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온전한 나를 보여주는 게 두려워졌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도, 그때뿐이었죠. 모든 게 마음속에 있는 커다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여행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한 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사람이 싫었던 게 아니라, 남들에게 휘둘리는 제 자신이 싫었던 것 같아요. 이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누구도 들이지 않으려 거죠.
다행히 지금은 여행도 다시 좋아지고, 구멍도 메워졌습니다. 올 여행 중 만난 일련의 우연들이 저를 이렇게 만든 것 같아요. 아래는 올해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인연과 우연에 대한 기록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2024년 06월 13일 제주도 북촌리에서
모두 체크아웃을 한 모양이다. 나도 서둘러 짐을 챙긴 뒤, 사장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숙소를 나섰다. 캐리어는 렌터카에 실어두고 북촌리의 바다를 보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마을은 2년 전보다 더 조용했다. 오래된 당산나무와 예쁜 꽃들, 작은 항구에 띄운 어선들까지 모든 게 그대로였다.
항구 바닥에 쪼그려 앉아 물질하는 해녀분들을 바라봤다. 파도 소리, 비릿한 바다냄새. 이 자유가 좋으면서도, 외로웠다. 정오에 가까워지자 햇살은 더 거세졌다. 여름이 시작되려는 모양이다. 눈을 뜨기 힘들다.
바다를 뒤로한 채 마을로 돌아갔다. 4년 전 들렀던 라멘집에 가려고 했지만, 조식으로 먹은 누룽지가 소화되지 않아 발길을 멈췄다. 그래도 지금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 라멘집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2024년 6월 12일 게스트하우스 2층에서
게스트하우스의 필사 시간이 끝나자, 내 대각선에 앉아 있던 지윤 님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다.
"혹시... 다들 무슨 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빵집을 준비하고 계시는 지윤 님의 답변을 시작으로, 게스트들은 각자의 직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순서였던 윤우님은 자신의 직업이 조금 특이하다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저는 사제입니다."
모두 놀란 모습이었다. 어깨까지 오는 물결펌에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던 윤우님의 모습은, 누가 봐도 자유로운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놀란 우리의 반응에 윤우님은 잠시 웃더니 차분하게 말을 이어 깄다.
"흔한 직업이 아니다 보니 다들 이런 반응을 보이세요. 편견이 생길까 봐 여행 중에는 직업을 밝히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많아요. 그래서 그동안 말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낮에 있었던 일 덕분에 말하게 됐어요."
버스에서 잘못 내린 윤우는 난생처음 본 동네를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느낌 좋은 편집샵을 발견했고, 느낌 있는 하와이안 셔츠를 발견했다. 그렇게 셔츠를 구매하기 위해 계산대로 향하던 윤우의 눈에 가게 주인의 팔찌가 보였다. 천주교 신자들이 하는 염주 팔찌였다. 평소의 윤우라면 셔츠만 사고 나왔겠지만, 그날따라 왜인지 모르게 자신이 사제임을 밝히고 싶었다.
가게 주인은 자신이 사제라고 말하는 하와이안 셔츠를 젊은이를 보고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요? 그럼, 제 뱃속의 아이를 축복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게 주인의 부탁에 윤우는 불룩한 배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그 순간,윤우의 마음 한구석엔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이 차올랐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을 숨기지 않을 때, 더 자유롭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윤우님은 낮에 있었던 일과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이 순간이 자신에게 큰 자유를 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를 숨기지 않고 내려놓는 것에서 오는 자유. 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단지 윤우님의 이야기가, 그가 말한 자유가 궁금할 뿐이었다.
2024년 06월 13일 제주도 북촌리 라멘집에서
아침 장사를 막 시작한 라멘집에는 손님이 한 명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윤우님이었다. 어젯밤 호들갑을 떨며 라멘집을 추천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한 명쯤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게 윤우님일 줄은 몰랐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자연스럽게 합석했다.
우리는 먼저 나온 윤우님의 라멘을 앞접시에 덜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는 배낭에서 작은 포도주병과 컵 그리고 빵접시를 꺼내 나에게 보여 주였다. 10분 전 내가 앉아 있던 바닷가에서 그걸로 미사를 드렸다고 했다. 낭만 사제, 아니 낭만 청년 그 자체였다. 이토록 낭만적인 삶을 살아가는 내 또래의 사제를 보고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건 왜일까?
그렇게 식사가 끝나갈 무렵, 윤우님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오늘 식사를 대접해도 될까요?”
나는 감사한 마음에 정중히 사양했지만, 그의 따뜻한 제안을 두 번 거절하기 힘들었다. 라멘집 사장님께도 잘 먹었다는 인사를 남기고 우리는 함께 식당을 나섰다.
식사 후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더 깊은 이야기가 오갔다.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식당에서 나눈 대화보다 훨씬 더 삶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대화에 집중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버스 정류장을 지나쳤고, 나의 렌터카가 주차된 게스트하우스까지 걸었다. 끝이 다가옴을 직감한 우리는 차에 타기 직전 서로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나는 3개월 전 푸껫에서 스쿠터를 타다 생긴 무릎의 흉터를, 윤우님도 스쿠터를 타다 생긴 쇄골의 흉터를 보여줬다. 그리고 우리는 웃었다. 어떤 맥락으로 상처를 보여주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겠지만, 직전에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았던 걸 생각하면 납득할 만하다.
"삶의 미학은 불균형 속에서 나온다."
"루틴이 무너지는 것도 하나의 루틴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지금 이 대화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임. 멈춰 있던 무언가가 다시 움직이는 듯했다. 짧은 시간 동안 젊은 사제의 입을 통해 너무 많은 깨달음을 얻은 바람에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겠다. 언젠가 이 기억들이 내 안에서 차분히 가라앉아 나만의 언어로 다시 떠오르길, 손끝으로 정리되길 바란다.
이날 나눴던 대화들은 지금도 제게 큰 힘과 용기가 되었습니다. 신을 믿지 않지만, 때로는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 존재한다고 느껴요.
여러분에게도 여행 중 만난 잊지 못할 우연이 있나요? 그 순간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궁금합니다. 여행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삶에 흔적을 남기곤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