어도 못한다는 말을 듣곤 시무룩해져서 눈알만 굴린다. 그런 건 유럽인들한테나 기본인 것을.


    이 택시 기사님이 다음으로 궁금하셨던 건, “너네 나라에 인터넷은 있는가”였다. 한 네일숍에선 “요즘 새로 나온 건데, 젤 네일이 뭔지 아냐”는 질문을 건넸다. 돌연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몇 년 전 나의 헝가리인 친구가 “너네 나라에 쇼핑몰이 있냐”라고 물어봤던 기억.


    학창 시절, 급식을 먹다가 치즈가 맛있다고 하면 꼭 어느 유럽인은 “이건 진짜 치즈가 아니야”라고 했다. 그리곤 “우리 집에 오면 진짜 치즈를 맛 보여줄게”라고 덧붙였다. 음식 잘만 썰어 먹던 친구에게 “칼질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핀잔을 주는 친구도 꼭 유럽 애였다. 그리곤 직접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 시범을 보였다.


    얼핏 들어선 무시 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인 말들이다. (모르겠다. 조금은 무시해보고 싶었는지도.) 그러나 언젠간 이건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문화 수준을 보존하고 함양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사람들이기도 하니까. 나는 유럽인들끼리 서로 젓가락질을 더 잘하는 걸 뽐내는 모습을(둘 다 엉망이었다), 우리집 간장이 '진짜' 간장이라고 우기는 모습을 본 적 있다.


    근대 유럽이 문화 위계의 가장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역사관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들의 세계사는 유럽 중심으로 전개되며 대게 근대화를 가능케 한 '합리성'을 아시아 같은 비유럽의 '전통성'과 대비시켜 이해한다. 어쩌겠는가. 유럽인들은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심 풍경 속에서 예쁜 사진을 찍고, 식당에서 와인과 페어링한 끝내주는 음식을 먹을 여행을 위해 저축하는 사람으로서, 나 또한 그런 유럽 문화에 대한 환상을 일맥 가진 사람으로서 때론 그런 자부심도 그럭저럭 인정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고대적이고 후진적인 아시아인’이라는 유럽인들의 스테레오타입이 한국에 비해 몇 배는 못 사는 튀니지인들에게서도 작동된다는 건 묘하다. 진정, 머리를 유럽에 둔 민족이 아닐 수 없다.


    "머리는 유럽, 가슴은 아랍, 발은 아프리카에 둔 민족”. 마그레브 지역 사람들을 두고 흔히 하는 말이다.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지리적인 관점에서 튀니지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쓰이는 말이다. 거리에서 히잡 쓴 여인을 찾기가 유럽만큼이나 힘들다는 뜻, 또는 시내의 쇼핑몰에는 비키니와 아래로 힘껏 파인 나시 등이 진열돼있다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뜻 정도로 얼추 소화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튀니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 말의 외연이 조금씩 확장됐다. 유럽과 중동 사이 어디 쯤의 튀니지.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조우, 그 작은 충돌 속에서는 확실히 유럽인의 사고(思考)가 만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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