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에서, 오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여행을 자주 다니는 가족은 아니었습니다. 주말에는 늘 서울에 있었고, 여름휴가 때는 어김없이 외갓집으로 향했지요. 그렇게 저는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리조트와 호텔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할머니 댁이 아닌 곳에서 자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강원도나 부산처럼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더 좋겠다 생각했죠.
그 소원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가 큰맘 먹고 제주도 여행을 추진하신 덕분에요. 그날은 우리 가족이 숙박시설에서 잠을 잔 첫날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도 여행을 자주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대학 입학, 군대, 취업 준비 같은 인생의 커다란 이벤트들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10년 동안 가족여행은 후순위였습니다.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떠난 여행이 베트남 달랏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오빠는 바빠서 함께하지 못했지만요.. 아래는 부모님과 함께한 베트남 달랏에서 남긴 기록입니다.
2024년 3월
달랏에서, 오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노을이 질 무렵 나트랑을 출발한 미니밴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달랏에 도착했다. 달랏은 고산지대에 있기 때문에 일 년 내내 봄날씨라고 하는데, 역시나 나트랑과는 비교도 안되게 시원했다.
숙소는 예쁜 정원이 있는 소담한 호텔이었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이곳을 선택했다. 마당에 딸린 별채라 그런지 공기가 더 서늘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아직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 안이었고, 공항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4시간은 더 걸릴 터였다. 객실의 서늘함이 외로움으로 번지기 전에 서둘러 티브이를 켰다. 가장 시끄러워 보이는 영화 ‘바비’를 틀어둔 채, 나트랑 바다에서 미처 씻어내지 못한 모래를 제거하러 샤워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노곤해져, 엄마 아빠의 착륙 시간에 맞춰 알람을 맞춘 채 눈을 붙였다. 엄마는 이번이 첫 해외여행이었고, 아빠는 회사 워크숍으로 간 패캐지를 제외하면 이번이 첫 자유여행이었다. 내가 예약해 둔 택시를 잘 찾을 수 있을까? 숙소까지 무사히 올 수 있을까? 와 같은 불안함에 얼마 못 가 잠에서 깼다.
핸드폰이 울렸다. 보이스톡이었다. 택시를 못 찾겠다는 엄마의 목소리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지만 곧 전화기 너머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택시 찾았어!" 혼자 여행하거나 친구들과 떠날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초조함이었다. 부모님이 빨리 도착해서 마음 편히 쉬고 싶었다.
거의 도착했다는 엄마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밖으로 나가 부모님을 맞이했다. 한 달 만에 부모님을 만나 반가우면서도 우리가 해외에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한 술 더 떠 비행기와 택시를 타고 무사히 도착한 부모님이 대견하기도 했다. 부모님을 보고 부모의 마음을 느낀다니 이상한 일이다. 오빠도 왔더라면 이렇게 걱정하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
엄마 아빠의 짐을 들고 별채로 들어왔다. 엄마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벌써 물갈이를 시작한 건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방콕에서 배탈로 고생했던 나의 증상과 비슷했다. 나는 역시 엄마 딸인 건가. 아직 여행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걱정이다.
그날 밤, 엄마와 나는 한 침대를 함께 쓰고, 아빠는 혼자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와 나란히 누워본 게 얼마만인가 익숙한 엄마의 온기가 느껴졌다. 티브이를 보던 엄마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싶다 말했다. 리모컨을 한참 돌려 '눈물의 여왕'을 발견했고, 나와 엄마는 드라마를 라디오 삼아 잠을 청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엄마의 손을 잡았다. 나의 손이 엄마보다 작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라 울컥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의지가 되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2024년 3월
베트남 달랏 첫째 날
밤에는 잘 보이지 않던 꽃들이 선명하게 피어 있었다. 베트남 시간에 적응한 나와 달리, 한국 시간에 익숙한 부모님은 아침 일찍부터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나도 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새벽의 냉기가 가시지 않은 그늘을 피해, 볕이 잘 드는 야외 테라스에서 아침을 기다렸다.
아침식사로 따뜻한 국물이 좋을 것 같아 베트남식 누들을 선택했다. 음료는 파인애플, 구아바, 사과로 다양하게 시켰다. 얼마 안 가 신선한 착즙 주스가 나왔다. 따뜻한 햇살 아래, 평화로운 정원을 바라보며 주스를 마셨다.
곧이어 국수가 나왔다. 쌀국수를 기대했는데, 수란이 얹어진 맑은 국물 라면이었다. 한국식 라면과 다르게 은은하고 밋밋한 맛이었다. 내일은 서양식 아침으로 바꿔야겠다. 엄마와 아빠는 나쁘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나를 위해서 한말인걸 알았다. 엄마는 절반도 먹지 못했다.
우리의 첫 관광지는 여름 궁전이었다. 베트남의 택시비는 저렴한 편이라 이동할 때는 항상 그랩(Grab)을 이용했다. 원래 목적지는 여름 별장이었는데, 택시 기사가 착각해 여름 궁전에서 내려다 줬다. 어차피 여름 궁전도 갈 계획이었던 터라 별말 없이 내렸다.
평일 아침의 여름 궁전은 몇 무리의 단체 관광객만 보일 뿐 한적했다. 나는 이미 3주 넘게 동남아시아를 여행한 탓에 체력적으로 지쳐 있었다. 무엇보다 웬만한 유적지나 경험에는 감흥이 없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체력이 생각보다 좋아서 기차역, 여름 별장 등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이번 여행은 친구들과의 여행과 달랐다. 리더가 된 듯한 책임감으로 꽉 차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었는데, 혼자 오버했던 것 같다. 지금은 피곤해서 일기를 더 쓰지 못하겠다. 한국에 돌아가서 몰아 써야지...
ps. 별거 아닌 숙소와 음식에도 너무 기뻐하던 엄마만 생각하면 여행에서 더 잘해주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 다음 여행 때는 정말 돈을 많이 벌어서, 더 따뜻하고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여기까지 저희 가족의 첫 해외여행 이야기였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부모님의 모습을 영상으로 많이 남기려 노력해요. 언제든 이 순간들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도록, 언제든 마지막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기록하는 편이죠. 영상을 찍는 순간에도, 다시 돌려볼 미래가 상상되어 동시에 슬퍼집니다. 달랏에서도 부모님 영상을 참 많이 찍었는데요. 오랜만에 다시 보니 행복한 장면인데도 가슴이 저릿해지네요. 가족이란 참 복잡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가족 여행은 어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