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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야 Dec 02. 2024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횡단열차에서 먹은 찜닭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먹은 찜닭입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러시아 언니가 건네준 닭고기 요리였죠. 


횡단열차에는 식당칸이 있지만, 비싸고 맛이 별로라 대부분 승객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탑승합니다. 저와 친구도 컵라면, 햇반, 통조림 같은 간단한 음식을 챙겨갔고, 정차역에서 빵이나 치즈를 사 먹었죠. 러시아 사람들은 큰 빵과 소시지 잘라 치즈를 얹어 먹는 경우가 많았죠. 그리고 많은 승객들이 도시락 컵라면을 먹었는데, 러시아의 국민 라면이 된 도시락을 볼 때마다 해외에서 성공한 사촌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열차에서는 각자 준비한 음식을 조용히 먹는 분위기였는데,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는 달랐습니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음식을 나눠 먹으며 금세 친해지는 분위기였죠. 응답하라 1988에서 어머니들이 반찬을 나눠 먹던 모습처럼요. 누군가 비스킷이나 빵을 나눠주면, 저희는 김이나 한국 과자를 건넸습니다. 


찜닭도 그렇게 나눠 먹은 음식 중 하나였습니다. 러시아 언니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준 닭고기를 한 입 먹고는 “이건 간장찜닭이다!” 싶었죠. 바로 불닭볶음면 끓여서 함께 먹으니 한국에 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것이 찜닭이고, 그 아래에 있는 피자는 앞자리 아주머니가 주신 것이며, 오른쪽 비스킷은 옆자리 청년이 준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부르고 따뜻했던 식사였어요.


찜닭 언니와 피자 아주머니는 식사가 끝난 후, 기분이 좋으셨는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사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한국 옛날 가요와 비슷한 가락이었어요. 저는 두 사람의 노래를 배경 삼아 잠에 들었답니다.



 

맛있는 음식, 맛없는 음식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함께 나눠 먹은 음식인 것 같아요. 동행자를 제외하고, 여행 중 누군가와 음식을 나누는 건 특별한 일이니까요. 보통 식당에서 사 먹거나 에어비앤비에서 요리해 먹으니, 횡단열차나 공용 주방이 있는 호스텔에서만 가능한 일이겠죠.


러시아 음식은 북부 지방이라 그런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간이 세지 않고, 건강한 느낌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서양 기준 식단에 동양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고 느껴요. 아시아부터 유럽까지 광활하게 펼쳐진 대륙이라 그런 걸까요? 예를 들면 당근김치, 혹은 '마르코프차'가 그렇습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만든 요리인데, 요즘 한국에서 '당근라페'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21살 때 당근을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식당에서 처음 맛보고 반했었죠. 이런 맥락에서 찜닭에서도 익숙한 한국의 맛을 느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음식에는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신기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이 담긴 음식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없으니까요. 여러분의 여행 음식도 말해주세요!



초초야의 인스타그램

@chocho_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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