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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우 Jan 07. 2023

택배기사가 본 직업의 귀천

화를 내던 고객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연구실로 택배를 시켰는데 못 찾았다고 전화를 걸었던 어느 교수님이었다.

분명히 그분이 말하는 연구실로 택배를 배달했던 기억이 선명했기에 그렇게 얘기를 드렸는데 자기는 분명히 못 봤다면서 버럭버럭 화를 냈다.

그래서 지금은 대학교를 벗어나 다른 곳에 있어서 당장은 가지 못하는데, 배달을 마치고 몇 시쯤 가보겠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그럼에도 교수님은 비이성적으로 화를 내며 인격모독적 말을 쏟아냈다.

“그러니까 택배 기사 따위나 하지!”

이런 말에는 나도 덩달아 화를 내야 하나, 불쑥 충동이 들면서도 말을 잇지 못할 놀라움이 더 컸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질 정도면 많이 배우고, 교양이 있는 사람일 텐데 어떻게 저렇게 말을 할까?”

물론 나는 세상이 공평하다거나,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강남 팔학군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선생님들은 어린아이들을 앞에 두고는 대놓고 이런 말씀들을 하셨다.

“너희들의 부모님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너희들은 엇나가지만 말고 딱 이대로만 자라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어떤 선생님은 대놓고 아이들이 사는 아파트의 등급, 부모님의 직업을 가지고 차별을 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그런 선생님들의 태도가 경박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어릴 때는 책을 읽지도 않았고, 공부도 못하는 데다 친구들과 뛰어다니기만 했으니 선생님과 친해지기도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한 선생님이 유독 나를 ‘반의 물을 흐리는 반동분자’로 점찍어 어떤 문제만 있으면 아이들 앞에 세우고는 면박을 주거나 손찌검을 했다. 어느 날엔 종례시간에 나를 칠판 앞으로 불러 뺨을 때리며 왜 종례시간에 선생님 얘기를 듣지 않고 책을 보냐는 것이었다, 책을 본 것은 선생님의 오해였다. 그리고 종례가 끝나고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하셔서 교무실에 갔는데 혼을 내다가 갑자기 무시하는 투로 이렇게 물었다.

"너네 아버지는 무슨 공무원이니?”

이런 걸 왜 묻나 싶었지만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검찰 공무원이요.”

그런데 왜인지 이 말의 효과가 엄청났던 것 같다.

선생님이 사색이 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 교실에 들어가서 앉아라.”

평소처럼 얻어맞을 줄 알았는데, 내 한마디로 상황이 너무 평화롭게 종료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강남 8학군의 교사라는 이유로 자기 반 아이들이 모두 대단한 집 아이들일 거라고 생각했던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검찰이라 하니 검찰 중에서도 고위급 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경험을 시작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온갖 더럽고 불합리한, 공평함과는 거리가 먼 광경들을 많이 봐왔다.

가장 화가 났을 때는, 본업인 광고 회사 외에 내 사비와 많은 시간을 투자해 키워나갔던 봉사 단체에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중소기업 사장님의 이십 대 중반쯤 되는 아들이 찾아와 정치인 이미지메이킹에 이용하려 했던 일이었다.

봉사 단체를 운영하며 느낀 거지만, 많은 국회의원이 한 번 봉사 현장에 와서 카메라 앞에서 리본만 끊고 돌아간다거나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완전히 질렸던 참이었다.

그 친구는 단체에 정치인을 끌어들이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고 이 봉사 단체를 이용해 어떻게 돈을 모아 스스로 유명세를 탈 것인지에 대해서도 일장 연설을 해댔다.

결국 봉사 단체가 그런 일에 쓰이게끔 가만히 놔두지는 않았지만, 그 친구의 생각하는 방식이 놀라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쨌든 화를 내며 택배기사 운운하는 그 교수님 덕에 살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떠올랐다.

그에게 들었던 인격모독적 말이 다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 당시에는 이 분의 학생들이 너무나 불쌍하다 싶을 정도였다. 마치 일상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 전부를 한 번에 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게 화를 내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건을 찾는 일이 중요하죠.”

잘 말씀드렸는데도 그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차를 돌려 대학교로 다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장문의 문자가 왔다.

자기 연구실이 최근 xx 관에서 oo 관으로 이사를 했는데,

택배를 주문할 때 그걸 잊어버리고 예전에 있던 곳 주소를 적어냈다는 것이다.

물건은 예전에 있던 곳에 잘 있었고 무사히 찾았는데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문자나마 진심 어린 사과를 들었으니 마음은 풀렸지만, 직업의 귀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직업의 귀천을 없애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한 직업도 자신의 말 한마디로 단번에 천하게 만들어버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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