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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문자cho May 01. 2018

알파벳도 모르는데, 친구는 사귈 수 있을까?

낯선 세상에 참여하기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는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중


    나는 말을 일찍 시작한 편이었다. 13개월쯤 입이 트였던가. 두 돌 무렵에는 꽤 유창하게 떠들어댔다. 앞집에 동갑인 남자아이가 살았는데, 그 친구는 아직 말을 하지 않았다. 체격은 나이에 비해 우람하고 단단했다. 행동은 좀 느리고 눈빛은 좀 멍한 구석이 있었다. 내가 쉴 새 없이 종알대는 것을 다 알아듣고도 대꾸를 하지 못하니, 그 말발에 늘 기가 죽어 있었다. 끙끙대며 답답해하다가 어느 날부턴 말 대신 손이 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입을 놀리다가 그에게 여러 번이나 맞았다.


    막 언어의 세계를 파헤치기 시작한 내게 혼자 장난감 같은 것이나 갖고 노는 시간은 따분했다.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는 또래들과 노는 데에도 흥미가 없었다. 그보단 식탁에 앉아 어른들의 대화에 참여하기를 선호했다. 이모들과 할머니부터, 교회 식구들, 아파트 단지 내 아주머니들, 동네에서 함께 술 한잔 하다가 어린 딸내미를 보겠다고 급습한 아빠의 대학 친구들까지 모두 새로운 대화거리로 나의 호기심을 지폈다.  


    나는 탁상에 앉아 어른들의 문법을 배우며 내가 느끼는 감각 너머의 세계 형성해 갔다. 그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 즉 새로운 정보를 듣게 되었을 때 나의 세계는 특히 확장되었다. 그리고 언어는 나의 이해를 구성하는 재료로서 부족함 없이 쏙 맞아 들었다.


    유치원에 다니면서 나는 구연동화 대회 대상에 빛나는 이야기꾼이 되었지만 황금기는 곧 막을 내렸다. 아빠가 이스라엘로 첫 발령이 나셨을 때였다.


“이제 이스라엘 학교에 가면 영어로 말해야 돼” 아빠가 설명해주었다.


“응! 놔 좔할 쑤 이쒀!” 나는 혀를 굴리며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러나 알파벳이 A로 시작하는 줄도 몰랐던 나는 할 수 없는 벙어리였다. 알아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였다. 내가 쓰던 언어가 사라진 그곳에서 주변의 말소리는 내 귀가엔 머무르지 않는 잡음으로 사라졌다. 바쁘게 진행되는 하루 가운데 낑낑대는 연필 소리, 의자가 삐거덕거리는 소리, 바닥에 스치는 운동화 밑창의 소리만을 알아차렸다.


    그곳은 나의 기존 문법이 통하지 않는 낯선 세계였다. 영어란 완전히 새로운 체계였다. 어른 세계의 고민을 듣고 토론하던 아이는 옷장 속에 들어앉아 스스로와 대화할 뿐이었다. 그 낯섦에 갇힌 나는 더 이상 세상을 구성할 수가 없었다. 의미는 죽고, 감각만이 남았다.


    옆에 앉은 아이들의 종이를 힐끔힐끔 보면서 눈에 보이는 알파벳의 생김새를 베꼈다. 오른쪽 아이는 슬쩍 종이를 가리며 몸을 틀어 앉았다. 고개를 돌리니 왼쪽에 앉은 아이는 가시눈을 뜨고 따라하지 말라고 고래고래 내질러 댔다. 나는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 자리엔 얼어붙은 '앞집 아이'가 대신 있었다. 낯선 소리들의 주고받음에 나는 어떤 반응으로도 참여할 수 없었다.


    변화한 일상의 안녕감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섯 살은 그런 나이다. 스트레스를 지각조차 할 수 없는 나이. 모두 처음 겪는 일이라서 생소했다. 낯선 상황이어서 긴장이 됐다. 급기야 원형탈모가 생겼다. 가뜩이나 숱이 없었는데 말이다. 엄마는 일찍부터 알아차리셨는데, 차마 말 해주진 못하셨다고 한다. 다섯 살 된 내가 머리가 둥그런 모양으로 빠지면 탈모인 줄 알았을까. 나는 그냥 내내 살아갔다. 어딘가 편하지 않은 세상에서, 이상한 세계에서.  




    머리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 한 빈 공간이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시간은 그런대로 흘렀고, 친구를 사귀었다. 올리비아도 영어를 못했다. 그래서 같이 다녔다. 그리고 조금 지나선 손짓 발짓으로 소통했다. 그것이 우리 사이의 문법이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인이었다. 금발머리 소녀. 길게 늘어뜨릴 때도 있고 양갈래로 땋고 오는 날도 있었다. 눈은 고동색. 그 밑엔 주근깨가 흩뿌려져 있었다. 원피스에 주머니가 없을 땐 팬티 속에 소지품을 넣고 다니는 엉뚱함이 있었다 (이건 비밀이었다). 올리비아와의 만남은 비로소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였다.


    올리비아는 아주 큰 저택에 살았다. 마당은 그보다 더 컸다. 자동 게이트가 천천히 열리고, 눈앞의 작은 언덕을 넘으며 서서히 집이 보였다. 야외 수영장이 있었고 가끔 모습을 비추는 고양이도 한 마리 있었다. 올리비아네 아줌마는 고양이는 무조건 발로 착지한다며, 너무 신기하지 않냐며, 연신 그 고양이를 뒤집어서 떨어뜨리셨다. 우와, 진정 '묘'기(猫技)였다. 고양이는 정말로 매번 네발로 착지했다. 나중에는 올리비아도 똑같은 행동을 해댔다.  

    

    올리비아네 집에서 슬립오버하는 것이 좋았다. 한번은 올리비아네 아줌마가 칫솔을 준비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올리비아의 칫솔을 빼앗았다. 그리고선 올리비아와 나의 검지 손가락 위에 치약을 짜주셨다. 칫솔이 없을 땐 손가락을 사용하면 된다고 이빨에 문지르며 시범까지 보여주셨다. 거품도 안 나고, 헹궈지지도 않고, 양치되는 느낌이 전혀 안나는 황당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올리비아네 아줌마는 수영장에서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하셨다. 올리비아는 예쁜 수영복을 입고 나왔다. 나는 수영을 해본 경험이 만무했다. 아줌마는 수영복이 없어도 괜찮다며, 그냥 옷을 입고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팬티와 잠옷용 셔츠를 입었고, 올리비아네 아줌마는 청반바지에 니트였나, 아무튼 입고 있던 대로 그냥 입수하셨다.

  

    발이 닿는 쪽에서만 첨벙거리는 동안 올리비아는 수심이 깊은 곳까지 수영하며 왔다 갔다 했다. 물속으로 쑥 잠수했다가 내 다리를 확 잡기도 했다. 나는 심장이 철렁해서 버럭 화를 냈다. 올리비아는 나에게 벽을 손으로 잡고 움직이면 수영장 반대편으로 같이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한 손 한 손을 떼며 천천히 움직였다. 한 손으로 벽을 잡고 다른 팔은 물속에서 휘젓기도 했다. 올리비아가 물속에서 하는 몸짓이 어떤 기분일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동안 수영장의 가장자리를 붙들고 돌았다.  


    아침을 먹다가 올리비아 아줌마는 대뜸 오스트리아에 노란색 토마토가 있다고 했다. 맛은 일반 토마토와 똑같은데, 색만 노란색이어서 그 토마토로 만든 케첩은 빨간색이 아닌 노란색이라고 했다. 맛도 일반 케첩과 동일하다고 했는데, 가능할 법도 한 이야기가 당시엔 상상도 하지 못할 충격이었다. 노란색 케첩이라니. 보지 않곤 믿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경험들로 가득한 우정이었지만, 나는 내내 그것에 동참했다. 올리비아의 경험, 올리비아 아줌마의 경험, 그리고 내 경험이 한데 묶여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 나의 머리엔 다시 털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올리비아가 내게 남긴 흔적은 무수히 많다. 나는 한동안 식당에서 빨간통 노란 통을 볼 때마다 혼자 상상에 빠졌다. 빨간통은 케첩, 노란 통은 머스터드인 건데, 혹시 이번엔 노란 소스에서 케첩 맛이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 갈색의 바비큐 소스, 노란색의 머스터드, 크림색의 마요네즈까지 모두 당연한 이치인 것 같지만, 대체 누가 그렇게 정했나 쓸데없는 고민을 자꾸 했다.


    실제로 하인즈에서 녹색과 노란색 케첩을 출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케첩이 빨갛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올리비아 덕을 보아 그렇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기대를 벗어난, 그래서 기존 이해를 통째로 뒤트는 경험은 낯설다. 노란색 케첩이라. 소비자들에겐 시각과 미각이 혼돈되는 낯선 경험이었을 것이다.


    낯섦은 동참하기 힘들다. 그저 이상하다. 그러나 변용은 새롭다. 공중 트위스트를 하는 반려묘, 칫솔 없는 치약질, 발이 닿지 않는 물속에서의 움직임—불편하지만, 수용할 만한 것. 나의 질서 속에 편입 가능 한 모든 것은 새로웠다. 나를 자라게 한 건, 새로운 것들이었다.


2001년, 올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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