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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날의 포르투

현재에 머무르기 6

by 초초야

2025년 1월, 포르투


놀이터는 빨간 모자를 쓴 아이들로 가득했다. 쉬지 않고 뛰어다니는 아이, 그네를 타며 꺄르르 웃는 아이, 구름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오르는 아이까지. 멀리서 보면 꼭 슈퍼마리오 속 빨간 버섯들이 통통 튀는 것 같았다.


그때,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뼉을 치며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키 큰 아이들은 잽싸게 작은 아이들의 손을 잡아, 짝을 지어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고, 몇몇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친구와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거리를 걸었다. 지도는 보지 않은 채, 경사를 따라 발길 닿는 대로 내려갔다. 예쁜 골목이 나타나면 사진을 찍고, 괜찮은 가게를 발견하면 잠시 들렀다.


북적이던 거리에서 조금 벗어나자, 한적한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서니, 녹음된 풍금 소리가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우리는 사진 몇장을 남긴 뒤, 자리에 앉아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았다.


연단 위에 내려앉은 노란빛.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그 빛을 보고 있자니, 『플란다스의 개』가 떠올랐다. 네로와 파트라슈를 비추던 햇살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네로가 마지막으로 바라봤던 그림 대신, 나는 중앙에 놓인 성모 마리아상을 한참 바라보았다.


성당을 나와 계속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금 전의 고요함과 상반되는 풍경이 펼쳐졌다.

기저귀만 입은 채 모래 위를 달리는 아이, 그 옆에서 온몸으로 놀아주는 어른들. 조개껍질을 줍다 파도에 흠뻑 젖어 우는 아이와 그 옆에서 해맑게 수영하는 리트리버까지. 해변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우리는 담벼락 위에 앉아 이어폰을 나눠 끼고, 짭짤한 바다 냄새와 포근한 햇살에 어울리는 음악을 골랐다. 파도 사이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그 사이로 뛰노는 연인들의 실루엣이 음악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생각했다. ‘나의 일상도, 누군가에게 영화처럼 보일 수 있겠구나. 나의 행복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어느새 그림자가 길어졌다. 파란 하늘엔 분홍색 물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마치 분홍 솜사탕 속에 들어온 것 처럼, 공기마져 부드럽게 느껴졌다.


해가 완전히 저문 뒤에도 우리는 끝까지 남아 하늘을 바라봤다. 바다 끝에는 빨강, 노랑, 파랑, 검정까지 아름다운 스펙트럼이 이어졌다. 역시,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자연만한 캔버스는 없는 것 같다.


오늘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였다.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았고, 어떤 장면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던 날.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런 시간을 자주 가져야지. 오늘 같은 날이 그저, 보통날이 될 수 있게.


초초야 인스타그램

@chocho_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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