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기_여행일기
여러분도 여행을 다녀온 뒤에 하는 리추얼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이 있나요?
저에게 리추얼은 정리인데요.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캐리어 속 짐을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귀찮아서 최대한 미루고 싶어도, 캐리어 안에서 썩어갈 빨래와 기념품들을 생각하면 귀찮아도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짐을 꺼내어 빨래는 세탁기 속에 넣고, 화장품과 기타 물건들은 제자리에 돌려놓습니다. 마지막으로 캐리어에 벌레나 이물질은 없는지 확인하며 청소기를 돌려줍니다. 치우는 게 힘들기는 해도, 끝내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요.
그다음은 사진 정리입니다. 함께 여행한 친구가 있다면 빨리 정리해 공유하고, 혼자 다녀온 여행이라면 날짜별로 폴더를 만들어 분류합니다. 나중에 사진을 잘 찾기 위함이기도 하고, 내가 어딜 다녀왔는지 다시 한번 되새기기 위함이기도 해요. 물리적이면서도 정신적인 정리이기도 하네요.
이렇게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여행을 다시 다녀온 기분이 들어요.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미화되기 시작하죠. 그러다 보면 이 소중한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고 싶어 져, 일기장을 꺼내 밀린 여행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저는 2016년부터 여행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내년이면 벌써 10년 차가 되네요. 얼마 전에는 10년 치 일기를 바탕으로 에세이 초고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여행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정리했을 뿐이었지만, 이 일기를 통해 제 지난날을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정리한 생각들이 '초초야'의 기반이 되어가는 중입니다.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에 이런 말이 나오는데요.
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한다.
제가 가장 공감한 문장이에요. 저는 여행의 힘을 믿습니다. 여행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그 순간에는 알 수 없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 모든 경험이 나를 구성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꾸준히 여행일기를 씁니다. 미래의 내가 그 여행을 더 잘 요리할 수 있도록, 가장 신선한 상태로 기억을 저장해 두기 위해서요.
이렇게 밀린 여행일기까지 모두 정리하면 저의 여행은 비로소 끝이 납니다. 여러분도 다음 여행에서는 '여행일기'를 써보는 것을 추천드려요! 첫 문장을 쓰는 순간, 또 다른 여행이 펼쳐질 거예요.
참, 12월 말부터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에 저의 '런던 여행일기'를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미리 팔로우해 두신다면 더 즐겁게 기다리실 수 있겠죠?
초초야의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