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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아리 Apr 28. 2023

반 아이들과 소풍을 다녀온 초등교사의 도시락 싸는 자세

새벽 4시에 일어나 만든 아들의 도시락. 밑에는 꼬마김밥과 롤샌드위치가 있다.

아이가 며칠 전부터 곧 소풍을 간다고 들떠있다. 지금까지는 코로나의 여파로, 소풍이래야 잠깐 유치원 밖에 나가서 놀다 오는 정도가 다였다.


그리고 드디어 6살 되어서야 처음으로 가는 소풍인 것이다. 아이는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가서 도시락까지 먹고 온다고 며칠 전부터 신이 나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든다. 도시락이다! 나는 어려서 소풍을 가면 항상 화려한 친구들 도시락이 그렇게 부러웠다. 물론 당시 나의 엄마는 워낙 바쁘기도 했고, 지금처럼 귀여운 도시락을 싸는 것이 일반화되지 않아서, 반에 몇 명 없는 도시락이긴 했다. 그래서 나는 늘 내 아이가 생기면 아주 예쁜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아이의 소풍 며칠 전, 우리 반 아이들과 소풍을 다녀왔다. 소풍의 하이라이트 점심시간, 우리 반 아이들이 저마다 도시락을 꺼내놓는데 누가 봐도 가장 행복해 보이는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온통 꾸며진 도시락을 가져온 아이들이다.


이것 봐! 내 엄마가 이렇게 만들어줬다!


아이는 아마도 그 캐릭터도 좋지만, 이 조그만 도시락통에 가득 담긴 것이 캐릭터뿐만 아니라 엄마의 사랑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아이의 소풍날, 내 어린 시절 소풍날의 기억과, 어른이 되어 간 소풍날의 기억으로, 나는 만반의 준비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아이의 첫 소풍을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소풍 D-5

아이에게 소풍날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본 뒤, 메뉴 구성을 했다. 좋아하는 캐릭터 도시락통과 도시락픽도 준비한다.

소풍 D-4

유튜브를 보며 요리 방법을 익힌다.

소풍 D-3

실전의 날에 실수하지 않도록 미리 김밥을 싸본다. 아이에게 먹여보니 맛있다고 한다.

소풍 D-2

장을 본다. 메뉴는 꼬마김밥, 샌드위치, 문어소시지, 꼬꼬메추리알, 과자.

소풍 D-1

알람을 4시에 맞춰놓고 일어나자마자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동선을 최소화한다.


소풍 당일, 7시에는 준비를 하고 나가야 하는 워킹맘이라 4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마무리하고, 비몽사몽 출근했다. 아이의 반응이 기대돼 하루종일 설레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받은 유치원 선생님의 소풍 사진.


도시락 앞에서 환히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나는 사진 속 아이와 같은 표정이 된다.


다음 도시락은 더 열심히 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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