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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Aug 22. 2018

튀니지에 대체 뭐가 있는데?

올리브 나무... 끝없는 올리브 나무...

            흙이 있다. 까맣고 포슬포슬한 흙. 흙을 덮은 공기는 말갛다. 공기 사이사이에 세로로 나무 몸통이 세워져 있다. 크진 않은 몸통이다. 색이 연해서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일정한 높이부터는 도톰한 나뭇잎이 몸통을 감싼다. 나뭇잎은 꼬챙이에 얹은 솜사탕처럼 빈틈이 없다. 브라운과 옐로가 묘하게 섞인 초록빛의 솜사탕이다. 초록이 끝날 때 하늘이 시작된다. 하늘은 한 화가의 습작이다. 디테일은 없지만 어딘가 숭고한.


            그렇게 4단이다. 밑에서부터 흙색, 공기 색, 올리브색, 그리고 하늘색으로 쌓아 올려진 전경은 튀니지에서 흔하게 보이는 올리브 농장이다.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에 이은 세계 4번째 올리브유 생산국이자 국토면적 대비 올리브 재배면적이 세계에서 가장 넓은 튀니지에선 도시, 해변가, 사막을 제외한 대부분의 땅의 모습이 이렇다. 전국에 재배를 목적으로 심긴 올리브 나무가 약 1억 그루라고 한다. 인구가 약 1천만이라고 하니 한 사람당 100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신 알라가 다른 아랍 국가들에는 석유를, 튀니지에는 올리브를 주었다고 말한다.


            무려 1억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튀니지의 풍경을 가로 사등분한다. 자연이 심은 나무였다면 우거져 있었겠지. 여긴 농장이니만큼 이곳엔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모눈에 심겨있다. 일렬로 한 줄 선 올리브 나무들이 그 끝을 모르게 이어진다. 행을 따라 올리브 나무들이 구비구비 언덕을 넘는다. 여러 개의 평행선을 이뤄 드넓은 초원, 보이지 않는 저 끝을 향한다. 그 질서가 예쁘다.


            이런 대열 갖춘 질서 정연함을 특별히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북한의 열병식이나 중국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선수들이 선보이는 ‘칼군무’는 늘 처음에만 대단하게 느껴졌지, 조금만 오래 보면 철저하게 서로에게 맞춰진 모습 때문인지, 오차 없는 동작을 위해 얼마나 힘들었을지 자꾸 생각하게 돼서 그런지, 오히려 어딘가 거북했다.


               그러나 기하학. 이것이 아랍예술의 정수라고 했던가. 반듯반듯하게 직선의 교차에 자리잡은 무늬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만 볼 수 있는 미학이다. 이곳에서 신의 작업 영역인 ‘자연’을 흉내 내려는 인간의 시도는 불경스럽게 간주된다. 하여 자연의 무엇과도 닮지 않은 예술이 대신 자리잡았다. 한정적이면서도 무한하게 반복되는 만화경과 같은 문양, 아라베스크(Arabesque). 정교하면서도 방대한, 규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아주 넓은 공간도 금방 정돈시키는, 기하학. 그것이 튀니지의 예술이다. 그리고 내가 본 바로는, 비단 건축이나 타일, 생활 소품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눈 앞에 몇십 제곱킬로미터의 올리브 농장이 있다. 그곳에 군집된 올리브 나무들이 정중동의 춤사위를 펼친다. 앞뒤 간격에 맞춰 가지를 벌린 나무들이 반드러운 나뭇잎을 흔든다. 잎에 반사된 햇빛의 반짝거림이 리듬에 맞춘 폭죽처럼 터진다. 한쪽에서 바람이 불면 반대쪽으로 퍼덕이며 뒤집어진다. 바람의 지휘에 맞춘 군무다.


           정돈된 땅이 펼쳐지는 곳, 수천 년 동안 그렇게 땅을 가꿔온 튀니지안들의 터에서 질서의 아름다움을 새로 느낀다. 농업이 예술이 되는 나라, 나는 튀니지를 그렇게 기억할 것 같다.




Look at the light on the olive trees. It shines like a diamond... it's pink, it's blue... and the sky that plays across them... it drives you mad!
 
올리브 나무에 깃든 빛을 보라.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빛나지 않는가. 그것은 장미빛이며, 푸르른 색이다. 그 사이로 흔들거리는 하늘, 그 하늘은 그대를 미치게 만드리라!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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