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소유
언제부턴가 여행 중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스마트폰을 꺼냅니다. 카메라로 풍경을 담기도 하고,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거나, 스쿼트 자세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죠. 이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가 이곳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10대 시절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포토박'이라 불릴 정도로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렌즈에 담는 게 재미있었고,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에 완전히 공감했거든요. 아름답고 특별한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미래의 나를 위해 열심히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카메라를 통해서만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현재의 순간을 눈에 담지 못하니 기억은 빠르게 희미해졌고, 사진을 다시 볼 때면 처음 보는 장소처럼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카메라를 꺼내기 전에 눈으로 먼저 풍경을 보는 습관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 여행에서 느낀 감정과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여행 일기에 적기 시작했죠. 그렇게 남긴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선명했습니다. 이 기억들은 사진과 달리 주관적이고 편집된 형태였지만, 어느새 제 의식과 무의식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지금의 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19세기 화가 존 러스킨은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는 데생을 추천했죠. 이어서 그는 ‘말그림’, 즉 글쓰기도 권장했습니다. 사물과 풍경을 데생하듯 세심하게 관찰하고 글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여행 일기를 쓰며 기억이 더 풍성해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듯합니다.
그리고 존 러스킨은 카메라만으로는 아름다움을 소유하는데 부족하다 했습니다. 저도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요즘 우리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아름다움을 빠르게 채취할 뿐이죠. 물론 사진에 진심인 분들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자동모드로만 사진을 찍는 저와는 달리, 그들은 대상과 풍경에 맞는 노출, 셔터 스피드, 조리개 값을 조정하며 촬영하니까요. 저는 그 과정과 시간들이 아깝고 귀찮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각 장소와 사물에 맞춰 카메라 세팅을 바꾸는 것도 일종의 관찰이며, 데생과 비슷한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름다움은 미학적 기준이 아니라 심리적 기준에 가깝다는 러스킨의 말처럼,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제 자신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었는데 그걸 몰랐네요.
무엇이든 저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번거로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이 느린 시간들과 번거로움이 지금의 나를 형성한다는 것도요. 그래서 저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에서 남는 건 '나'뿐이다.
다음 여행에서는 데생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숙소에서만 쓰던 여행일기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 여행의 순간에 바로 글을 써보려고 해요. 카메라 대신 데생과 글쓰기로 아름다움을 남겨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다음 여행에 무엇을 남기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