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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Nov 20. 2024

여행 중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은 적 있나요?

사고가 데려다 놓은 곳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변수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중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는 날씨인데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제와 예측은 한계가 있죠. 특히 태풍, 지진, 폭설 같은 자연재해는 자동차, 비행기, 기차 등 우리가 의존하는 교통수단을 무력화시킵니다. 물리적 이동이 필수 조건인 여행은 자연재해 앞에서 그 존재가 무의미해지기도 합니다.


자연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사람입니다. 소매치기, 절도, 인종차별 등 여행 중 발생하는 불쾌한 사건들은 대부분 낯선 사람들로부터 비롯되곤 하죠. 하지만 낯선 사람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함께 여행한 동행자와 갈등이 생기거나, 아프거나 다치게 되면 여행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합니다. 


사람은 그나마 통제 가능한 변수입니다. 낯선 사람은 경계하면 되고, 동행자 없이 혼자 여행을 가면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수는 여전히 발생합니다. 출국 날 스마트폰이 고장 나거나, 드라이기가 터져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되죠. 결국, 여행에서 변수를 완벽히 통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위험 요소를 미리 피하려고 노력하되, 이미 벌어진 일에는 담담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죠.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 사고, 연애, 육아 등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수많은 여행을 통해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계획이 어그러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제는 허허 웃으며 넘기게 되었어요. 지나고 보니, 변수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저를 예상치 못한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기도 하니까요.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사건 사고 썰이 많지만, 오늘은 올해 있었던 세 가지 에피소드만 공유하겠습니다. 모두 출국길에 일어난 일들인데요. 여러분께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제 일기에서 발췌해 왔으니, 함께 즐겨주세요!




2024년 2월 18일 - 인천공항 가다가 경찰차 탄 썰


조수석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멀어지는 동네를 바라봤다. 겨울을 피해 한 달 동안 따뜻한 나라로 떠나는 것도 좋았고, 앞으로 회사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출발한 지 20분쯤 지났을 때, 차가 꿀렁이기 시작했다.

"차 퍼지는 거 아니야?" 농담하자마자 정말 멈춰 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버지와 나는 실소를 터뜨렸지만, 뒤에서 경적이 울리자 정신을 차리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고, 나는 오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경찰인 오빠는 바쁘다며 “112에 전화해”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일로 전화를 해도 되는지 의심 적었지만, 일단 6년 차 경찰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긴장하며 112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자 경찰차가 출동했다. 도착한 경찰들은 차 뒤에서 교통을 정리해 주고, 나는 암행순찰차에 올라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경찰분들 덕분에 지금은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며 글을 쓰고 있다. 올림픽대로에서 차가 퍼지고, 반팔 차림으로 비바람을 맞으며 경찰차를 기다렸던 하루였다... 오늘 일어난 일이 액땜일지, 우당탕탕 여행의 시작일지 알 수 없지만, 내일이 기대되는 걸 보면 지금 나, 꽤 행복한 걸지도…



2024년 8월 6일 - 몽골행 난기류


2018년 여름, 함께 미국여행을 다녀온 우리는 6년 만에 모여 해외여행을 떠났다. 6년 전 아침과 달리 오늘 아침은 별 다른 이슈 없이 순탄했다. 모두 여권을 잘 챙겨 왔고 고장 난 핸드폰도 없이 멀쩡했다. 


그 순간 게이트 앞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던 나는 옆에 앉은 친구에게 말했다.

“뭔가 이상해, 우리 너무 평화로운 것 같아”

이번에도 말이 씨가 된 걸까? 우리는 이 비행기에서 역대급 난기류를 만났다.


나는 기내식을 빠르게 먹은 뒤 잠을 자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비행기가 뚝 떨어지더니 얼굴로 오렌지 주스가 날아왔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다음 비행기가 한번 더 떨어지면서 기내식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사방으로 떨어졌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싶어 친구들의 손을 붙잡았다. 


다행히 세 번째 낙하를 마지막으로 난기류는 잦아들었지만,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래서 일단 보고 있던 영화를 껐다.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세계의 지진과 현실의 난기류가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친구들과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유서이야기를 꺼냈지만, 또 한 번 말이 씨가 될까 봐 더 이상 드립을 날리지 않았다.


비행기가 잠잠해지자 승무원들이 나와 복도를 정리했다. 그제야 우리도 정신을 차리고 옷에 떨어진 음식물들을 정리했다. 나의 왼쪽에 앉은 수의 샐러드는 나의 무릎담요에, 나의 토마토 주스는 오른쪽에 앉아 있던 정이의 흰 티에 안착했다. 복도에 앉은 진이의 오렌지 주스는 천장까지 튀었는지 하늘에서 오렌지 주스가 떨어져 옆자리 분의 정수리를 적시고 있었다. 우리는 남은 1시간 30분을 두려움에 떤 채 울란바토르 공항에 무사히 도착하길 빌었다. 



2024년 9월 16일 - 인천공한 제1터미널 108번 게이트 앞에서


런던에 못 갈 것 같다. 

밤 11시 45분인데, 비행기가 또 지연됐다. 원래 9시 35분 출발이었는데 말이지… 2시간 40분이 지연되었다. 지금 출발해도, 상해 도착하면 새벽 1시 30분이다. 상해에서 런던 가는 비행기는 1시 50분 출발이다. 어이없게도 런던 가는 비행기는 지연이 안된다. 


승무원들이 지금 가봤자, 라스트콜을 놓치고 상해공항에서 고생할게 뻔하다고 비행기를 타지 않는 걸 추천한다. 75년 만에 강력한 태풍 때문에 공항이 마비 됐다나 뭐라나. 상해에서 런던 가는 비행기는 5일 뒤에나 가능할 거란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경유루트를 짜오라는데, 모르겠다. 그냥 너무 피곤하다… 자고 싶다… 


나처럼 경유 비행기를 놓칠 사람들이 많은지 잔뜩 화났다. 그중에서도 몇몇 사람들은 일단은 상해 가서 비행기 타기를 도전하고 안되면 노숙을 할 모양인가 보다. 나는 10kg가 넘는 짐들을 핸드캐리하고 상해공항을 뛰어다닐 자신이 없다. 전액 환불은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나는 그냥 집에 가야겠다.


내 여행, 특히 여행 첫날마다 왜 이렇게 바람 잘날 이 없을까? 인천공항 갈 때마다 그러더니, 이번엔 결국 출국 도 못했네. 속상하다... 하지만, 재밌기도 하고... 이게 다 뭐 여행 썰이고 컨텐츠지. 일단 집에 돌아가자마자 순두부찌개 먹어야지.



세상이 나를 억까해

그렇습니다. 모두 올해 일어난 일이에요. 자동차 고장, 비행기 난기류, 태풍으로 인한 공항마비 순으로 스케일이 점점 커지면서, 저의 출국은 막히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더 생겼다는 생각에 마냥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3시간에 걸려 인천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지치기 시작하더라고요. 집에 도착하니 아무것도 하기 싫었습니다. 30kg가 넘는 짐을 풀 힘도 없이, 환불 신청할 힘도 없이, 며칠 동안 먹고 잤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버스를 놓치거나 현금을 도둑맞아도 금방 잊고 웃어넘겼지만, 이번 런던행 만큼은 털어내기 어려웠습니다. 그 이후부터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비가 쏟아졌고, 큰맘 먹고 외출을 해도 금방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끝내는 교통사고까지 났습니다. 가벼운 사고라 다치진 않았지만, 저는 결국 거리 한복판에서 울고 말았어요.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래도 울고 나자 마음이 한결 나아지더군요. 


도피의 이유 - 나와 마주하기

그날 밤, 저는 오랜만에 일기장을 꺼내 제가 우울한 이유와 런던에 가려 했던 이유를 자세히 적어 보았습니다. 런던에 가기 위한 가장 큰 목적은 도피였고, 그게 좌절되어 우울한 거더군요. 그리고 그 도피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첫 번째 이유는 불안으로부터의 도피였습니다. 퇴사 후 6개월이 다 되어 가던 시점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결과물이 없었어요. 승진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며, 혼자 도태되는 기분이었죠. 더 이상 "퇴사하고 뭐 해?"라는 질문을 듣고 싶지 않았어요. 런던에 있으면 그냥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거든요. 결국 불안의 원인은 비교였습니다. 남들의 눈에 내 인생이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고 비교한 거죠.


두 번째 이유는 엄마로부터의 도피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런던 출국 며칠 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상을 치렀습니다. 슬픈 엄마를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이중적인 마음이었죠. 하지만 결국 비행기를 타지 못했죠. 그리고 제가 돌아와 기뻐하는 엄마를 보며 가슴이 턱 막혔던 것 같아요. 우울한 엄마의 곁에 있던 어린 시절의 저로 돌아가는 기분이었거든요. 제 존재가 엄마에게 힘이 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엄마의 슬픔에 동화되고 싶지 않았어요. 엄마의 슬픔은 딸에게 죄책감이 되어버리거든요. 



교통사고 이후 정신을 차릴 때 즈음 제가 좋아하는 언니가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언니도 얼마 전에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더라고요.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녀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죠. 그리고 이제는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제 삶을 살고자 하고 있으며, 엄마와의 정서적 독립도 조금씩 준비하고 있습니다. 결국 상하이에 내린 태풍은 저를 한국에 남게 하여, 제가 그동안 외면했던 것들을 직면하고 해결하도록 만들었어요. 긍정적인 작용을 했죠. 역시나 변수는 우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가 주는 역할을 합니다.


불안, 비교, 부모와의 관계, 독립, 그리고 도피는 저와 언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해외로 떠나고 싶어 하는 제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초초야'를 키우면서 앞으로 많은 분들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도피가 아니라 온전한 제 삶을 살기 위해 다시 런던에 가려합니다. 런던행 이야기는 12월 말부터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어질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초초야의 인스타그램

 @chocho_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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