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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Oct 30. 2024

여행 중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미술관 답사

여행 중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정확하게는 미술품보다 공간을 보는 걸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도시의 미술관을 가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건축적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은 고가의 작품을 다루는 만큼, 많은 자본이 투입된 채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에 의해 설계되 때문이죠. 애초에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궁전이나 시청 건축물이 미술관으로 리모델링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싼 건물이 반드시 좋은 건축물은 아니지만, 건축계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좋은 건축물'에는 많은 자본이 투입됩니다. 그래서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미술관, 도서관, 시청 같은 공공 공간으로 제한적입니다. 당시 학생으로서 제가 편안하게 답사할 수 있던 공간도 미술관뿐이었죠. 입장료가 부담될 때도 있었지만, 출입이 제한된 오피스나 고급 호텔을 생각하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미술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관은 뉴헤이븐에 위치한 예일대학교의 아트갤러리입니다. 이곳은 유명 건축가 '루이스 칸'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날 건축물 감상에만 집중했습니다. 게다가 뉴욕의 대형 미술관들을 이미 둘러본 후라, 대학 미술관의 미술품에는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미술작품을 빠르게 지나치다, 한 그림 앞에 멈췄습니다. 발레 하는 소녀들이 그려진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작품이었죠. 청록빛이 감도는 회색 방에 홀로 앉아 그림을 바라봤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이 공간과 작품을 온전히 소유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평일 오전 일찍 방문한 덕에 혼자만의 시간은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에서 늘 좋은 경험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은  둘러본 지 한 시간도 안되어 머릿속이 더 부룩해 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점심을 든든히 먹고 들어가면 눈꺼풀이 자연스레 감깁니다. 30분만 지나도 내가 미술품을 보는 건지, 미술품이 나를 보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죠. 그러다 아는 작품을 발견하면 반갑게 셔터를 누르지만, 다시 지루해지고 맙니다. 미술관을 빠져나와서야 정신이 돌아오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한두 개의 그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은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미술관에 가는 진짜 이유

보셨듯, 제가 미술관을 관람하는 방식은 전혀 전문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술관에 자주 간다고 하면, 예술을 잘 알고 감상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드는데요. 저는 건축답사를 핑계삼은 덕에 이 의무감에서 자유로울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미술관에 가는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예술에 대한 동경과 지적 허영심 때문이었습니다. 예술 관련 서적을 읽을 때마다 교양인이 된 기분이었고, 유명한 예술가를 알아가는 데서 묘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드가'의 작품을 혼자 감상했을 때의 기쁨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부자였다면, 예술에 상당한 돈을 지출했을 것 같네요.


예술에 대한 동경과 지적 허영심은 여행까지 쫓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들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아직 채워지지 않은 허영일지라도, 조금씩 내 것으로 만든다면 의미가 생길 것이라 믿습니다. 예전에는 어렵게 느껴졌던 현대미술도 어느새 제 방식으로 해석하는 재미를 느끼게 된 것처럼요.


여행을 돌아보며 나를 이해하고, 관심사를 정립해 나가는 과정은 정말 즐겁습니다. 이 질문이 제 안에 숨겨진 순수한 욕망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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