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 나는 호텔에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호텔은 우리가 떠올리는 5성급 수준의 고급 호텔을 말한다. 나에게 호텔은 특별한 날에만 가던 특별한 장소였다. 그런데 이곳 압구정 엄마들에게 호텔은 특별한 곳도, 특별한 날에만 가는 곳도 아니다. 오히려 많은 추억과 일상이 깃든 곳이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압구정의 엄마들은 호텔에서 결혼식을 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으면 당연하게 호텔에서 돌잔치를 한다. 주말에도 종종 호캉스를 떠나고,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 때도 호텔을 간다.
당연히 그런 화려한 생활이 부럽기도 했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왜 호텔일까? 특히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엄마들은 호텔밖에 갈 곳이 없나 싶을 정도로 자주 가는 것 같았다. 돌잔치 이외에도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 가족 식사 등은 모두 호텔에서 해결한다. 아는 엄마는 여름이면 일주일에 3일을 아이를 데리고 호텔에서 지내다 올 정도여서, 근처에 살면서도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였다.
처음에는 단지 호텔이라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도 아이를 낳고 호텔을 몇 번 다녀보니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갈 곳이 많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이를 받아주는 곳도 적을뿐더러, 아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곳도 적다. 언제부턴가 ‘노키즈존’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아이랑 호텔이 아닌 식당을 갈 때면 반드시 전화를 해서 물어본다. ‘아이도 함께 들어갈 수 있나요?’ 혹여나 아이가 갈 수 있는 곳도 벌써 걱정이 앞선다. 입구부터 유모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 유아 의자나 유아 식기가 없는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더 큰 걱정은 아이들을 향한 직원들의 불친절한 태도나 주변의 시선이다.
하루는 예술의 전당에서 아이와 전시를 보고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피곤했는지 곤히 잠에 든 아이는 유모차에 탄 상태였다. 식사시간이 한참 지나서인지 식당은 한산했고, 구석에는 유모차가 들어갈 만한 넓은 자리도 있었다. 우리가 아이가 자고 있으니 구석에 유모차를 세워두고 식사를 해도 괜찮겠냐고 물었고, 식당 주인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변 손님들이 불편해할 수 있으니 유모차를 반입할 수 없습니다. 식사를 하고 싶으면 야외에서 해야 합니다.” 당시는 꽤나 쌀쌀한 11월이었다. 너무도 배고팠던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유모차를 옆에 두고 야외에서 급하게 식사를 마쳤다.
이날은 몇 년이 지나도 아주 불쾌한 날로 기억된다. 나는 유아 의자나 유아 식기 같은 유아용품이 모든 식당에 필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노키즈존도 이해할 수 있다. 유모차를 반입하는 문제도 그렇다. 사람이 많거나 자리가 부족하다면 유모차가 반입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손님이 거의 없어 텅텅 빈 식당에 유모차가 들어가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더욱 불쾌한 것은 아이와 아이를 기르는 부모에 대한 시선과 태도였다. 요즘 사람들에게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은 배려하고 존중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사람들일 뿐이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더 이상 일반 식당을 가는 것이 꺼려졌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할 때면 언제나 ‘키즈-프렌들리’하다고 소문난 곳 혹은 ‘호텔’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남편과 나의 불쾌함과 불편함은 두 번째 문제였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불편한 존재로 생각하는 곳, 엄격하고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곳에 데려가고 싶지 않아 졌다. 분명 모두가 겪어온 어린 시절일 테고, 대부분의 사람이 언젠가는 걸을 부모의 길인데, 이렇게까지 각박해야 하는지 속상했다.
하지만 호텔에 가면 일반 손님과 아이가 있는 손님의 지위는 역전된다. 호텔에서 아이가 있는 손님은 오히려 ‘배려해야 하는 고객’이 된다. 일단 식당에 가면 유아 식기나 유아 의자 같은 용품은 기본이다. 대부분은 가장 넓고 쾌적한 자리를 내어준다. 유모차도 들어가야 하고 아기의자도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직원들은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를 유지한다. 혹여나 지루할 아이들을 위한 크레파스와 종이까지 준비해주는 곳도 있다.
한두 시간의 식사에도 이 정도 차이가 나니, 잠을 자는 숙박은 더욱 큰 차이가 난다. 나도 아이를 낳기 전에는 리조트, 펜션 등을 가리지 않고 많이 다녔던 것 같다. 오히려 펜션이나 리조트가 예쁘고 특색 있는 곳도 많다. 하지만 아직 어린 연년생 남매를 키우는 나에게 예쁜 펜션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호텔에서 숙박을 하면 일단 기본적인 유아용품이 모두 준비된다. 아기 침대나 아기 욕조, 젖병 소독기, 침대 가드 같은 아주 어린아이를 위한 용품부터, 유아 샴푸, 유아 욕조, 심지어는 유아 변기까지 제공된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한번 이동할 때 싸야 하는 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데(1박이면 캐리어 하나는 필요하다), 호텔에서 머물게 되면 짐이 반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사실 이런 유아용품들은 호텔을 숙소로 선택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듯, 아이들에 대한 호텔 전반에서 느껴지는 배려와 친절이다. 일반 리조트에 놀러 가면, 아이 밥 한번 데우는 것도 일이다. 아직 이유식을 할 때라 이유식을 얼려간 적이 있었다. 전자레인지로 해동만 하면 됐지만,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리조트 내에 식당도 많고 전자레인지도 많았지만, 대부분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호텔은 직접 이유식을 데워서 가져다준다. 심지어 유아식이 준비되어, 이유식을 얼려가는 수고도 할 필요가 없는 곳도 있다.
물론 호텔에는 서비스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높은 비용만큼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아이와 함께하는 어른들에게 너무 엄격한 것 또한 사실이다. 심지어는 조금만 실수라도 하면 ‘맘충’이라는 프레임까지 씌우려고 달려든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 싫어 간혹 일반 식당에 갈 때면 과도하게 아이를 혼내게 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나는 또 한참을 미안해진다. 어린아이들이 어른처럼 있어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그러니 결국 돈 있는 엄마들은 아이와 함께할 때는 호텔을 찾게 된다. 엄마도 아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곳,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들이 오히려 배려받을 수 있는 곳, 호텔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호텔에 갈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식당에 갈 때마다, 여행을 갈 때마다 눈치를 보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아이와 집에만 있어야 할까.
나는 ‘키즈-프렌들리’한 호텔이 아니라 ‘키즈-프렌들리’한 사회를 바라본다.
어린아이 너무 나무라지 마라.
네가 걸어왔던 길이다.
-배우 박중훈 어머님
-압구정에는 다 계획이 있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